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파리의 플로리스트
학기 마지막 인턴을 파리 6구에 있는 샵에서 하면서 동시에 국가시험을 무사히 치렀다.
처음 목표로 했던 것들이 다 끝나는 순간이다.
유창하지는 않지만 의사소통이 될 정도의 불어 실력으로 학교를 들어가 불어로 모든 수업을 따라갔고 파리에서 나름 이름 있는 플라워 샵들을 거치며 경험을 쌓았고 CAP플로리스트 국가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파리 생활 2년 차, 처음 목표했던 것들을 이뤘는데 자꾸 욕심이 생긴다.
하다 보니 또 다른 길이 보이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건 해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이기에 자꾸만 앞으로 가 보고 싶다. 그 뒤에 또 그 뒤에는 어떤 길이 펼쳐질지 나의 운명과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은 짓궂음 일지도 모르겠다.
국가시험 마지막 날, 시험장에서 나오는데 인턴을 했던 곳에서 전화가 왔다.
주말에 있을 이벤트에 사람이 모자라는데 도와줄 수 있냐고.
이벤트 내용은 뒤로 하고, 일단 인턴이 끝났던 곳에서 다시 찾아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 아닌가.
적어도 난 쓸만한 아마추어 플로리스트 즈음된다는 말이라 내심 기뻤다.
주말 아침, 샵으로 가니 사장님은 나의 역할을 설명해주신다.
이틀 동안 열리는 샵 근처 벼룩시장에 우리 샵이 참여를 하게 되는데, 화분들을 시작으로 창고에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한 앤틱 화병들까지 총출동. 내게 메인 지휘권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동기부여를 높이기 위해 판매액의 10프로를 수고비로 거시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장사의 맛은 사회 초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 터득한지라 귀가 솔깃했다.
다 팔아버리겠다는 의지에 힘을 실어주기라도 한 듯 날씨 요정이 찾아왔고 벼룩시장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 천막에서 사람들은 이틀간 바글거렸다.
약간의 친근함과 장사술을 가미하여 완판에 가까운 기록을 세우며 이틀간 5천 유로에 가까운 매상을 올렸다.
물론 하나에 100유로가 훨씬 넘는 큰 화분들도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틀간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이 이벤트를 통해 사장은 인턴을 하는 동안에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던 나와의 플로리스트 학교 입학을 위한 정식 계약을 제안하셨고 약속대로 10프로의 수고비까지 챙겨주셨으니. 정말 운명 같은 타이밍이었다.
무너지라는 법은 없구나. 일본에서 경험한, 되려면 어떤 식으로든 된다는 말을 프랑스에서도 다시 한번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사회 초년생부터 내가 경험해 온 그 모든 일들은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적재적소에 가장 큰 힘들을 발휘 하는구나,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 경험들은 버릴 게 없음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9월, 그렇게 새로운 파리지앵 플로리스트와 계약하며 내가 취득한 CAP 플로리스트의 윗 단계인 Brevet professionnel 2년 코스를 수료하기 위해 파리 플로리스트 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앞서 말한 그 수습생 제도의 한 코스인 2년 과정인 셈이다.
매월 1주일씩은 학교에서 이론을 그리고 나머지 3주가량은 샵에서 실습을 하며 경력을 쌓는다. 그리고 2년 뒤에는 디플롬과 동시에 2년 경력 타이틀을 얻고 BP국가 자격증에 도전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프랑스의 이 수습생 시스템은 정말로 추천할 만하다. 외국인에게 예외 없이 적용이 되는 장점은 물론,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이론과 실습을 동시에 하면서 프로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나라에서 마련해주니 얼마나 알찬 시스템인가! 고등 교육을 시작할 나이에 본인의 적성에 대해 고민하고 여러 직군에서 인턴의 기회를 가지며 진로를 결정한다. 그리고 이런 수습생 제도를 통해 디플롬과 동시에 경력을 쥐고 취업. 20대의 나이에 10년의 경력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게 바로 프랑스에서 장인이라 불리는 요리사, 쇼콜라티에, 제빵사, 소믈리에, 플로리스트, 헤어디자이너 등을 포함, 약 250개의 직업군에서 20대의 나이에 전문가로 불리며 자신의 커리어를 꾸준히 쌓아가는 프로들이 수없이 많은 이유이다.
