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 vs 이강인
대한민국에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사람이 몇몇 있다.
김연아, 유재석, 함영준, 손흥민.
사람마다 다른 견해일 수 있지만, 이 명단에 살짝 끼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사람이 백종원인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견해이다.
이 중에 생소한 사람이 아마도 함영준 일 것이다.
그는 오뚜기 그룹 회장이다.
왜 그를 건드리면 안 되느냐 하면, 그는 세금을 정확하게 내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기 때문이다.
그렇게 큰 그룹의 재벌이 세금을 내는 것을 가장 높은 가치로 여긴다면, 그의 삶은 두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 그를 둘러싼 정평이다.
김연아와 유재석, 손흥민은 왜 건드려서는 안 되느냐는 것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더 이상의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다가도 차츰 알게 되는데 여기에는 다른 이유가 필요가 없다.
이 사람들을 누군가 잘못 건드렸다 하면 건드린 사람은 낭패를 보기 마련이다.
그런데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딱 한 사람 있었다.
손흥민을 건드린 이강인이다.
이강인이 한국에 오래 살았다면 자동으로 알게 될 것이었는데, 너무 일찍 한국을 떠나서 이것을 몰랐을 수 있다.
이강인은 너무 일찍 조기유학을 갔다.
초등학교 4학년 나이에 온 가족이 강인이를 축구 선수로 만들기 위해 스페인으로 갔다.
그 시절에 이강인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고, 내가 굳이 알바도 아니다.
현상적으로 나타난 것을 가지고 손흥민과 이강인을 비교해 보면, 손흥민은 아버지가 전인격적 교육과 올바른 가치관을 몸에 배도록 심어 주었다면, 이강인에게는 부모교육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이준석에 대해 '부모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했을 때 인요한 위원장이 몰매를 맞고 철회하였지만, 전혀 틀린 말이 아니다.
이준석의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그의 행위를 보면 가히 짐작이 간다.
아버지 같은 사람, 자기보다 윗사람으로서 권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모조리 깎아내리고 내부총질을 해 대는 것을 보면, 그것은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아마도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로 진출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똑같지는 않지만 이강인도 마찬가지이다.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손흥민을 건드리자 이강인의 과거의 악행이 다 드러나고 말았다.
알고 보니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켰지만, 그의 놀라운 축구재능이 그 문제들을 덮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축구 재능은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의 무례함과 예의 없음, 타자에 대한 무시, 자기보다 능력이 부족한 선수들에 대한 무시 등의 문제를 덮을 수 있었다.
비리를 덮을 수 있는 능력도 손흥민을 건드리기 이전까지만 통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손흥민을 건드리자 자신의 과거 수많은 만행들이 저절로 수면 위로 다 기어 올라왔다.
이강인은 탁월하게 유능한 축구재능을 가졌지만, 왜 소속팀 발렌시아는 그를 기용하지 않았는가?
22년 카타르 월드컵 국가대표 감독 벤투는 수많은 관중들이 환호하는 "이강인!! 이강인!!"의 지속적인 함성을 듣고도 왜 이강인을 기용하지 않았는가?
알고 보니 두 팀의 감독은 인성은 안 된 상태에서 축구재능만 뛰어난 사람은 팀워크를 저해하기 때문에 오히려 축구경기를 곤경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는 판단을 했던 것 같다.
이강인이 간과했던 것은, 우리나라처럼 경직된 것은 아니지만, 유럽사회에도 나름의 나이에 대한 존중과 권위자에 대한 존경, 눈에 보이지 않는 위계질서가 있다는 점이다.
유럽에 오래 살았지만, 이강인은 유럽사회의 내면화된 질서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런 유럽사회라고 해도 그것은 일차적으로 부모교육의 영역이다.
이런 인성 교육의 부재가 손흥민이라는 대가 앞에서 축구 신동의 철없는 만행으로 확 드러나 버린 것이다.
아무리 악한 의지가 강하다고 해도 선한 의지를 이길 수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의지가 있고 악한 의지가 있다.
물론 선한 의지가 악한 의지보다 더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한 사람도 있다.
