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운/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주민, 경기남부수협 중매인, 궁평낙조횟집
유난히 봄이 늦게 찾아오는 동네다. 훨씬 더 윗마을에도 하얀 벚꽃무리가 팡팡 터졌다가 이미 지고 있는데, 이곳은 이제야 조심스레 꽃망울이 열렸다. 바람이 유독 많은 동네라 그렇다. 갈대습지를 따라 길게 뻗어가는 화성방조제의 건너편에도, 두 팔 벌려 항구를 안고 있는 방파제의 앞에도 반짝이는 바다가 한 가득. 그 바다를 타고 불어 오는 바람이 변하는 계절의 온도를 한풀 꺾었는지. 살짝 더 기다린 만큼 훨씬 더 반가운 봄의 바다였다. 그 바다를 서쪽으로 바라보는 건물마다 여행자를 부르는 간판이 걸려 있다. 가족과 나눌 거한 상이 차려질 꼽히는 궁평리다운 풍경이다. 안 그래도 늦게 도착한 봄인데, 이제야 한창 화사한 봄이 시작인데, 이 바다를 같이 즐길 사람 발길이 확 줄어들어 조금은 쓸쓸해 보였다.
1.
바다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잠시 해변에 섰다가는 센 바람에 떠밀리듯 옷깃을 부여잡고 약속장소인 횟집 안으로 들어갔다. 전화로만 인터뷰 약속을 하고는 처음 만나 본 주인장은 여간 다부진 몸매가 아니었다. 30년 경력의 수협 중매인 출신, 매일 아침 빠르게 어획상황을 파악하고 재빠른 손놀림으로 좋은 물건을 확보하는데 인이 박힌 사람이라 허튼 몸짓 하나 없었다.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2층으로 재빠르게 안내하더니, 바다가 하나 가득 들어찬 커다란 창문 앞에서 거침없이 인터뷰를 시작한다. 허허 마음껏 물어보세요, 그 말이 참 반가웠다.
바람이 엄청 부네요.
원래 계절이 바뀔 때면 바람이 세지는데, 올해 봄은 유난히 세네요. 겨울에서 여름으로 가거나, 여름에서 겨울을 갈 때. 그러니까 봄이랑 가을은 원래 바람이 많이 불어요. 울릉도처럼 먼 바다에서 발목 잡히는 것도 보통 그 계절이고(웃음).
요즘에는 수협 경매장에 어떤 물건이 들어오나요?
우리 수협에는 딱 여기 인근바다에서 잡는 어종이 들어오거든요. 요즘은 쭈꾸미 소라 돌게 좀 있으면 봄 꽃게가 나올 테고. 4월말에서 5월초는 바지락이 제일 통통할 때죠. 10월말 넘으면 암꽃게가 많이 잡히고. 겨울에는 간재미, 숭어 연초에는 농어, 키조개가 많아요. 특히 여기 낙지는 품질이 좋아서 제일 많이 가격을 쳐주죠.
이곳에서 나는 낙지는 맛이 다른가요?
보통 낙지가 크면 질기고 맛없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에서 잡은 낙지는 커도 부드러워요. 돌이 많이 섞인 뻘에서 나는 다른 지역 낙지는 다리가 억세고 질겨요. 잡는 방법도 중요한데 뻘에서 잡은 낙지가 더 맛있어요. 통발에 넣어서 잡은 건 맛 차이가 많이 나요. 막 탈출하려고 이리저리 부딪혀서 머리에 까만 멍도 들어 있거든요.
가까이에서 잡은 게 더 좋나요?
수산물은 신선도가 생명이에요. 잡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어떻게 잘 실어오는지, 경매장에 올 때까지 어떻게 관리했는지에 따라 가격이 완전히 달라져요. 꽃게도 그래요, 먼 바다에서 잡아오는 건 다리도 떨어지고 살도 쭉쭉 빠지고. 죽은 채로 물에 넣어 놓으면 살이 다 퍼져서 상품성이 떨어져요. 여기 가까운 바다에서 잡은 꽃게들이 더 맛도 좋고 살도 꽉 차 있죠.
