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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딩버스 Aug 04. 2022

스펙트럼에 대한 고찰

이성과 믿음에 대한 매우 주관적인 조합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주인공 변호사가 자폐를 갖고 있다기엔 너무 멀쩡(?)하여

드라마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목소리가 많다.

덩달아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게 회자되며 요즘 '스펙트럼'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고 있다.


나는 나 스스로가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자부심이 있었다.

어릴 때부터 독립하여 유학생활을 하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이 자양분이 되었고, 뭔가를 탐구하기 좋아하는 성향 덕분에 끊임없이 내 지평을 넓혀가는 중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인 노동자 생활도 잘할 줄 알았다.

물론 한국에서만 벌써 4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더 이상 스펙트럼이 팽창하는 것 같지 않지만.

아무튼 한 인간이 가진 스펙트럼을 '지평 의식'이라고 지칭한다면, 이 스펙트럼을 구성하는 것은 이성과 믿음의 조합이라고 본다.


나는 우리에게 존재하는 모든 것은 결국 어떤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인간에게는 이성믿음이 있다.

이성의 기능은 인간이 부정적인 측면을 없애고 긍정적인 측면으로 변화하도록 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성적인 판단을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판단이라고 여기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반면, 믿음의 기능은 근본적인 의미에서 하나의 환상이자 구조(救助)이다. (종교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믿는다고 할 때 타당성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개인에게 가치가 있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성과 믿음이 어떻게 조합되느냐에 따라 개인의 세계관이 달라진다.

이성과 믿음이 반반씩 병존하거나 그렇지 못하다면 한 가지에 더욱 가치를 둠으로써, 이 둘은 인간의 전체적인 세계의식, 곧 지평 의식을 정립하게 해 준다.

즉, 이성과 믿음이 각 개인에게 어떤 의미를 얼마만큼 지니는지가 조합의 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주로 개인의 경험을 통해 본인에게 지배력을 미치게 된 가치, 신념, 사고 양식에 기반해서 조합된다.

따라서 조합의 방식은 매우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이성과 믿음의 조합은 각자에게 새로운 의미를 구성하는 것이다.


각자의 경험의 폭이 이성과 믿음의 조합을 좌우한다.

인생에 있어 각자마다 가치관과 우선순위가 다른 것처럼, 이성과 믿음이 각각 얼마만큼의 의미를 차지하는지가 다르다.

그런데 사실상 우리는 삶의 조건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으며, 이미 수립된 특정 조직 및 구조와 현존하는 가치, 신념, 규범의 체계 속에서 살게 된다.

사회의 법률, 정치, 교육, 의사소통체계는 비슷비슷한 관점들을 보급시키고 국가는 조직화된 힘을 행사한다.

그래서 나는 스타트업 창업자들이나 이미 정형화된 틀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나 보다.

별다른 생각 없이 본인에게 주어진 것들을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삶으로부터는 자극을 받지 못한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을 들고 오는 자에게 기꺼이 장단을 맞춰주고, 질문을 던지고 싶다.


나와 다른 이성과 믿음의 조합을 가진 사람

그렇지만 또 스펙트럼을 아예 벗어난 사람과는 말문이 막힌다.

오늘 대화한 이 사람은 내 스펙트럼 상으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 사람도 그저 그만의 조합을 가진 (나와는 다른 조합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사람들 사이의 의식과 문제 해결 방식이 모두 똑같지 않기 때문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는 것이고, 두 조합의 차이를 비난할 이유나 부정할 필요가 없다고 스스로를 진정시켜본다.

한국적 정체성을 고민했던 1960년대 초반 미술 작가들 사이에도 스펙트럼이 있었고, 내가 한국과 외국에서 만났던 수많은 조직의 리더들한테도 스펙트럼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각자의 존재감이 있었고, 장단점을 통해 배운 게 있었다는 것을 잊지 말자.

개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이 조합, 즉 주관성의 문제를 가지고 어느 것이 맞다는 식으로 결론 내리려거나 우월성을 따지려들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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