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라이프 15화. 너에게 간다
2018년 11월, 지금으로부터 딱 6년 전 이맘때 즈음의 이야기다.
독일로 혼자 열흘간 여행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여정은 프랑크푸르트, 뮌헨, 베를린 세 곳이었다. 왕복 항공권은 물론이고 숙소와 기차·버스티켓까지 온라인으로 예매 및 결제를 해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빠가 아프셨다. 뇌혈관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과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빠는 내가 그전부터 계획했던 것이니 독일에 가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제대로 된 마음으로 지내다 올 자신이 없었다. 결국 독일에게 나중을 기약했다.
수술이 끝난 후 아빠는 다른 가족들은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고 나만 남겼다. 심신의 안정이 최우선이었으니, 아마도 그만의 방식을 존중하며 묵묵하게 있어주는 내가 가장 편안했기에 그랬을 거다. 나는 서울대병원 입원실의 간병인 침대에서 아빠 곁을 지켰다. 벌써 6년 전 가을밤이다.
감사하게도 아빠는 별 탈 없이 무사히 회복했다. 이후 나의 인생은 대학원 졸업과 맞물린 회사생활 시작으로 쉼 없이 이어졌다. 자연스레 독일은 나에게서 아득하고 희미한 점으로 스러졌다. 그러다 불현듯 깨달았다. 이렇게 또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면?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나중이란 없구나.
아무런 준비가 안됐음에도 퇴사 후 바로 독일로 떠난 이유다.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한국에서 미리 독일어 좀 공부하고 올 걸', '방향과 목적을 확실하게 정하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시간적, 금전적, 감정적으로 훨씬 똑똑한 독일살이를 했을 것 같다는 아쉬움 말이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삶은 결코 내 의지와 계획대로만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독일 유학을 준비하는 시간 동안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몰랐고, 가족이나 친구 중 누구 한명에게라도 큰 이슈가 생기면 떠나기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 사이에 나의 결단과 추진력이 약해질 수도 있었다. 고작 열흘짜리 여행 한번 가기도 그토록 어려웠는데, 하물며 연단위로 살아보기란 당연하다.
그리고 마침내 내일 뮌헨으로 일주일간 여행을 떠난다. 6년 전 가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던 독일의 세 도시 중 마지막으로 남은 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 뮌헨은 가기도 전부터 괜스레 벅차고 애틋한 지역이다.
여전히 나의 휴대폰 속 애플월렛에는 지금은 유효하지 않지만 그때 예매했던 뮌헨행 버스티켓이 있다. 메모장에는 그때 적어놓은 여행 계획이 그대로 있다. 에어비앤비 위시리스트에는 그때 가장 기대했지만 예약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던 뮌헨의 어느 숙소가 저장돼 있다.
내일 뮌헨에는 눈 소식이 있다. 첫눈의 마음을 품고 나와의 약속을 지키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