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최태원, 이상한 유아성욕(2)

순수함을 잃은 사랑, 불륜

        (이 글은 앞의 글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유아성욕의 사례


에드워드 6세, 사랑을 위해 왕위를 던지다

세기의 사랑'으로 전 세계를 감동시켰던 영국 왕 에드워드 8세가 미국인 이혼녀 월리스 심슨 부인과의 사랑을 영국 국민들에게 직접 고백하면서 결혼과 왕위 유지 희망을 호소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스탠리 볼드윈 당시 총리 정부가 왕의 라디오 연설에 반대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29일 비밀 해제된 공문서에서 밝혀졌다. 

영국 공문서보관소는 이날 1936년 에드워드 8세의 퇴위와 관련된 비밀 해제 서류 대부분을 공개했다.

비밀 해제된 서류들에 따르면 에드워드 8세는 당시 왕을 지지했던 윈스턴 처칠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라디오 연설 원고에서 "나는 행복한 결혼생활의 뒷받침을 받지 않고는 왕으로서 나에게 끊임없이
부과되는 부담을 견딜 수 없다"면서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로 굳게 결심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심슨 부인과 나는 그녀가 여왕이 되기를 바라지 않으며 그저 내 아내로서 그녀에게 어울리는 적절한 직함과 작위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에드워드 8세가 심슨 부인과 결혼하고 왕위를 유지하는 것을 단호히 반대했던 볼드윈 총리는 왕에게 보낸 서한에서 정부의 승인을 받지 않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에드워드 8세의 결혼 계획은 이혼을 금하고 있는 영국 성공회 수장(首長)으로서의 왕의 신분과 맞지 않기 때문에 영국의 헌법 위기로 이어졌다. 이에 따라 그의 동생인 조지 6세가 왕위를 계승했으며,
에드워드 전(前) 국왕은 윈저 공작, 새 부인은 공작부인이 돼 사망하기 전까지 주로 프랑스에서 살았다.

            (이상 조선일보, 2003년 1월 10일 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유아성욕 

야스나리는 1968년 <설국>이라는 소설로 노벨 문학상은 받았다.

그는 유려하고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소설가로 유명하다. 

모든 일본인들이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일본에 안겨준 그를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했다..


1899년 오사카의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2살과 4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고, 그 후 조부모에게 맡겨졌으나 7세 때 조모가 죽게 된다. 10세 때는 다른 친척에게 맡겨진 누이까지 죽고, 15세 때는 결국 조부까지 세상을 뜨게 되면서 외롭게 자랐다. 15세까지 친족 다섯 명이 죽어서 이로 인해 장례식의 명인(葬式の名人)이라는 별명까지 있었을 정도... 어릴 때 친구집에서 밥을 먹을 일이 생기면 온 가족이 모인 분위기가 부러워서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었고, 병든 조부뿐인 적막한 집에 돌아갈 때면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고 한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소설가를 꿈꾸었고, 도쿄제국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문예 잡지 등에 글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외로움과 쓸쓸함은 이후 가와바타 작품의 주요한 정조를 이룬다.(나무위키에서 인용)


그는 가스에 의한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는데, 이에 대해 사고사라는 주장과 자살이라는 주장이 맞선다.

자살설로는 1. 아끼던 제자 미시마 유키오의 자살, 2.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창작에 대한 압박감과 창작 의욕 감소, 3. 좋아하던 가정부의 퇴직[11] 등이 있다. 일단 반박 측에서는 1은 시대가 너무 떨어져 있으며, 2는 평론가들이 자의로 해석한 것일 뿐 증명이 없으며, 3은 주관적이며 검증되지 않은 내용이라고 반박하였다.(나무 위키에서 인용)


위의 자살설 외에 입소문으로(어느 정신분석학자에 의함) 내 귀에까지 전해진 이야기가 있다.

그는 중년의 어느 여인과 불륜에 빠져 현실의 모든 관계를 정리하여 떠났고, 그 여인과 동반자살하였다는 설을 남겼다.

당시 일본에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으나, 그는 평소 일본의 자존심이었기 때문에 모든 언론이 침묵하였고, 모든 국민도 그 침묵에 동참하였다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야스나리의 중년 외도와 동반자살한 사건이 인터넷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관련된 어떤 자료도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일본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언론계의 노력 덕분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해 본다. 


홍상수-김민희의 순수한 사랑

                       홍상수의 입장

홍상수 감독은 여배우 김민희와의 관계를 추구하면서 남편, 아버지 등 사회적, 도덕적으로 규정된 역할을 포기했다. 