이 마을의 어선들이 거래하는 경기남부수협의 경매시간, 매일 아침 10시에 맞춰서 온 마을이 움직이다. 시시각각 상태가 변하는 생물을 다루는 일인지라, 괜스레 서둘러도 아차 때를 놓쳐도 허탕이다. 매섭게 움직이는 중매인들의 눈에 차야 최고의 값도 받을 수 있는 법. 딱 경매하는 순간에 최고의 상태로 내놓을 수 있게 물건을 가지고 와야 한다. 새벽 2시에 짧은 조업을 나갔든, 1박 2일로 조금 긴 조업을 나갔든, 아침 10시는 모두의 집합시간인 셈이다.
2.
그럼 갯벌이 중요하겠네요?
어촌은 뻘이 곧 생명이에요. 뻘에서 온갖 생물이 다 자라거든요. 뻘에서 알도 낳고 먹이도 먹고. 바다의 생명체는 다 뻘에서 나온 거에요. 이 뻘에 따라서 사는 어종도 달라지고 맛도 달라져요. 여기에서 자란 꽃게나 낙지가 맛있는 것도 다 이쪽 지역의 물과 뻘이 맞기 때문이거든요.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군 공항이 어족자원 씨를 말린다’는 플랭카드가 걸려 있던데요?
군 공항이랑 물고기랑 무슨 상관이냐 생각하기 쉬운데요, 그게 다 환경오염과 직결되는 문제에요. 바로 옆에서 비행기가 날아다니는데 어떤 사람이 살겠어요, 다 떠나죠. 사람이 살기 싫어하는 곳이 되면 땅값도 훅 떨어지는데요. 그럼 저렴한 땅값을 찾는 공장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것도 오염물질이 많이 생기는 공장들이요. 그러면 여기 뻘이 망가지는 건 다 한 순간이에요.
바다 속의 물고기도 시끄러운 소리를 들을까요?
살아있는 생명체들은 다 진동을 느끼고 소리를 듣죠. 소들한테도 좋은 음악을 들려주곤 하잖아요. 낙지나 게들도 바닷물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 갯벌 위 아래로 움직여요. 여기 바다도 큰 배들이 지나다니게 되면서 물고기들이 많이 사라졌어요. 커다란 스크류가 돌면서 온 바다 안을 다 휘저어 놓거든요. 물고기들이 다니던 길도 막히고. 비행기가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가 좀 커요? 그 진동이 바다에도 안 전해질 리가 없죠.
오는 길에 보니까 갈대습지가 많던데요.
거기에도 새들이 참 많이 오죠. 군 공항이 들어오면 그 새들도 다 사라지겠죠. 새들이 없어지면 여기 뻘도 같이 죽어요. 다 생명의 순환이니까. 예전에 만리포에서 유조선 사고가 났을 때 갑자기 이쪽으로 쭈꾸미들이 몰려들었어요. 어떤 배는 40일 동안 6억원어치를 잡았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에요. 그쪽 쭈꾸미들이 못 살겠으니까 기름을 피해서 온 거죠. 그만큼 자연은 신비로운 겁니다.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거죠.
어촌은 뻘이 생명이라는 말을, 몇 번이고 강조한다. 우리 바다도 서해의 갯벌이 키운 것이라고 했다. 다양한 어종의 보금자리인 서해가 있기에 치어들이 자라나 남해로도 이동하고 대형고기가 잡히는 동해의 어장도 생긴 것이다. 파랗고 투명한 바닷물이 아니라 섭섭했는데, 뻘이 섞여 뿌옇게 흐려진 서해의 바닷물이야말로 진짜 생명을 키우는 밭이었다. 검은 진창으로만 보이는 서해의 갯벌이 보물단지였다.
3.
