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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성평화지킴이 Mar 24. 2020

사람이 찾아오는 어촌 마을을 꿈꾼다

누군가 만날 약속을 할 때면 다이어리에서 일정확인을 하듯 그날의 물때부터 살핀다. 아픈 가족의 안색을 살피는 것처럼, 한창 열애중인 연인의 일과를 챙기는 것처럼 언제나 바다의 상태가 궁금한 사람이다. 달이 차고 기우는 정도에 따라 조류가 세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하고, 바닷물이 한껏 높아진 만조와 얕게 깔리는 간조의 높이차도 달라지고. 매일 49분씩 늦어지는 밀물썰물시각을 챙기고 멀리서 오는 폭풍우까지 신경 써야 하니, 바다는 여간 까탈스런 상대가 아니다. 내내 하늘과 바람과 물을 살피며 사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어부다. 


그가 사는 집은 궁평항로에 있다. 매향리에서 바다를 향해 북서쪽으로 뻗어나가는 길. 바다를 끼고 달리다 보면 매향2리의 어촌계포구가 나오고 화성방조제를 건너 궁평항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여느 어부가 그렇듯 “물때가 제일 중요한 사람인지라 언제라도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항구로 가는 길목에 터를 잡았다. 사계절의 리듬에 맞추어 그의 일과도 달라진다. “봄이 오면 암꽃게를 잡기 시작하고 가을에는 수꽃게를 잡고” 그 사이 여름과 겨울에는 “꽃게 잡을 그물을 챙기며” 출항할 준비를 한다. 나지막한 집 옆에 만들어 놓은 비닐하우스에는 곧 다가올 봄에 알 가득 품은 꽃게를 잡기 위해 손질한 그물이 쌓여 있었다.  

바다가 꽤 가까이에 있네요. 언제부터 여기에서 사셨는지.

한 150미터만 걸어가면 뻘이에요. 1973년에 부모님 따라서 여기로 왔죠. 할아버지 때 이북서 피난을 와서 원래 태어난 고향은 백령도에요. 70년대만 해도 부지런하면 먹고 살 수 있는 데가 이런 바닷가였어요. 조개나 이런 것들 캐고, 탄피 주어다가 팔고. 도시는 일거리 없으면 굶지만, 여긴 나가면 먹거리 천지니까. 그래서 피난민들이 많아요.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기억나는 건. 

바람이 세서 겨울이면 무지하게 추웠고(웃음), 그 다음 기억은 무조건 바닷가에서 논 거에요. 어렸으니까 마을에 전투기들이 지나가면 신기했어요. 산마루에 올라가면 조종사가 다 보여요, (조종사가) 손 흔들고 가고. 낮게 뜰 때는 고도 100미터 안쪽에서 꽂히고 내려갔으니까. 미군들 지나가면 “기브 미 쪼꼬렛” 하고 쫓아다니기도 했고. 폭격 때문에 엄청난 피해를 본 마을이에요.

 

전투기가 폭격 훈련을 하는데 바다에 나갈 수 있나요?

(해상 사격 표지판이었던) 농섬 쪽으로 가면 고기를 확실히 많아요. 옆에서 사격하거나 말거나 가는 거에요. 파편이나 불발탄이 튀면 위험한데도 불구하고 가까이 가는 거야. 그러면 경비들이 난리 나고 잡히면 매도 맞고 그랬어요. 사격도 안 끝났는데 미리 들어가서 있다가 탄피를 먼저 주우려고들 하죠. 오후 5시에 사격이 끝난다, 야간사격이 없다 그러면 어둑어둑해 질 때 가서 탄피를 주어다가 판 거죠. 

 

친구들이 놀러 왔다가는 놀라서 도망갔다는 분들도 있던데.

어르신들이 이게 어디 사람 살 동네냐 그랬어요. 주말에 놀러 오면 (전투기) 사격을 안 하니까 먹거리 많고 좋잖아요. 바닷가에 어딜 가도 고기 흔하고 조개류 흔하고, 그랬다가 평일에 와 보면 기겁을 하는 거죠. 


그 소음을 계속 듣고 사신 건가요.

그럼요, 2000년대까지 들었다고 봐야죠. 아주 기겁을 하죠. 여긴 조용하게 대화를 못해요. 사람들의 목소리 톤 자체가 굉장히 커요. 꼭 싸우는 거 같아. 작게 좀 얘기해라 항상 그러는데 저도 얘기하다 보면 올라가 있더라고요. 우리 어머니도 지금 80이신데 웬만한 가수들보다 목소리가 높은 거 같아. 그거(사격장) 없어지고 나서는 얼마나 조용한지. 이제야 비행장에 대한, 사격에 대한, 소음에 대한 공포를 벗어났다 싶었는데.. 허허. 


