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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Feb 28. 2020

청다리도요로 불리는 사람

화성환경운동연합 정한철 상임 활동가

누추해서 어쩌죠, 인터뷰를 청하는 전화에 내심 걱정처럼 흘러나온 첫 마디였다. 찾아 갈 사무실 위치를 묻는 말에도, 사무실에 도착해서 맞아주는 첫 마디에도 누추해서 어쩌냐는 걱정이 습관처럼 이어졌다. 사실 번듯한 사무실과는 인연이 먼 시민사회단체에서 일을 하다 보면, 그것도 든든한 자본과는 가장 거리가 먼 환경보호단체에서 일하는 것이 직업이 되고 나면 당연한 일일 게다. 화성 시내 변두리의 아파트 입구에 있는 작은 건물의 3층, 구석진 계단으로 올라가 반쯤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온 활동 자료들이 사무실 온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환경운동이 쉽지는 않은 길일 텐데, 지금 하시는 일은 어떠세요?

돈을 많이 가져다 주는 아빠는 못 됐죠. 그 전에 개인적으로 직장 다닐 때는 조금 나았는데, 더 이상 이렇게 살기는 싫다,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아내가 맞벌이를 시작해 줬죠. 애들도 아내도 그렇고, 고맙죠. 덕분에 제 일도 조금씩 발전하면서 날마다 좋아지고 있어요. 그래도 주변 사람들이 돈 없어도 행복한 사람의 예로 저를 들더라고요. 


꽤 오랫동안 습지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사실 화성 하면 습지가 딱 떠오르는 건 아니라서요. 서해안의 갯벌을 말하는 건가요? 

습지란 게 축축한 땅, 우리 말로 하면 늪이라고 할 수도 있고 산속에 있는 웅덩이 옹달샘일수도 있고. 물이 흐르든 정체되어 있든, 해수든 담수든, 6미터 이내로 물이 차 있으면 습지라고 해요. 몰디브나 오키나와 같은 산호 습지나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맹그르보 숲도 다 습지죠. 인천 강화 시흥 화성 평택 당진까지 이어지는 이 해안선의 습지가 바로 화성습지에요. 경기만 습지라고도 하죠. 새만금도 정말 좋은 습지였는데 지금은 파괴가 되었죠. 새들에게 정말 좋았던 곳인데. 한때 5~6만마리가 왔지만 지금은 5천마리밖에 안 오고 있어요.  

 

 

예전에는 지금과는 다른 갯벌이었다는 건가요?

여기가 가리맛조개와 굴의 최고 산지였어요. 역사상으로도 임금님에게 굴을 진상하던 곳으로 기록되어 있고. 속담으로도 남아 있죠, “남양원님 굴회 마시듯 한다”. 조선시대까지 이곳을 남양도호부라고 했는데, 그만큼 굴이 흔하고 맛있어서. 지금은 물길이 좁다랗지만 여기가 다 갯벌 해안선이었고 땅 쪽으로 20km까지 바닷물이 쑥 들어갔습니다. 갯벌마다 다 성격이 달라요. 여기에 가리맛조개랑 굴이 많았다면 저기는 백합과 동죽, 가무락 조개가 많고, 또 바지락은 저쪽에 많고. 덕분에 영종도랑 남양만이 전통적으로 도요새가 많이 갔던 곳이에요. 남양만이 2위 영종도가 3위죠. 


철새가 안 온다는 게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철새가 오는 게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건지? 

동물을 보존한다는 건 곧 서식지를 보존한다는 이야기에요. 서식지는 자연이죠. 자연이 동물에게만 필요하냐? 아니에요, 인간에게도 꼭 필요해요. 아마존에 있는 밀림만 산소를 공급하는 게 아니라 우리 집 앞의 야트막한 언덕에서도 산소를 공급하고요. 그보다 훨씬 많은 산소를 공급하고 탄소를 흡수하는 창고가 바로 습지에요. 그런 과학적 사실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죠. 규조류라고 하는 식물플랑크톤이 머리카락의 40분의 1 크기거든요. 갯벌 표면이나 습지 하천 표면에 있는 규조류가 산소를 내뿜는데, 그런 산소공급량이 대기 중의 산소량의 절반이에요.  



그래도 새가 사라지든 말든 관심을 가지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을 텐데요? 

새보다는 사람이 우선이지 않냐는 말도 자주 들으시죠?