그것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기 때문에 제시할만한 표준치가 없다.
특히 정치인들은 건드려 봐야 그 인물됨을 알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을 그냥 가만히 놔뒀으면 자기 직을 수행하는데 최선을 다하다가 사라지게 되어 있었다.
다음의 사람들은 건드려 봐야 그가 어떤 인물인지 알 수 있게 되는 경우이다.
그 첫 번째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이다.
김대중은 박정희의 대권에 위기를 가져 올 만큼 치명적인 인물로 부각되었다.
급기야 박정희는 1972년 10월 유신헌법을 공표하며 영구집권을 꿈꿨다.
김대중은 당시 일본체류 중이었고, 일본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였지만 중앙정보부는 그의 암살을 계획했다.
일본에서 김대중을 납치하여 용금호라는 배에 태워 온몸에 돌을 묶어 바다에 던져 익사시킬 계획이었다.
납치 정보를 입수한 미국 CIA가 비행기를 띄워 용금호를 발견하게 되면서 김대중은 암살을 면하게 되었다.
박정희 군사 독재 시절, 박대통령의 선한 의지는 경제발전에 드러냈다면, 악한 의지를 김대중에게 드러냈다.
전두환 대통령시절에는 국가전복의 죄명을 씌워 사형까지 선고되었다.
두 정권이 김대중을 치명적으로 건드렸지만, 건드리는 만큼 김대중은 거인이 되어 갔다.
마침내 그는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어 무난하게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두번 째 사람은 윤석렬 대통령이다.
그는 평범한 검찰총장에 불과했다.
그런데 당시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굴복시키기 위해 온갖 야비한 짓을 다 벌렸다.
자신의 악한 의지를 드러내어 검찰총장을 두드리면 두드릴수록 검찰총장의 선한 의지만 드러났다.
검찰총장은 임기 만료되면 평범한 공무원으로 돌아갈 참이었지만, 법무장관이 그를 건드릴 때마다 대중적인 지지가 높아지면서 급기야 대통령의 자리로 올려 주었다.
누구나 잘 아는 그레샴의 법칙,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The bad money drives out the good money)"를 기억할 것이다.
악이 드러나면 더 악해지는 것이 아니라, 악이 강해질수록 순수한 선이 드러나게 되어 있다.
세 번째 사람은 한동훈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이다.
그가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 중일 때, 야당이 얼마나 많이, 강하게, 그리고 엉뚱하게 그를 두들겨 팼는가?
묘한 것은 그를 건드리면 건드리는 만큼 그 이상의 인물로 만들어져 간다는 것이다.
한동훈을 인물로 만든 것은 그의 지지자들이 아니다.
그를 탄압하고자 하는 야당 의원들이다.
야당의원들이 국정 조사를 한답시고 정상적인 국정조사는 하지 않고 한동훈 때리기에 급급해 그 강도를 강화해 가면 갈수록 갈수록 한동훈을 더 큰 인물로 만들어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무너뜨리고자 온갖 가짜 뉴스를 활용해 악한 의지를 드러내는 만큼 한동훈의 선한 의지만 드러나게 만들어 버렸다.
보잘것없는 검사가 지금은 어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거인이 되어 버렸다.
네 번째 사람은 바로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이다.
야당에서 소위 검찰독재라고 명명하는 시스템으로 이재명을 때리자 때리는 만큼 인물이 되어 가고 있다.
이해찬의 말에 의하면, 검찰독재의 이러한 연타 때리기는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어가는 담금질에 해당된다고 한다.
여당지지자들은 절대 검찰 독재라고 하지 않을 것이고, 검찰의 선한 의지가 이재명의 악한 의지를 만천하에 드러내면서 그를 인물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무리 때리고 때려도 그는 넘어지지 않는 오뚝이 같고, 철옹성 같은 견고함만 더해갈 뿐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견고함은 받쳐 줄 선함의 의지가 없기 때문에 언젠가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세 번째 인물을 보면 성경의 아래 구절이 생각난다.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니 만일 사탄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의 나라가 어떻게 서겠느냐"(누가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