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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없는 청소년(녀)과 대화하기


말이 없는 청소년과 대화하는 어려움은 꼭 상담자만의 고민이 아닐 것이다.

그런 자녀를 둔 부모, 그런 제자를 둔 교사, 주일학교 교사, 청소년 사역을 하는 목회자도 함께 해야 할 고민이다.


상담자가 제일 힘들어하는 내담자 중에는 말을 하지 않는 청소년/녀(앞으로 '청소년'으로 통일)이다.

부모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상담실을 찾아와 상담자 앞에 앉아 있는 청소년이 있다.

이런 청소년은 대개 말을 하지 않고 묻는 말에 짧게 대답만 한다.

어떤 청소년은 하고자 하는 말을 가지고 있지만 말을 꺼내는 것을 힘들어한다.

어떤 청소년은 아예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온다.

어떤 청소년은 다른 상황에서는 이야기를 잘하는데 상담 상황에서만 함구하든가, 아니면 권위자 앞에서만 함구하는, 말하자면 선택적 함묵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이런 청소년을 어떻게 대화가 가능하게 만들 것인가?


이것이 그 상담자의 고민이자, 청소년 상담자 대부분의 고민일 것이다.


함묵증 청소년에 대한 이해


청소년이 입을 다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특정한 장소나 상황, 또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 앞에서 선택적 함묵을 하는 경우이다.

선택적 함묵증을 보이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수줍음이 많고, 불안해하며, 때로는 고집이 세고, 아기 같은 의존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그의 정서적 관계가 나이에 맞게 성장하지 못해 자신의 유아적 미성숙함이 드러날까 하는 두려움으로 불안해하는 경우이다.


'혹시 내가 하는 말이 적절하지 못한 말이면 어떻게 하지?'

'혹시 내가 하는 말이 우습게 보이면 어떻게 하지?'

'혹시 내가 하는 말이 상담자가 원하는 것이 아니면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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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청소년을 대할 때, 상담자는 가장 안정감을 주는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상담실의 공간은 청소년 내담자가 가장 마음을 놓고 편안하고 안심할 수 있는 공간임을 인식시켜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상담자 역시 마음을 최대한으로 개방하여 청소년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다 받아줄 수 있으며, 상담실 밖으로 전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기에는 성적인 욕망이 올라오게 되는데, 이때 당사자는 자신의 자아를 분열시켜 속마음에 해당하는 제1 자아와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자신을 외부로 개방하는 제2 자아로 분화를 진행시킨다.

상담자는 청소년 내담자로 하여금 제1 자아를 마음껏 드러내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이곳 상담실 밖에 없다는 암시를 줘야 한다.


두 번째, 청소년 함묵증은 부모의 부부관계의 결과인 경우가 꽤 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부부싸움을 하여 부모의 분노와 폭행 및 파괴를 직접 경험하여 왔다면, 그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나는 지금 여기 없습니다. 마음껏 화내십시오'


아이는 그런 상황에서 자기 존재를 숨기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다.

이런 아이가 청소년이 되어 말이 없는 것은 자기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청소년은 사유를 하지 않아 자기 생각이 없다.

이들은 자기 생각이나 자기감정보다는 부모의 생각과 감정, 더 나아가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살피는 일에 집중한다.


세 번째, 청소년이 어릴 때부터 컴퓨터 사용이 생활화되어 있거나, 또는 게임을 너무 많이 하여 중독이 되어 있는 경우이다.

이 경우의 청소년은 위의 첫 번째, 두 번째 이유와 다 연결이 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수줍음이 많아 대인관계를 기피하거나 부모의 부부싸움으로 자기 존재를 숨길 때 유일하게 도피할 수 있는 길은 바로 컴퓨터 게임에 깊이 빠져드는 것이다.


이런 경우의 청소년의 뇌는 전두엽은 발달이 멈춰 있고, 측두엽만 발달하게 된다.


청소년기에는 변연계와 전두엽의 발달이 중요하다.

변연계는 본능적인 영역을 관장하고 전두엽은 이성적인 판단을 담당한다.

청소년기의 뇌 발달 과정에서는 신경세포 간 연결이 가지치기되면서 뇌가 더 효율적으로 사용되도록 발달한다.