생물 다양성이라는 건, 멸종 위기에 있는 새 한 마리의 문제가 아니에요. 새가 먹을 수 있는 쥐나 토끼 등 먹이가 되는 생물이 이 안에 가득하다는 거에요. 그런 먹이사슬이 끊어지면 그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게 되죠. “생명을 한 마리 지키는 것은 나를 지키는 것과 똑같다” 라고 저는 생각해요. 생태보호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나랑 연결되어 있다는 겁니다. 흔히 “인간이 먼저다”라며 인간을 특별하게 보는 것 같은데요. 사실은 인간도 한 종일 뿐인데, 유난히 탐욕스럽고 욕심이 많은 종인 거죠. 46억년 짜리 지구에 인간이 산지 만년 밖에 안 되었어요. 그리고 그간 잘 살다가 200년 만에 이렇게 망가트리고 있잖아요. 



갯벌의 가치가 숲의 10배, 농경지의 100배라고 하던데요.

갯벌이 더 가치가 있다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지는 않아요. 

사람은 보는 게 참 적어요. 진짜 존재하는 데도 못 보는 게 참 많아요. 숨어 있으면 안 보이는 거에요. 고라니가 앞에 숨어 있으면 못 봐요, 갈대 숲에 숨어 있거든요. 숲이나 농산물은 눈에 잘 보이지만, 수산 시장 가서 사는 낙지나 물고기는 어디 저 깊은 바다에서 나는 줄 알아요. 아니에요. 다 갯벌에서 잡는 거에요. 광어나 우럭 넙치 다 얕은 바다에요. 넙치는 얕고 따뜻한 바닷물에서 헤엄치는 애들이고요. 우럭도 연안에서 다니는 애에요. 갯벌이나 따뜻하고 얕은 바다에 올라와서 알을 낳아요. 바다생물의 80%가 연안에 알을 낳는다는 연구도 있어요. 뭍과 붙어 있는 따뜻한 땅, 인간의 땅과 붙어 있어서 유기물도 많고 먹이도 많고. 사람들은 그게 안 보이거든요. 낙지도 김도 시커멓고 냄새 나는 갯벌에서 나죠. 꽃게도 다 알을 갯벌에 낳죠. 그 사실을 모르는 거에요. 


생각보다 너무 귀한 습지가 있는 건데. 

만에 하나 습지가 사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가요?

철새들이 전세계 대륙간을 이동하는 거대한 경로가 있는데, 그 정거장이 사라져 버립니다. 대표적인 게 북-남 아메리카를 이동하는 붉은가슴도요가 있는데요. 호주 뉴질랜드에서 날아 올라서 시베리아, 알래스카에서 번식하거든요. 지구를 횡단하는 건데, 가다 보면 너무 지쳐서 중간쯤에 쉬는 거에요. 그 휴게소가 새만금이나 화성호인 거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먹고 자고 쉬고 하다가 다시 몸무게를 2배로 늘려요. 그리고 다시 날아 올라가서 알을 낳고 그렇게 20년 수명을 사는 거죠.


우리가 세계적인 흐름에 핵심인 거네요?

그렇죠. 경부선 타고 내려가는데 대전휴게소밖에 없는데 문을 닫는 거에요. 더 이상 못 가는 거죠, 기름이 떨어져서. 그렇게 중요한 중간기착지라 한국에 주목하는 겁니다. 전세계 9개 경로 중에서 가장 큰 데가 여기거든요. 이걸 지키고자 동아시아 대양주 철새이동경로 파트너쉽(EAAFP)이라는 국제기구가 만들어졌고, 그걸 인천에서 유치를 했죠. 환경부와 인천시가 출자를 해서 후원하고, 세계의 국가와 기업들이 도와줘서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는 거에요. 한국에 그만큼 소중한 본부가 있는 거죠. 람사르 같은데 가서도 EAAFP 목소리가 커요. 그만큼 여기 품은 새가 가장 많아요. 



실제로 환경변화로 새들의 경로가 바뀌기도 하나요? 

새들의 경로는 안 바뀌지만 오는 새들의 개체 수는 줄어버려요. 예를 들어 붉은가슴도요는 카리브 해에서 바다가재의 알을 먹고 살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바다가재도 잡지만 알도 막 음식으로 해먹기를 좋아했어요. 태어나자 마나 떨어져 죽거나 잡아 먹히는 애들이 절반, 하늘을 날다가 기름이 떨어져서 더 이상 못 가고 떨어지는 친구도 있고, 엄마아빠랑 헤어지고 도는 애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바다가재 알까지 가져가 버리니까 얘들의 먹이가 없는 거에요. 그래서 개체수가 줄었다는 연구가 있어요. 한국은 거기와는 좀 다르게 방조제로 다 막히니까 예전에 게나 지렁이가 풍성했던 곳이 흙이 되어 버렸어요. 예전에 비해 머물 곳이 좁아졌고 먹을 만한 게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낚시하고 공사하고 있으니까 무서워서 못 가고요.  


그래서 화성 습지가 람사르 습지로 지정될 수도 있다던데, 조건은 충족이 되나요?  