일반 대학을 가는 사람들은 Baccalaureat(바칼로레아)라고 하는 우리나라의 수능과 같은 시스템을 통해 디플롬을 취득, 본인이 원하는 대학에 지원한다.
그러니 보통 프랑스 학생들은 20살이 되기 전에 본인의 진로를 대학 쪽으로 선택할지 수습생으로 진학할지를 결정하게 되는 셈이다.
남 들다 가는 대학에 점수에 맞춰 진학하여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진정 본인이 원하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우리나라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나 또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고, 이대로 괜찮은가를 끊임없이 묻고 또 물었으니까.
파리에서 꽃을 하는 동안 내가 조금만 더 어린 나이에 왔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한 시간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큰 결단을 했던 서른이라는 그때의 나도 결코 많은 나이가 아니었음을 삼십의 중반이 되어 알아간다.
파리는 꽃을 하기 좋은 도시여서 참 다행이다.
장인, 혹은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직업군의 하나로 나라의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여 성장할 수 있으며 꽃을 사랑하는 도시로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파리지앵들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화분을 기르기도 하며 특별한 날이 아니라도 꽃 한 다발을 사곤 한다.
유럽 최대 규모로 식자재와 꽃을 파는 파리의 헝지스 마켓은 사업자 카드를 갖고 있는 업체에 한해서 구매가 가능하다. 즉 우리나라 꽃시장과 다르게 일반 소비자들은 구매가 불가하니 유통업자와 구매자 간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다. 시장이 사업자를 상대로 한 마켓이 잘 되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마진이 남게 되는 시스템이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꽃시장은 사업자 등록이 된 플로리스트들만 구매가 가능하다고 하니 플로리스트 입장에서는 부러운 부분이다.
소매자도 손쉽게 구매가 가능한 한국의 꽃 시스템도 파리처럼 사업자들만을 위한 마켓이 되면 플로리스트들의 성취감도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어떤 식으로든 소비자에게 꽃을 쉽게 접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게 함은 다양하고 예쁜 꽃들을 직접 가까이에 누리게 하여 꽃의 일상화를 높여주지만 플로리스트의 역할이 빠지게 되는 꽃의 일상화는 왠지 좀 씁쓸할 것 같다. 우리의 역할이 조금 더 다양하고 친근해져 우리들을 통해 소비자들은 꽃에 대한 일상화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심신의 안정과 미적 욕구를 조금 더 가지는 사치를 누리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사계절 내내 헝지스에서는 계절꽃을 만날 수 있다. 프랑스산 꽃들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그리고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각종 산지에서 수입되는 꽃들까지 다양하고 신선하게 새벽 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호텔과 레스토랑에서는 매주 신선한 꽃을 배달받고, 마담들은 그날의 콘셉트와 기분에 따라 집에 꽂을 꽃을 사며 기분전환을 한다. 봄 여름을 시작으로 가을까지 웨딩촬영을 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관광객들은 세상에서 가장 예쁜 웨딩부케를 주문하고 각종 피로연이나 행사, 파티를 위한 꽃 장식으로 파리는 일 년 내내 꽃내음이 난다.
꽃 냉장고를 쓰지 않아도 적정하게 유지되는 온도 덕에 아름답게 샵 내부에 꽃을 디스플레이를 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플로리스트들이 가장 다양하게 꽃으로 예술을 할 수 있게 하는 도시, 파리의 플로리스트라 행복하다.
[나는 파리의 플로리스트] 이정은
작가의 연이은 다른 에피소드들은, 전국 온, 오프라인 서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yes24: https://url.kr/fozc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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