이 과정에서 자주 사용하는 회로는 강화되고, 사용하지 않는 회로는 제거된다.

따라서, 청소년기에는 충동성이 높아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증가하게 된다.


청소년들의 충동성과 호기심은 부모와의 정서적으로 안정된 관계 안에서 잘 발휘되면 제1 자아와 제2 자아의 균형을 이루는 발달을 성취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런 자녀의 뇌는 전두엽 영역을 잘 발달시켜 나갈 것이다.

이런 자녀는 인간관계나 사회적 자아를 확립해 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런 자녀는 절대 상담실을 찾을 이유가 없다.


문제는 컴퓨터에 집착하고 게임에 중독된 자녀들이다.

또 문제라고 볼 수는 없지만, 컴퓨터에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청소년이 있다.

컴퓨터를 사용하는 능력이 탁월한 청소년이 컴퓨터 사용에 매몰되어 컴퓨터를 너무 많이 사용하게 되면, 전두엽 발달을 멈추고 측두엽만 발달하게 된다.

이런 청소년은 묻는 말에 '예', '아니요'만 답할 뿐이다.


청소년 내담자로 상담자 앞에 있지만 청소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만을 껌뻑거리면서, 상담자만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면 상담자로서는 미칠 노릇일 것이다.


한 세션 안에 할 수 있는 작업


첫 단계: 몸 언어로 말하다

프랑스의 아동 정신분석가 프랑수와즈 돌토(Franscoise Dolto)는 함묵증 증상을 가진 아이를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얼굴은 눈만 껌뻑거릴 뿐이었지만, 돌토는 아이의 몸 전체를 살피기 시작했다.

마침내 돌토는 아이가 의자에 앉아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으로 발견했다.

그래서 돌토는 내담자 아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는 내게 할 말이 없다고 입을 꼭 다물고 있지만, 네 발가락은 꼼지락꼼지락 하면서 내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네."


이렇게 돌토는 아이의 몸의 언어를 읽어냈다.

그 순간, 아이는 상담자에 대해 세운 경직된 경계가 확 풀렸을 것이다.

상담자는 그 풀린 경계 안으로 들어가 그 아이의 마음의 세계로 훅 들어갈 수 있었다.


이처럼 상담자는 내담자의 시전, 자세, 헤어스타일, 옷차림, 몸짓, 얼굴표정, 기침소리 등 내담자의 외형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짐으로써 공감능력을 가지고 내담자의 마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두 번째 단계 : 침묵

상담자는 내담자와의 침묵을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침묵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다.

내담자가 함묵할 때, 상담자는 침묵을 선택하는 것이다.

상담자의 침묵은 내담자에게 더 많은 생각과 자기 탐색의 시간을 제공하여,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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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는 침묵을 통해 내담자의 내레이션을 촉진하고, 중요한 정보를 도출하며, 클라이언트의 자아 탐색과 인사이트 도출을 돕는 역할을 한다.

상담자의 침묵은 내담자의 감정적인 무언의 표현을 가능하게 하고, 자율성과 자기표현을 존중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침묵의 오해와 오용을 피하고, 침묵으로 인한 불편함을 적절히 다루며, 침묵이 적합하지 않은 경우에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상담자가 함묵하는 내담자에 의해 수동적으로 내몰리는 입장이 아니라, 상담자의 침묵으로 내담자의 함묵을 덮어 버린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내담자가 내담자의 함묵에 의해 수동적으로 내몰릴 때, 상담자는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많은 상담자들이 내담자가 함묵할 때 상담자가 할 말이 없어 불안해지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내담자의 함묵과 상담자의 불안이 더해져서 내담자까지 불안하게 만드는 결과가 된다.


상담자가 침묵을 선택할 때 자기 불안을 극복하고 나면, 내담자로 하여금 온갖 생각을 하게 만들 수 있다.

그 생각은 내담자가 내레이션을 하게 만든다.


세 번째 단계: '생각나기'를 드러내기

상담자의 침묵을 어느 정도 유지할 것인가?

내담자의 함묵을 덮어 버리기 위한 상담자의 침묵은 길수록 좋다.