사실 조건은 차고도 넘쳐요. 람사르 습지 지정 조건 중에 1가지만 있어도 되는데, 3가지를 넉넉하게 충족해요. 이렇게 3개를 충족하는 습지는 우리나라에 인천 영종도와 화성 밖에 없어요. 첫째가 2만 개체 이상이 정기적으로 올 것. 봄 가을에 2~3만 많으면 5만 개체, 겨울에는 청둥오리가 7만5천이니 사시사철 항상 넘어요. 둘째가 전세계 물새 1종의 개체 수 1% 이상이 서식할 것. 전세계 4천여 마리 있는 저어새 중에 250여 마리가 오니까 6% 정도, 굉장한 거죠. 붉은어깨도요도 전세계에서 호주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발견하는 곳이 바로 화성이에요. 그렇게 1% 이상 서식하는 종만 십몇 종이에요. 셋째 희귀하거나 멸종에서 보호해야 할 종이 한 종 이상 살 것. 찾아오는 물새 중에 멸종위기종만 해도 28~30종 정도에요.



특별히 습지를 지켜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라도 있었나요? 

저 혼자 조사 끝나고 가려다가 잠시 더 있으려고 카메라를 잡고 있었는데, 앉아서 쉬는 새들이 갑자기 날기 시작했어요. 3~4만 마리아 군무를 추는 장면은 정말 장관이었죠.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그때 제가 그랬어요. 내가 지켜줄게. 자연이, 갯벌이, 새들로 대표되는 거죠. 멀리 호주에서 날아 올라온 새들이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는 그런 마음. 저만 느꼈던 감정을 많은 분들이 같이 느끼고 했으면 좋겠어요. 이 장면을 나만이 아니라 수십 년 후에 내 아들딸도 같이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같은 방식이라면 더 이상 보기 어려울 테니까요. 


습지를 사랑하게 된 순간이 그때인 건가요?

누군가를 사랑하기까지 어느 순간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거 같아요. 아내를 사귈 때 첫사랑인데 대학 때 나의 모든 모습을 본 친구가 어느 순간인지 모르게 연인이 되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알아야 되고, 아니까 보이고, 보이니까 사랑하고, 또 오래 보아야 예쁘고, 또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습지를 알면서 거기를 다니면서 애정이 생긴 거 같고요. 경험들이 누적되어서 생긴 거 같아요. 많은 분들이 한번 와서는 모를 수 있겠죠. 맞죠, 사랑이 그런 거죠. 보자마자 너무 예뻐 할 수도 있지만요. 


특별히 더 애착이 가는 습지의 생물이 있나요?

커피전문점에 가서 주문을 하면 불리는 별명을 지정하잖아요? 저는 청다리도요에요.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부르기 힘들어 하죠. 청다...리도요? 청다리도...요? 이러시고. 청다리도요가 목소리가 굉장히 청아해요. 뿅뿅뿅하는데 굉장히 예뻐요. 보호종은 아니지만 쉽게 접할 수 있는 새이기도 하고, 되게 귀엽기도 하고. 이름이 주는 맑음도 있고. 사실 다른 새들도 다 좋긴 한데, 그래도 청다리도요가 좋네요. 



그가 연신 “누추하다”고 말한 이 작은 공간에서 그리는 꿈은 결코 누추하지 않았다. 방조제가 들어서기 전에는 마을까지 깊숙하게 들어와 있던 갯벌로 지는 석양을 다시 만나기를 꿈꾼다. 그 갯벌에서 새들이 삐요삐요 맘 편히 울면서 노닐다가,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배를 드러내며 힘차게 날아오르기를 꿈꾼다. 서울에서 40분이면 오는 이곳에서 사람들이 자연을 누리다가 갈 수 있도록 화성 습지를 자연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리길 꿈꾼다. 그의 아들딸이나 그 자손에 자손까지 5만마리 10만마리 새들이 날고 더불어 같이 사는 모습을 보기를 꿈꾼다. 


어느 추운 겨울날 철새들을 보고 오느라 오들오들 떨고 온 날, 그는 또 커피전문점에 들려서 따뜻한 커피 한잔을 주문할 게다. 그리고 그를 부르는 이름이 온 매장 안에 울려 퍼지겠지, 청다리 도요님!,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뭔 다리? 하면서 주위에 있던 이들이 한번쯤 힐끗 거릴 테지만, 커피를 받으러 가는 그의 얼굴에는 아마 부끄러움은 없을 꺼다. 그의 이름을 부른 아르바이트 직원도 한번쯤은 더 생각하겠지, 청다리 도요? 내가 이 이름을 맞게 부른 게 맞을까? 그렇게 한번이라도 더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는 그의 마음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 구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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