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없이 듣던 질문 앞에
코로나로 많은 한국인 유학생들과 주재원들이 귀국행을 선택했다.
그에 반해 가족이 있는 분들, 오래 사신 분들은 이곳이 삶의 터전이 된지 오래라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에 더 집중했다. 귀국행을 선택하는 그들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파리에서 자리를 잡고 살고 있지만 코로나 시대에 혼자라는 두려움은 마음속 어딘가에 늘 자리잡고 있으니까.
혹시 아프면 누가 간호해주지? 한국에 계신 가족과 지인들이 아프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달려갈 수 있을까 하면서 말이다. 격리를 당하는 동안 그 두려움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게 일부 나라들은 공항을 폐쇄했고 상황이 안전될 때까지 직항 편을 없애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사실 귀국에 대한 고민은 해외살이 1년 차부터 시작되었다.
지진과 방사선으로 뉴스에 연달아 보도가 되던 2011년의 일본을 시작해 코로나로 유럽이 심각 단계에 이른 지금까지, 매년 한국으로 휴가를 갈 때면 가족들과 지인들은 나의 귀국 예정부터 궁금해했다. 10년이라는 해를 거듭해도 그들의 걱정은 공통되었다.
어서 빨리 들어와서 한국에 적응해야 할 텐데. 시집가야 할 텐데, 그리고 이제 그만 하면 되었다는 ‘정착’하라는 소리를 다양한 표현들로 나를 설득시키려 했다.
나 역시 누구보다도 정착을 원하는 사람이었고, 안정적인 미래를 꿈꾸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들의 바람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평범한 삶이 가장 행복하고, 그렇지만 가장 어렵다고 한다면 나의 10년은 평범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에 거침없이 동의한다. 그러나 평범하지 않았다고 행복하지 않았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못한다. 기준은 저마다 다르니 적어도 지난 기록을 되돌아보며 다시금 느낀 건데, 난 그때의 나로 돌아갔어도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모험에 도전했을거다.
유학과 이민이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한 각도로 보게 만들어주리라 확답할 순 없지만 그게 배낭 이든 이민가방이든 난 짧게라도 떠났을거다. 경험치와 보고 자 하는 시선이 각기 다르므로 우린 각자의 방법으로 살면 된다. 그게 평범한 삶이든 비범한 삶이 되었든 정답은 타인에게서 얻을 수 없다.
그래서 떠나오고 떠나왔다. 내 안에 정답을 찾아.
그렇게 하나씩 건너다보니 프랑스에 다 달랐다. 그리고 알았다.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일임을.’
코로나를 겪으며 다른 재외국민들처럼 귀국에 대하여 수도 없이 고민했다.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서 안전하게 서로를 챙기며 소소한 일상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전보다 강해진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10년간의 내 발자취를 포기하고 새로운 시작에 나서야 한다는 두려움도 찾아왔다. 무슨 선택을 하던 기회비용을 따져 선택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 함을 지난 시간 동안 경험했다. 하나를 얻기 위해 다른 하나, 혹은 그 이상까지 포기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간들 속에서 귀국이라는 선택지는 생각보다 큰 기회비용을 따져야 할지도 혹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귀국 언제 해? 라는 대답에 늘 정확한 답을 올려 놓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생각보다 해외살이가 잘 맞는 이유도 없지 않았지만, 한 해 한해 목표가 있었다. 그리고 나답게 살 수 있는 시간들이 큰 후회 없이 행복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이런 고민들을 다 펼쳐 놓고 생각했다.
살아갈 배경은 크게 날 좌지우지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곳이 한국이든 프랑스든, 일본이든 어디서든 나답게 살 수 있을 거라는 정답을 얻었다. 물론 적응기는 필요할 테지만 어딘가 정착을 했다고 해서 떠나온 곳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 살아왔기 때문에 언제든 다시 가 볼 수 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 시간 여행하듯이 말이다.
발돋움을 위한 움츠림은 있을지라도 좌절하지 않을 적당한 단단함과, 가득하게 담아낼 시간들을 위해 적당히 비워낼 줄도 아는 대담함과 안목도 생겼다. 적어도 한국을 떠나오기 전, 스물 여섯의 나보다 훨씬 더.
그간 익힌 언어들은 단순히 말을 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소통의 문이었고 그 문을 통해 여러 세상을 보고 경험했다. 비록 여러 나라를 옮긴 탓에 많은 비용의 지불이 있었지만 절대 돈으로 주고 사지 못하는, ‘지금의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 값진 시간이었다.
가끔 살아온 나라들의 정서가 섞인 내 안의 여러 정체성으로 묘해질 때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나쁘지 않다. 나를 하나로 표현할 수 없는 건 여러 가지 내면의 자아가 있다는 이야기이고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를 가진 정체성이 된 것 같아서 말이다.
이십 대에 시작한 나를 찾는 여행은, 10년이 흘러도 계속되었고 정착을 한다 하더라도 계속될 것이다. ‘100세 시대니까’라는 흔한 말을 상용하고 싶진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고 딱 1년만 투자해 보자고 떠난 여행이 이민이 되었다.
소박해도 좋고, 화려해도 좋다. 앞으로 써 나갈 나의 이야기들이.
분명한 건, 내가 누구인지 잘 이해하는 것, 그리고 원하는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신념이 잡혀 있다면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누구와 함께 있던 나는 나 대로의 향기를 뿜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감히 생각해본다.
[나는 파리의 플로리스트] 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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