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투자의 조건
앞의 글(1)에서, 코인을 투자한 K의 호소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건망증'이고,
두 번째는 '하루가 삭제되는 느낌'이다.
나는 K의 그러한 심리적 현실은 여러 관점에서 파악될 수 있음을 K에게 말했다.
오늘 나는 이에 대한 그 두 번째의 글을 쓰고자 한다..
K는 코인 투자를 통해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활동은 각자 형편과 모양이 다를 뿐 먹고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삶의 방편이다.
그런데 K가 코인의 시세를 하루종일 살피는 그런 행동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 때문이다.
누구나 존재 상승, 또는 자아 발달을 위해 욕망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그가 투자활동을 하는 동안 욕망에 사로잡혀 시장변화를 계속 주시함으로써 하루하루가 삭제되는 느낌이라면 그의 욕망에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투자를 둘러싼 몰입습관은 경제활동을 넘어서서 K의 정체성과 감정상태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위기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 관점에서 보면, 이런 몰입은 원본능(id)과 초자아(super ego) 사이에 있는 자아(ego)의 갈등을 반영한다.
즉, K의 자아가 투자로 인한 즉각적인 만족(원본능의 욕구)을 추구하는 반면, 초자아는 금지의 명령어를 장착한 채 도덕적 감시를 늦추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양극단의 내적 갈등은 불안과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원본능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와 충동을 대표한다.
코인 투자에서 얻을 수 있는 즉각적인 만족이나 급격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수익률 변화양상은 원본능의 강력한 자극을 받게 되어 있다.
원본능은 심리적으로 쾌락 원칙에 따라 즉각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자아는 현실과 타협하며 장기적인 안정과 자아 존중감을 유지하려는 역할을 한다.
자아는 미래를 계획하고, 위험을 평가하며, 장기적인 목표에 부합하는 행동을 취하려고 한다.
자아는 투자의 위험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장기적인 금융 안정을 위해 계획을 세우려고 할 것이다.
초자아는 원본능의 쾌락원칙에 대해 계속 감시하고 견제한다.
자아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K의 경우, 코인투자 시세상황에 몰입하는 것에 대해 초자아가 원본능의 쾌락원칙을 견제하거나 균형을 잡아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아는 우울한 상태에 빠져있다.
이러한 우울에 대해 K는 '하루하루가 삭제되는 느낌'으로 표현하고 있다.
투자활동에 시간과 공을 들일 수록 자존감은 낮아지고, 평소 자기 스스로 생각하던 정체성이 흔들리고, 원본능의 욕구에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자아는 스스로에 대한 존중감이 낮아진다.
또한 스스로 균형을 잡아갈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가면서 자아 탄력성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갈수록 원본능의 쾌락원칙에 이끌려 충동적인 투자로 인한 스트레스와 본인이 원하는 장기적 목표 사이에 균형은 깨져 버린다.
이러한 갈등은 K로 하여금 심리적인 스트레스, 결정장애 등으로 이끌어가면서 되면서 궁극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결과로까지 이끌 수 있다.
K의 문제는 몰입이다.
그는 몰입 대신 집중력을 키워야 한다.
몰입은 주변상황을 망각하고 한 가지에 자기 존재를 모두 쏟아붓는 것이다.
컴퓨터 게임에 몰입한 사람은 정신과 신체의 분리가 일어나면서 정신이 게임에 몰입하게 되면서, 현실을 잊어버리고 정신은 모니터 안에 들어가 버리면서 정신과 분리된 신체는 고깃덩어리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일이 장기간 반복되면, 그 몰입의 대가로 '이인증'을 앓게 된다.
이처럼 코인에 몰입하게 되면 현실감각이 떨어지게 되면서 다른 사람이 보면 당사자는 꼭 다른 나라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K 가 '하루하루가 삭제되는 느낌'은 정신이 핸드폰에 몰입하느라 자기 몸을 챙기지 못하는 느낌인 것이다.
집중력은 몰입과 다르다.
집중력은 정신과 신체가 잘 결합된 상태에서 주변상황에 대한 인식을 하면서 어느 특정 상황에 집중하는 것이다.