비닐하우스 옆에 바짝 붙은 도로를 지나가는 차 소리가 꽤 시끄러웠다. 차들이 속도를 내며 지날 때면 비닐이 펄럭펄럭 진동을 해서 인터뷰 녹음이 방해될 정도였다. 허나 사격장이 있던 시절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했다. 하필 그가 이사 온 매향리에는 ‘쿠니 사격장’이라는 미 공군의 폭격훈련장이 있었다. 2005년에 폐쇄되기 전까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투기가 만들어내는 끔찍한 소음과 진동으로 고통을 받은 마을이었다.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였던 마을 앞 바다 ‘농섬’에는 해상훈련을 하는 전투기의 폭격 표지판이 세워졌고, 수십 년 동안 포탄이 내려 꽂인 섬은 반 토막이 났다. 

매향리 어장의 특징이 있다면.

여기가 갯벌 어장인데, 연안은 거의 비슷해요. 어느 쪽은 뻘 어느 쪽은 모래... 조개류도 다양하게 서식하고, 어류는 그 모래하고 뻘이 산란지가 돼요. 물이 차 있을 때 올라와서 산란을 하고 다시 물로 내려가요. 고기들이 다니는 길이 있고. 산란장소가 정해져 있죠. 패류에서는 굴하고 바지락이 좋고 유명해요, 워낙 많이 나기도 하고. 원래 피조개 같은 큰 게 있었는데 요즘에는 꼬막이 잘 돼요. 어선 업자들이 잡는 수산물은 주꾸미, 꽃게, 광어 같은 거. 주말이면 도시에서 관광객들이 아주 많이 와요. 


그렇게 외지인 손님들이 오면 일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지. 

그런 생각은 옛날 생각이에요. 일단은 사람이 모여야 그 안에서 먹고 사는 방법도 나오는 거에요. 사람들이 와서 낚시도 해보고 갯벌에서 조개도 캐보고 어부처럼 고기잡이 체험도 해보고. 이러면서 하루 놀다가 가면서 마을 사람들이 잡은 것도 사서 가고 그런 거죠. 꽃게, 주꾸미, 낙지, 굴, 바지락 많이들 사가세요.


주말 관광객에게 파는 양이 그리 많은지 몰랐어요. 마을 단위로 도매로 넘기지 않나요?

어업 같은 1차 생산물은 그렇게 해서는 미래가 없어요. 어업은 활어잖아요, 생물이자나요. 이런 생물은 사람이 있어야만 제 가격을 받고 어촌소득이 올라가는 거지, 도매시장으로 올려가지고는 안 되죠. 고기를 잡은 현장에서 판매해야 소득을 올리는데 도매는 헐값에 팔아야 하니까. 

그래서 지금은 사람이 안 오는 동네는 죽은 동네에요. 우리 마을의 소득은 사람들이 찾아 오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안 오면 이 마을의 소득은 없는 거에요. 


이제 생산만이 아니라, 관광과 결합해야 한다는 말씀인데요. 지금까지는 결과가 좋은지. 

4월 되고 나서 주말에 한 바퀴 돌아보시면 얼마나 많은 관광객이 오는지 놀라실 겁니다. 수도권이 가깝다 보니까 큰 공장들도 있고 그래서 일요일이면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새까매요. 물이 들어오면 기가 막히게들 알고 저 끝에서부터 망둥이 잡겠다고 밀려 올라와요. 거기에 관련된 산업들이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공항이 들어오면 이쪽 지역경제는 망가지는 거죠. 


지금 이 마을에만 해도 “어민 500가구 중에서 40대 이하는 한 20~30가구 남짓”이다. 이른 바 젊은 사람은 불과 이 동네 어민의 5% 정도. 그러니 70대 80대가 대부분인 어부들이 일을 접으면 이 마을의 어업도 끝이 난다. 환갑 잔치한 60대가 청년회 활동을 해야 하는 게 우리 농어촌의 현실이라는 말이 더 이상 농담만은 아닌 세상이 되었다. 이제 이 마을도 진지하게 다음 시대를 고민해야 할 순간을 맞은 것이다. 

군 공항이 어느 정도 영향일지. 

