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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모아젤 Mar 09. 2019

그녀는 '너무' 예뻤다

진짜 매력적이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

아직 차디찬 공기가 감도는 파리의 1월, 루브르 역 근처에 위치한 카페를 가기 위해 1호선으로 갈아탔다.

Bastille, 그리고 마레 지구의 St-Paul 역을 지나  Palais Royal Musee du Louvre 역이 다가올수록 설레는 기분이 머릿속까지 차 오른다.


여전히 파리는 어둡고 구름 한 점 보이질 않지만, 역을 내려 카페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평소보다 가볍게 튀어 오르는 듯하다.

10년 만에 그녀를 만난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파리에서 말이다.



이게 얼마만이야


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파리로 10여 년간 해외로 나와 살면서 본의 아니게 연락이 끊어진 동창들이 하나둘씩 생겨났다.

싸이월드에서 페이스북으로 갈아타면서, 그리고 카카오톡이라는 메신저가 생기면서 그나마 다시 연락이 닿은 지인들이 생겨났지만 여전히 나는 그녀의 소식을 다른 동창들을 통해서만 가끔 전해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인스타그램으로 우연하게 다시 연락이 닿았다.

(SNS를 그리 의지하고 싶지 않지만 지인과의 소통, 그건 유일하게 생각하는 장점이다)


인스타 속의 그녀는 10년 전 내 기억 속의 그녀처럼 여전히 이쁘다. 세월이 지나도 변한 건 없다.

단지 파리의 새댁이 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는 이제 30대의 삶을 살고 있다는 점 빼곤 말이다.


일본에 살 때는 그래도 한국에 휴가를 가면 적어도 1년에 한 번씩은 만나던 동창들도 내가 파리로 이주를 하게 되면서, 그리고 30대가 되면서, 각자 가정이 생기면서 더 시간을 맞추기 어려워졌다.

그러니 그녀와의 만남은 더욱 반가웠으리라.


우리가 함께 했던 대학교 홍보 대사 활동 4년 동안 깊은 이야기를 나눌 개인적인 시간들은 많이 없었다.

학교에서 끼가 넘친다고 하는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인 홍보 대사 모임의 분위기는 늘 시끌벅적했고 학교 홍보지와 인터뷰에 대표로 나갈 단원들은 줄을 서듯 미남 미녀들이 모인 그룹이었다.

(아, 그중 나는 개그와 끼 담당.. 이었을 거다)


그중 그녀도 단연 돋보였고 흰 티에 청바지만 입고 지나가도 교내 남학생들이 뒤를 한 번씩 더 돌아볼 만큼 풍기는 매력이 진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녀는 홍보 동아리 이외에는 별 다른 교내 활동을 하지 않았고, 말 수가 그리 많은 편도 아니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신비주의라 불리며 소위 '예쁜 척' 하는 아이로 시기를 받았을 거다.


당시는 예쁜 사람이 말없이 인형처럼 앉아 있으면 예쁜 척하는 게 되고, 말이 많고 털털하면 쿨하게 비치는 아니러니한 분위기였으니까.


둘이 있을 때 말을 걸면 수다쟁이가 되고, 늘 생긋생긋 눈을 보며 이야기하던 그녀는 때로는 내게, 먼저 다가가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비추어질 때가 있었다.

외동딸로, 그리고 청소년기의 일부를 미국에서 보내며 홀로 이겨내야 했던 시간이 그 예쁜 얼굴 뒤에 감춰졌으리라 대충 짐작하며 말이다.


마들렌 @ 파리 2015



졸업 후에 간간히 다른 동창들에게 들려오던 소식을, 지난 10년간의 그녀의 행보를 파리의 한 카페에서 마주하는 시간 동안 나는 다시 그녀를 기억해낸다.


10년 전의 그녀도 이렇게 해맑았던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눈이 반짝거렸던가.

그리고 이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었던가 하고 말이다.


그랬다. 그녀는 행복해 보였다.

내가 알고 있던 20대의 그녀보다 훨씬 많이.





모범적인 외동딸로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어 삶을 조정하며 살았다고 했다.

졸업 후에도 그녀가 속한 조직에서 많은 오해와 시기를 받았고, 그녀는 결국 돌고 돌아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았고 그 후로는 쉴 새 없이 달려왔다고 전했다.

그리고 몇 번의 병원 신세를 지면서 본인이 행복할 수 있는 곳, 행복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좇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낯선 이 도시에서 새로운 제2막을 여는 지금이 행복하다고 했다.