몰입은 주변환경, 또는 주변사람들과 관계를 놓쳐 버리는 반면, 집중이란 그런 관계를 놓치지 않고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건강한 투자활동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 첫째는 전능환상 경험 여부이다.
전능환상체험은 유아기에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경험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따뜻하고 공감적인 품을 제공하였으면 아기는 전능환상을 충분히 체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아기에 전능환상을 충족적으로 경험한 사람이라면 더 이상 전능환상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그런 사람은 자기 존재를 넘어서는 불필요한 상황에 말려 들지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 자제하고, 통제하며, 외부 상황에 대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인생을 매우 창조적이고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전능환상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자신을 전능환상으로 몰아가는 타자나 상황에 대해 경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일확천금을 벌어 보겠다거나, 하늘의 특별한 운을 바란다거나, 자신을 매우 특별한 사람으로 여긴다거나, 땅에 닿지 않은 생각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전능환상 체험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주변 상황에 대해 경계하며 살아야 한다.
주변상황이란 보이스 피싱, 인터넷상에서나 신문지상에서의 투자 유혹 등 갈수록 전능환상을 자극하는 유혹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을 말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혹에 잘 넘어가는 것은 자신이 똑똑하고 지능이 높으며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지식이 높은 것 등과 전혀 상관이 없다.
예를 들어 은행 지점장이 보이스 피싱에 걸려, 자신의 지점에서 3000만 원을 대출한 후, 계좌 이체를 하는 순간 깨닫았다고 한다.
'내가 지금 보이스 피싱에 걸려들었구나'
라는 자각이 일어난다.
둘째 자기-대상 경험의 여부이다.
자기-대상경험이란, 어릴 때부터 어머니를 자기의 연장으로 마음껏 휘둘러 보는 경험이다.
부모는 자녀의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에 자녀의 요구에 대해 자신의 정체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휘둘려 줘야 한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가 성인이 되기까지 자기-대상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자녀는 부모를 그렇게 휘둘러 봐야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휘두르지 않는다.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자녀는, 힘 있는 부모에게 휘둘린다.
어머니를 자기-대상으로 마음껏 휘둘러 본 경험이 없으면, 세상에 나가서 힘의 논리 휘둘린다.
강자에 의해 휘둘리는 약자로 경험을 하게 되면, 내가 강자가 될 때 눈앞에 있는 약자를 그냥 두지 않는다.
학교에서 왕따문화와 학교 폭력사태는 이런 인과관계로 발생한다.
내 앞에 약자가 나타나면 스스로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약자를 휘두른다.
늘 을의 위치에서 당하기만 하다가 갑자기 갑의 위치에 서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을의 위치에 있는 자를 휘두르게 된다.
전능환상과 자기-대상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내 앞에 약자가 나타나면 삶의 생생함을 경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그래서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약자, 을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마음껏 휘둘러 보고자 한다..
늘 부모 밑에서 피학자로 있다가 힘을 갖게 되는 순간 가해자로 입장이 바뀌게 된다.
이렇게 자기-대상 경험이 부재하는 사람은, 직장에서 상사가 되면 부하 직원을 닦달하며 휘두르는 경험을 하면서 자기 존재감을 생생하게 느끼고자 한다.
결혼하여 연약한 아내를 마음껏 휘둘러 부모 관계에서 느끼지 못했던 생생한 존재감을 느끼고자 한다.
주식이나 코인 투자활동도 마찬가지이다.
자기대상경험이 부재하는 사람은 주식과 코인 투자를 자신의 돈으로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여 자기 대상으로 삼는다.
그래서 그는 투자 시세를 하루 종일 몰입하면서 확인하게 된다.
이런 몰입이 생생함을 가져다주지만, 원본능의 쾌락원칙에 휘둘린다는 사실을 자각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되면 초자아가 뒷전으로 물러나 있게 되면서 원본능을 바로 잡는 균형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만다.
위의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사람이 투자활동을 하면, 그는 투자에 몰입하지 않고 꼭 필요할 때만 집중해서 상황판단을 내리는 등의 건강한 투자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일상을 빼앗기고, 하루하루가 삭제되는 느낌을 가지는 대신, 투자활동을 자신의 삶의 일부로 삼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건강한 투자활동을 하면, 본인은 그런 활동을 통해 여러 가지 유익과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