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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드모아젤 Mar 30. 2021

결국, 외국인 노동자

비자가 뭐길래


올해로 해외 살이 11년 차가 되었다.

즉, 2010년부터 멀쩡한 내 나라 놔두고 타지에서 이방인으로 산지 11년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일본에서의 첫 비자 발행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비자를 서포트해줄 회사를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모든 비자 관련된 서류는 회사에서 처리해주었고 나는 그저 개인 서류만 준비하면 될 뿐이었다. 인문지식 비자로 3년, 그리고 그 후 갱신을 하기 위한 입국관리국 방문은 하루를 다 잡아먹을 정도로 긴 대기 시간으로 악명 높았지만 하루만 참으면 되는 일이었다.

준비한 서류를 들고 오전 일찍 가서 번호표를 받는다. 그리고 해당 차례가 되면 서류를 검토받고 귀가하는 스케줄이었는데 아무리 일찍 가도 번호표는 세 자리. 모든 재외국민들이 시나가와에 위치한 입국 관리국을 통하기 때문이었을 게다. 그 후 우리 동네에서 가까운 곳에 출장소가 생겨 대기자로 인해 시간을 뺏기는 일은 없어졌지만 갱신날이 반갑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에 오니 웬걸, 여기가 제일 악명 깊은 곳이었다.

유럽의 행정 시스템이 얼마나 느리고 뻔뻔한지에 대해서는 이탈리아에서 먼저 유학하던 친구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몸으로 와닿지 않았다. 프랑스, 아니 파리가 그랬다. 정해진 비자를 처리하는데 케바케가(case by case) 너무 많고 갑질은 따라오는 1+1이었다.

어느 나라든 비자를 선뜻 주는 곳은 없지만 정당한 이유로 준비하라는 서류를 준비했어도 그 갑질덕에 주눅 들기 일쑤였다.


어학생 시절 내가 살던 동네는 파리 중심부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이었지만 파리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곳이었으니 사실상 파리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해당 주소지의 경시청으로 가서 행정 업무를 봐야 했다. 그때만 해도 비자 신청을 위해 담당자와 약속을 잡아야 했는데 파리는 인터넷으로 신청이 가능했던 반면, 우리 지역은 방문 신청만 가능했다. 심지어 선착순으로 준비된 번호표를 받은 사람들에 한하여 약속을 잡는 기회를 주는 거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택시를 타고 도착해 9시 운영 시간을 기다려 선착순 번호표 받기에 성공하려면 부지런히 서둘러야 했다. 추운 겨울이면 담요와 보온병을 챙겨 들고 말이다.

그런데 그 번호표를 받고도 일의 효율이 얼마나 안 돌아가는지 기본 다섯 시간 이상의 대기는 필수였다.  아날로그적으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그 지역 이방인들 모두가 그렇게 어렵게 해외 살이를 위한 관문을 거치고 있었다.


그마저 준비된 서류를 챙겨 약속된 날에 가면 서류 수령 후 또 번호표를 주고 대기를 기다려 검토를 받는다. 그러나 그렇게 발급된 체류증은 정식 비자가 아닌 임시체류증이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시스템이었는지 매년 겪는 이 과정이 너무 싫어 지방에서 학교를 마치고 다시 파리로 이사 준비를 할 때 무조건 우편번호가 75(파리지역)로 시작하는 곳에 살리라 다짐했다.


 슈퍼 울트라 을의 하루


비자 심사를 받는 날은 악명 높은 경시청 사람들의 갑질에 간담이 서늘해진다. 빠진 서류들이 있으면 다른 날에 다시 챙겨 오라고 돌려보내거나, 밀려드는 업무와 반복된 대응으로 지친 어떤 담당자는 짜증 섞인 말투를 한다거나 꼬투리 잡을 수 있는 내용들로 비자 거부를 하려고 시도한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경시청 여기저기서는 푸념 섞인 이방인들의 한숨이 들려왔다.


학생 신분이면 외국인이라도 나라에서 주택 보조금(Allocation)을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으며 세금에 대해서도 관대했으므로 경시청에서는 학생 비자로의 체류 기간에 제한을 두기도 했다.

그뿐인가, 서류가 넘어간 뒤에도 기약 없는 기다림은 물론, 퇴짜를 맞거나 보충 서류를 보내라며 또 다시 딜레이가 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파리를 중심으로 지역들이 대개 그런 식이 었는데 잠시 유학했던 앙제만 해도 이런 예외들은 겪지 않았으니 그 스트레스 없이 사는 일상이 그렇게나 평화로운건지 지방의 삶이 동경스러울 정도였다.


지방은 약속을 잡지 않고 방문하여, 큰 대기 시간 없이 일 처리를 해주고 우리로선 당연한 일이지만, 메일에 대한 답장도 빠르다. 전화 응대에도 짜증 섞인 목소리 없이 대응을 잘해주던 그 앙제에서의 평화를 뒤로 하고 다시 시작된 파리 생활 동안 직원 비자로의 변경 처리(Changement de statut)에 들어간 적이 있다.

학생에서 직원으로, 직원에서 프리랜서로, 직원 비자에서 배우자 비자로 등등 어떠한 본인의 상태가 달라질 때마다 비자 상태를 바꿔줘야 한다. 그에 따른 세금 비율과 여러 가지 혜택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파리 플로리스트 학교를 다니는 학생 비자에서 직원 비자로 변경 신청을 했고 진짜 파리지엔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비용을 절약하고자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모든 서류를 직접 준비했다. 그 과정이 얼마나 더디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물론 중간에 회사의 회계 담당자에게 필요한 회사쪽 서류를 다 챙겨받긴했지만 결코 간단하지는 않았던 준비었다. 무사히 모든 서류를 우편으로 잘 보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나 몇 개월이 지나도 깜깜 무소식. 그러나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등기로 보냈어야 할 서류를 정신 없던 와중에 바보같이 일반 추적 서류로 처리 해 보냈으니 도착은 했다고 나오는데 담당자가 잘 받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역시 변호사를 선임했어야 했던 걸까. 작은 실수 하나로 혹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하는건 아니지 애가 탔다.중간 중간 노동청과 경시청을 찾아가 봤지만 그쪽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따로 없었으며 검토중일테니 일단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반년을 기다려 답장을 받았다.

기다린 보람도 없이 내가 보낸 서류 중 의심되는 사항들을 보충 하여 우편 발송 후 다시 대기하라는 말과 함께.

아…… 이걸 말하려고 날 반년을 기다리게 했다니!  참 파리스러운 답변이었다.


그러나 지적된 사항에 대해 만에 하나 증거가 불충분 하면 비자 허가가 나지 않는 상황이므로 최선을 다해 보충 서류를 준비했다.

프랑스에서 플로리스트를 위한 학업과 실무를 공백 기간 없이 수행, 학생 기간 중에도 소득 신고는 매번 투명하게 하였고 현재는 디플롬과 관련된 업무로 취업 비자를 신청하기에 프랑스에 온 목적과 남아있으려는 목적이 분명하고 불법적으로 지낸 이력이 없다는 걸 4장에 달하는 편지와 함께 보충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정직원(CDI) 1년짜리 비자를 허락한다는 노동청으로의 답장을 받았다. 가슴을 쓸어내림과 동시에 혼자 여기까지 이뤄낸 날을 지인들과 축하했다.

그로부터 1년 뒤 현재 4년짜리 비자를 무사 갱신하여 파리의 플로리스트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나는 파리의 플로리스트]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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