고기 잡으러 못 가는 나이 먹은 어부들은 뻘을 이용해서 뭔가 소득을 올릴 방법을 찾아야 하잖아요. 앞으로는 더 관광어업이 대세가 될 텐데요. 근데 여기 사람이 오겠어요? 시끄러워 죽겠는데 누가 회를 먹겠어요, 대화도 안 되는데. 비행기 하나 지나가면 소주 먹다가 소주잔을 엎어버릴 정도인데. 잠깐 비행기 뜰 때 근처에 있어 보세요. 사람 주저 앉아요. 바로 갯벌 앞에서 그 정도 소음이 날 거라고요. 특히 바다는 조용하잖아요. 


일반 어업에도 영향을 줄까요?

남들은 소음문제만 얘기할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전투기 사격장을 경험한 사람들이라 그건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는 거고. 우선 갯벌에는 다양한 새들이 오잖아요. 그 새들이 각자 역할을 하거든요. 물이 빠졌을 때 갯벌이 드러났을 때 거기에서 먹이활동을 하는데 그게 다 하나의 생태계죠. 그런 것들이 자연스럽게 굴러가야 하는데 당연히 영향을 받죠. 


새들이 떠나가는 것을 어부들도 걱정하시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그 새들이 가서 밭갈이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찍어대고 지렁이를 잡아 먹고 이런 것들이 저마다 역할을 하는 거에요. 뻘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거죠. 갈매기들도 한쪽으로 몰리면 고기가 저기 있구나 이런 것도 알고. 이 녀석들이 안 가던 방향으로 자꾸 가면 거기 뭔가 있다는 것에요. 새들이 뻘에 뭘 주우러 다닌다, 저쪽에 이상하게 몰린다, 그래서 가보면 거기에 없던 생물이 있어요. 도요새, 요런 것들은 뻘이 좋은 데가 아니면 안 앉아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수십만 마리가 착 내려앉아요. 근데 절대 오염된 쪽에는 안 옵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말이 그저 말뿐이 아니라 진짜 그래요. 


도시인에게는 그저 무용지물처럼 보이는 새들도 어부에게는 예사롭지 않은 “길잡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도 갈매기 소리를 따라가면 육지가 나온다.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갈매기가 몰리기 시작하면 거기에는 뭔가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오랜 세월 자연과 살다 보니 자연의 징조를 제대로 읽는 방법을 책에서보다 훨씬 먼저 배운 사람들이다.  

매향리 마을 분들에게 공항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는 공항이라고 하면 사격훈련장, 폭격장부터 떠올라요. 그 시간을 경험 안 해 본 사람은 몰라요. 그 고통을 받은 사람에게 또 공항이라면 너무 한 거죠. 수십 년 사격장으로 고통 받고 또 군공항으로 고통 받으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죠. 


사람들에게 바람이 있다면. 

매향리하면 평화,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을로 지켜주면 좋겠어요. 앞으로 미래어촌사업의 선두로 나갈지 바로 지금이 갈림길이죠. 관광어촌을 꿈꾸던 그림들이 물거품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연과 함께 하는 평화로운 어촌마을, 먹거리 볼거리 있는 어촌마을, 그 정도면 되지 않겠어요? 


계속 살고 싶으세요, 매향리에?

저는 여기가 제일 좋아요. 바다에 새벽에 나가면 세상에 그런 평화가 없어요. 그물 던질 때 고기가 들었을 때, 돈이 다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가 즐거운 거죠. 평화 자체가. 그래서 바닷가 생활이 좋아요. 무슨 일이 없는 한 저는 평생 그렇게 그물 내리면서 살 거에요. 

마을 앞 바다에서 표적판이 사라지고 마을 하늘에서 전투기가 떠나간 후, 이제 15년 남짓 겨우 즐겨 본 새벽의 평화다. “갯벌과 어장이 지금 모습으로 다시 회복되는 데만 해도 20여년이 걸렸다”고 한다. 한동안 “흉년이었던 주꾸미와 꽃게가 최근 2~3년 사이에 다시 나오기 시작”해 참 기쁘다고도 했다. 노을이 아름다운 이 마을의 풍경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그런 즐거움 속에서 생기가 사라져가는 어촌 마을의 미래도 찾고 싶다. 


꿈을 그리다 보니 이루고픈 바람도 생겼다. 매향리 앞 바다의 갯벌은 비행기가 나는 소음이 아니라 깔깔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이 메웠으면 좋겠다. 방조제 위로 날아가는 건 전투기가 아니라 어부들의 오랜 친구인 새들이었으면 좋겠다. 시끄럽고 피하고 싶은 마을만큼은 또 다시 되고 싶지가 않다. 고맙게도 이곳을 다시 찾아 준 새와 사람이 서둘러 떠나지 않을, 그저 평온한 어촌 마을이고 싶다. 단순하지만 간절한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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