침묵으로 상담자 자신의 불안을 넘어서는 데 최소한 10분이 걸린다.

그 이후 약 10분을 침묵으로 더 견디는 것이 좋다.

그러면 내담자가 스스로 선택한 함묵이 상담자의 침묵에 의해 덮이는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내담자는 온갖 생각이 다 들 것이다.

이때 내담자에게 들어오는 생각이 있다.

이 생각은 내담자 자신의 것이 아니다.


이 생각의 주체는 생각 자체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흔히 이런 말을 한다.


"아! 생각났다"


이 말은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생각이 내 안에 들어왔다는 말이다.

그래서 생각이 주어가 되고 주체가 되는 것이다.


근대 철학의 효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고 말한 것은 생각의 주체가 바뀌는 시대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데카르트 이전에는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할 줄 몰랐다.

중세시대에는 모두 신적 사고를 했다.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은 신의 것이었다.


그 당시 내 삶의 주체는 '나'가 아니라, '신'이었다.

데카르트는 '나'를 '신'의 반열에 올려놓게 되는 계기가 바로 '생각'하는 주체가 됨으로써 가능했다.

상담자는 함묵을 선택한 내담자로 하여금 이러한 위대한 변화를 일으켜 주는 사람이다.


상담 중 함묵을 선택한 내담자라 할지라도 아무런 생각이 없을 수는 없다.

사람은 자아가 작동하고 있는 한, 생각이 없을 수 없다.

함묵을 선택한 내담자가 할 말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른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이런 내담자라 할지라도 생각이 내담자 안으로 들어오게 마련이다.

일차적으로 이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주는 것이 상담자의 중요한 역할이다.


상담자가 자기 불안을 극복하고 침묵으로 내담자의 함묵을 덮어 버리는 순간, 상담자의 불안은 내담자의 불안으로 바뀐다.

그 불안의 성질이 바뀌는 순간, 내담자 안에서는 생각이 작동하게 되어 있다.

이때부터 내담자 안에서는 온갖 생각들이 다 떠오르게 되어 있는 것이다.

상담자가 침묵을 멈추는 순간은 바로 내담자의 이런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내기 위해서이다.


그 상황에서 상담자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침묵할 때 어떤 느낌이 들었어요?"

"침묵하는 동안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매우 평범한 질문 같지만, 내담자의 생각이 에너지를 가지면서 언어로 전환되어 그 불안과 생각을 표현하게 된다.


네 번째 단계 : 생각하기 => 스토리텔링

이번에는 내담자로 하여금 생각하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후, 내담자 스스로 주체가 되어 생각하게 만드는 단계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이런 제안을 한다.


"지금 떠오르는 단어를 열개만 나열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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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스토리텔링을 잘하는 사람은 서슴지 않고 생각나는 단어들을 나열한다.


그렇지만 함묵을 선택하며 살아온 내담자라면 그런 단어를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다.

내담자가 하나의 단어를 선택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심각한 경우 열개의 단어를 생각하는데 10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상담자는 차분하게 기다려 줘야 한다.

상담자는 세션을 거듭할수록 열개의 단어를 선택하는 시간이 짧아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열개의 단어를 다 나열하고 나면(그동안 상담자는 그 단어들을 펜으로 종이에 적어 놔야 한다), 상담자는 그다음의 제안을 한다.


"이 열개의 단어를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어 보세요.


이 순간부터 내담자는 스스로 생각의 주체가 되어 스토리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함묵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평소에 스토리텔링이 안 되는 사람이다.

함묵증에 있는 사람이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지면 그의 정서적 상태는 엄청난 발달을 한 것이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열개의 단어를 연결하여 스토리텔링을 하고 나면, 그 스토리를 더 폭넓게 확장시켜 준다.

그렇게 되면, 내담자의 생각이 확장되는 것은 물론, 삶에서도 확장이 일어나 사고의 유연성이 생기면서 서서히 스토리텔러가 되어 간다.


세션의 마지막 5분을 남겨놓고 상담자와 내담자는 상호 피드백을 실행한다.

이런 내용으로 진행하는 상담은 한 동안 계속 진행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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