궁평리에 자리를 잡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세가지 조건을 다 갖춘 바다가 많지 않아요. 포구, 노송, 백사장. 이 세가지가 있어야 최고의 환경인 거죠. 일단 바다에 놀러 왔으니 시원하게 펼쳐지는 백사장은 기본이고, 사람들이 들어가서 쉴 수 있는 커다란 소나무 그늘도 필요해요. 싱싱한 해산물을 바로 잡아오는 항구도 있어야 해요. 먹고 가기도 하고 사가기도 하고. 이런 삼박자를 다 갖춘 바다휴양지로 궁평리 만한 곳이 없죠.
관광업이 미래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벌써 삼십 년 전 일이긴 한데, 사람들 소득이 높아지고 도로가 뚫리고 자동차가 생기면 그 다음은 관광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일하고 나서는 쉬어야 하니까요. 처음에는 제부도에 있다가 궁평리 쪽의 가능성을 보게 된 거죠. 게다가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이잖아요. 이정도 가까운 거리에서 이런 바다를 어떻게 보겠어요. 저 멀리까지 놀러 가는 것도 한 두 번이죠. 한 시간 정도면 편히 쉬다 갈 수 있는 휴식처, 수도권의 관광 메카가 되는 시작점이라고 봐요. .
이곳이 좋은 이유를 하나하나 손으로 꼽아가며 설명하는 눈빛에 의심이 없었다. 서해의 여러 해안을 비교해 보고, 경기도 다른 지역도 둘러 보고, 더 먼 휴양지를 살펴봐도, 궁평리가 가진 가능성은 빛나 보였다. 더 좋은 마을로 만들어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픈 의지로 꽉 차 있었다.
결국 사람이 얼마나 오냐가 중요하네요.
마을의 일자리도 사람이 와야 생겨요. 사람이 모여야 쓸 돈이 생기고, 여기에서 바로 잡은 신선한 해산물도 팔 수가 있죠. 기운이 떨어져가는 노인들이 계속 일자리를 가질 수 있으려면 관광업만이 답이에요. 우리 마을사람들도 좋은 해산물을 제대로 잘 팔고, 놀러 온 사람들이 재미있게 잘 지내다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해요. 하지만, 군 공항이 들어오는 순간 이곳을 찾는 사람은 다 없어지죠. 사람이 없어지면 일자리도, 바다도, 다 끝이에요.
4.
커가는 자식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남은 꿈이라고 했다. 외식관광계열로 진학한 둘째가 언젠가는 아버지가 하는 일을 물려받고 싶다고 말하는 순간을 내심 기다리는 중이다. 수십 년 동안 먼저 이 길을 가면서 쌓아 놓은 노하우도 꼭 알려주고 싶단다. 지금 하는 일에 진짜 애정이 없다면, 지금 바라보는 꿈에 희망이 없다면, 하지 못할 말이었다.
그가 믿는 구석은 이 넉넉한 바다였다. 바다만큼 인심 좋게 무한대로 퍼주는 건 세상에 없다고 했다. 씨를 뿌리지 않아도 부러 김을 매지 않아도, 때만 되면 그물 가득 고기가 들어찬다. 다른 건 다 필요 없이 자연을 괴롭히지만 않으면, 검은 갯벌에서 알아서 새끼를 끼우고 토실토실 살을 찌운다. 사람이 할 일은 그저 지금보다 더 괴로운 공해를 더하지 않는 것뿐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으면 자연을 망친다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람이 오는 곳을 만들어야 더 큰 자연의 파괴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너무 시끄러워서 사람이 찾지 않게 된 곳에서는 자연도 자랄 수가 없다. 이리저리 진동이 울려대 사람조차 버린 자연에서는 새도 물고기도 견디지 못한다. 새도 사람도 물고기도 모두가 살고 싶은 곳, 새도 사람도 물고기도 다시 찾아오고 싶어하는 곳, 그 교집합 속에 이 마을의 미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