수수한 차림에 에코백을 멘 그녀는 인스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명품백과 명품 외모로 치장한 그 어느 미녀들보다 더 빛나 보였다. 나도 잘 알지 못했던 그녀와 다시 만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장작 여섯 시간 꼬박 수다를 떨었다.

카페에서 식당으로, 그리고 또 카페를 옮겨 가면서 10년 동안의 우리의 삶을 하나씩 꺼내보았다.


그녀는 나의 10년을 궁금해했고 나도 그녀의 지난 세월들이 궁금했던 만큼.

다시 꿈 많던 각자의 20대로 돌아가, 그때 나누지 못했던 우정을 다시 쌓아 가듯 한참을 깔깔거렸다.



예쁜 사람 참 많은데, 자꾸 보고 싶은 사람은 드물지.


예쁘면 주목을 받는 건 어느 나라나, 시대를 막론하고 변치 않는 법칙 같기만 하다.


한때 예쁜 걸로 유명했다 하더라도 나이를 먹으면서 외모는 그저 곁들기에 불과할 뿐이니까.

'예쁘게' 늙는다는 것. 그리고 정말 예쁜 사람은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이 가지는 에너지와 내공에서 나온다는 걸, 나의 '예쁜 사람'의 가치는 일본에 살면서 많이 바뀌었다.


그들은 얼굴의 점 하나 부모가 주신 본인의 매력이라 생각하며 허투루 빼지 않는다. 가지런하지 않은 치아를 가졌다 하더라도 환하게 웃는다.

그 중 성형외과와 피부과를 자연스레 드나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생긴 대로 사는 게 당연한 이치라 생각하는 대부분의 그들은 본인의 개성을 나타내는 소재로 메이크업과 헤어, 그리고 패션을 이용한다.


몇 년을 살면서 그들의 미(美) 익숙해진 내 눈과 의식은 '예쁜 사람'의 기준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건강한 삶의 기준을 가진 사람. 그래서 나이를 먹는 게 기대가 되는 사람.

눈가의 주름이,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레 남아 시간의 흐름을 역류하고자 하는 어색함이 없는 사람.

똑같은 패션의, 외모의 화려한 모습이 아닌 본인만의 장점을 잘 드러낼 줄 아는 사람.

닮고 싶은, 자꾸 보고 싶은 사람.


그러니까, 자꾸 봐도 질리지 않는 사람.






젊을 때는 젊어서 다 예쁜 것 같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랬다.


그때의 우리는 다 예뻤는데, 옆의 친구가 나보다 더 예쁜 것 같기도 하고

더 날씬해서, 더 오목조목하게 생겨서 인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그때의 우리의 모습으로 충분히 아름다웠음에도 불구하고.


30대가 되어 그때를 쓱 꺼내보니 우리는 '내가 가진  매력'을 찾는 시간보다

가지지 못한 매력을 찾아 채워 넣는데 더 힘쓰지 않았던가 싶다.


서른의 예쁨은 또 다르다.

우리는 그때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내가 한때 동경했던 것들에 심심찮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량이 생긴 나이라서 '누가 더 이쁘더라. 누가 더 인기가 많더라' 식의 화제는 굳이 대상이 아니다.



적어도 한국을 오래 떠나 살고 있는 나에게는 말이다.



파리지엔들의 매력을 보며


파리라는 도시로 넘어오면서 나의 미의 기준은 더 확고해졌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질끈 묶은 헤어. 무채색의 옷들과 동여맨 스카프와 머플러 하나에도 무심한 듯 자연스러움이 묻어나는 파리지엔들.


빈티지를 사랑하고, 모던함을 그 안에 녹여낼 줄 아는 익숙함을 가졌기에 '멋'과 '매력'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것만 같다.

늘 새로워야 하고, 세련되어야만 '멋'이라고 칭하지 않아도 되는 자연스러움을 강조한다.

처음 보는 사람과도 예술과, 문화와 세상에 대한 자신의 의견에 대해 스스럼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당당함과 그 내공이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말해 주는 듯하다.



예뻐서 한번 돌아보고 말 사람보다, 알면 알수록 더 닮고 싶은 사람들을 가까이 두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여섯 시간의 수다를 떨고 신랑이 곧 퇴근할 시간이라는 그녀를 아쉽게 보내주었다.

20대의 '예쁘지만 외로웠다던' 그녀보다 30대, 누군가의 아내로서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또 다른 자신을 찾아갈 그녀의 파리 라이프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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