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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모아젤 Mar 15. 2019

그래도 엄마는 아프지 마

혼자 아프던 날, 덜컥 겁이 났다.

'MY아, 나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파. 급하게 먹었나?'


그날도 오랜만의 외식이라 해 놓고 또 사천 음식점을 찾았다.

MY에게 이 집을 꼭 소개해주고 싶었던 욕심에 쉬는 날 퐁피두 센터 근처로 나섰다.

아담하지만 내 지인들 중 몇몇만 알고 있는 집이어서 나름의 보석 같은 가성비 갑의 맛집이다.


친구의 퇴근 시간에 맞춰 배꼽시계를 맞춰 놓았다.

이 집 메뉴를 다 먹어볼 때까지 오리라는 신념으로 하나씩 도전하는 메뉴에 위가 흥분했을지도 모른다.


손목 스킬을 발휘하며 젓가락을 들었다 놨다 면을 들어 올렸다 담았다 하는 동안 위는 신나다 못해 아파했다. 명치를 찌르듯 가슴 밑 배가 콕콕 아파온다.

잘 체하지도 않을뿐더러 이 부위로의 통증은 느껴본 적이 없는데, 체한 건가보다 하고 숟가락을 놓고 손을 주무르고 차를 시켰다.


한참을 주물러도 차를 천천히 마셔봐도 배는 여전히 아프기만 하다. 신경을 건드리듯 대화에도 집중을 하지 못할 만큼 아파와서 역으로 가는 길 조금 걸으면서 소화를 시켜 보자 했다.

그리고 늦은 시각까지 문을 연 케밥집에서 콜라 하나를 샀다.


일본에서 처음 아팠던 날, 처방받았던 장염 약 @도쿄 2010


콜라를 다 마실 때 즈음 걷고 걸어 역에 다 달랐다.

친구가 혼자 괜찮겠냐고 걱정하는데, 왜인지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얼마 전 지인이 간밤에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입원했다는 이야길 듣기도 했거니와,  감사하게도 프랑스에서 병원신세를 져본 적이 없을 만큼 나는 건강했기 때문에 밤에 자다가 아프면 나 어떡하지? 싶은 거다.


체했을 때 할 수 있는 셀프 요법을 해 보고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혹시나 몰라 구급차 긴급번호도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이럴 정신이 있으면 괜찮은 건가 싶기도 하고) 지하철에 올랐다.

다행히도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거짓말처럼 배의 통증은 사라졌고 다행히도 그날 자다가 휴대폰으로 누구를 부를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 날 저녁을 먹는데 또 배가 콕콕 쑤신다. 그 전날보다 짧은 10분간의 통증이었지만 체한 건 아니구나 싶으니 또 덜컥한다.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내 몸 어딘가에서 자기의 상태가 편하지 않다고 보내는 신호인 거다.


친구들이 말하길, 위경련 같은 거란다.

스트레스성.. 어쩌고 가 원인이라고 검색 사이트에서도 말한다.

아. 요즘 신경 쓰이는 일들이 생각보다 몸에서 받지 못했나 보다 싶다.


한국을 떠나 있는 10여 년 동안 서럽게 아팠던 적은 손에 꼽는다.

일본 생활 반년 차, 식은땀 흘리며 밤잠까지 설쳤던 장염에 걸렸던 날을 시작으로 탈수 현상으로 출근하다 말고 링거 맞으러 종합병원 응급실에 누웠어야 했던 날까지. 크고 작은 병원신세를 지는 동안 간호해주고 약이라도 떠 먹여줄 사람이 옆에 있었다.


그래서 빨리 회복했던 사실을 순간 잊고 있었다.



아픈 배를 부여잡고 들어온 곳은 텅 빈 파리의 집이었다.

아프면 더 보고 싶은 엄마 품도 아닌. 오늘 같이 있어줄 수 있냐고 물어볼 그의 품도 아닌.

혼자라서 아프면 더 서럽다는 걸, 나는 한동안 잊고 살았다.

그리고 문득 이렇게 건강하다고 자부하던 나도 이런 작은 통증에 약해질 법 한데, 환갑이 되면서 하나씩 아프기 시작하다는 엄마는 얼마나 더 서러울까 싶었다.





무뚝뚝한 우리 집 경상도 남자들은 아프면 약 챙겨 먹어라. 병원은 다녀왔느냐 정도의 위로만 해주는 식이란다. 그래도 멀리서 아무것도 못 해주는 딸보다는 낫겠지.


어릴 때부터 워낙 에너지가 넘치고 건강한 엄마였기 때문에 엄마의 병원에 함께 동행 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 조차 이렇게 마음의 불효가 될 줄 몰랐다.

1년에 한 번 마주하는 그 얼굴에 주름이 하나씩 더 새겨질 때마다 내 마음의 주름도 하나 더 늘어나는 것만 같은걸 20대에는 잘 알지 못했다.


우리 모녀가 좋아했던 일본 온천 여행 @ 일본 2013


부모의 세월은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혼자라서 아프면 서러우니까 내 건강만 생각하며 달려온 시간들도 이렇게 한 번의 브레이크로 무너질 수도 있을 법한데, 부모는 이제 매해 그 브레이크에 걸릴 거라 생각하니 미안하다.

한 살이라도 젊은 당신들의 나날에 보폭을 맞춰 옆에서 걸어주지 못해 그저 미안할 뿐이다.


우리 집 남자들과는 간혹 한 번씩 하는 톡과는 다르게 일주일 한 번은 꼭 한 시간가량 근황 토크를 하는 모녀지간의 요즘 대화는 '어디 아픈 데는 없고? 별일 없지?'부터 시작한다.


별일은 없었는데, 위경련 증세가 있었다고 말하니 또 아프면 약 먹거나 병원 가 보라는 소리 대신 '그래서 엄마는 네가 빨리 시집가면 좋겠다'라는 동문서답이었지만, 나는 그게 무슨 처방전이냐며 그냥 웃어넘겼다.



그러니까 엄마도 내 맘과 같은 거다.

비행기로 열두 시간 떨어진 곳에서 건강하니까 괜찮다고 씩씩한 척하는 딸이 아플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 당신 곁에 두고 싶은데 그리 하지 못하는 마음에 누군가는 옆에 있어주면 엄마 마음이 조금은 편할 텐데 하는 맘인 거다.


그러면 나는 또 한참 대화하다 끊을 때 또 그런다.

'그래도 엄마는 아프지 마'  


올해는 한국에 가면 엄마를 모시고 여행을 다녀와야겠다.

소녀처럼 까르르 웃는 엄마의 모습도 많이 담고.



엄마, 늘 소녀 감성으로 함께 해요.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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