이 사건은 공개적인 스캔들로 이어져 그의 평판을 훼손하고 가족생활을 방해했다. 

이는 억압된 유아적 욕구와 연관되어 있을 수 있는 강한 강박관념이 사회적 규범과 가족적 책임에 대한 준수보다 더 중요함을 시사한다.

한국 사회의 보수적인 맥락에서 직업적 위험과 반발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홍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계속해서 김민희를 캐스팅해 왔으며, 이는 김민희에 대한 깊은 개인적, 예술적 헌신을 나타내 왔다.


                   김민희의 입장

김민희는 이 관계에 참여함으로써 상당한 대중의 조사와 직업적 위험에 직면했다. 

잘 알려진 여배우로서 그녀는 유부남과의 관계가 그녀의 대중적 이미지와 경력에 영향을 미쳤다.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김민희는 자신의 억압된 욕망의 활성화를 경험하고 있을 수도 있으며, 홍상수에게서 이러한 뿌리 깊은 욕구를 충족시키는 인물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개인적, 직업적 맥락에서 홍상수 감독과의 지속적인 협력은 심오한 심리적 연결에 의해 주도되는 기존의 경계를 초월하는 관계를 암시한다.


             홍상수와 아내와의 관계

홍상수가 아내와 법적 이혼을 시도했지만 난항을 겪으며 결국 실패했다. 

2016년 배우 김민희와의 불륜이 공개된 뒤 이혼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2019년 이혼 신청을 기각했다. 

결혼 파탄의 책임이 있는 쪽이 홍 씨라는 원칙에 따른 판결이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혼을 개시할 수 없습니다. 

이로써 홍 씨는 아내와 법적 혼인관계를 유지하게 됐다. 


홍 씨의 불륜은 가족관계와 재정 문제에 있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당시 대학에 다니던 딸의 경제적 지원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결정은 불륜의 여파와 맞물려, 그는 스캔들로 인해 직업적으로 차질을 겪게 된 김민희를 지원하기 위해 재정 자원을 전용했다. 

홍감독의 아내는 홍 씨가 결국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이혼에 대한 동의를 완강히 거부했다. 

그녀의 저항 덕분에 김민희와의 관계로 인한 대중적, 개인적 혼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혼 생활은 법적으로 온전하게 유지되었다. 

요약하자면, 홍상수와 김민희의 관계로 인해 홍상수는 재정적, 가족적 책임을 포함하여 생애 동안의 중요한 측면을 상실하게 되었다.


최태원 회장의 순수함이 결여된 유아성욕


최태원과 김희영의 관계는 유아기의 욕망과 순수성 부족이 얽힌 복잡한 동기에 의해 추진되는 것으로 보이며, 주로 김희영의 조작적이고 탐욕스러운 전략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5년 김희영 씨와의 불륜 사실을 공개 인정했고, 둘 사이에 딸 하나를 두고 있다. 

프로이트적 관점에서 최 회장의 불륜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유아기의 성욕, 즉 유아기의 욕망을 반영하는 깊고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갈망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욕망이 오이디푸스 단계에서 적절하게 억압되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표면화되어 강렬하고 종종 비합리적인 낭만적인 얽힘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가정했다.


그러나 김희영을 향한 최 회장의 사랑에는 이러한 유아적 욕망과 결부되는 순수성이 결여되어 있다. 

오히려 김희영 측의 조작과 탐욕으로 오염된 것처럼 보인다. 

김희영은 최 회장의 애정을 금전적 이득을 위해 이용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자식들의 권력과 지위를 확보한 것으로 유명한 장희빈 같은 역사적 인물에 비유된다.

최태원은 


  "나는 공감 제로인데, 그 여자는 나와 정반대이다. 그녀는 전부가 사랑이다"


라고 말하지만, '그녀가 전부가 사랑'이라면 최태원과 김희영은 에드워드 6세처럼, 홍상수와 같이 지금까지 누려왔던 사회적 지위, 재산, 명예 등을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 포기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최태원에 대한 김희영의 영향력이 상당해 막대한 재정 지출이 발생하고 자원이 가족에게서 멀어지게 됐다. 

최태원은 김희영을 만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이혼을 요구하였고, 경제적 지원을 끊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최 회장은 김 위원장에게 아내와 자녀에게 지원한 금액보다 훨씬 많은 10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지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론


유아성욕이란, 유아기 때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적 욕망이다.

이는 유아기에는 정상적인 것이지만, 그 이후의 비정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억압되어야 한다. 

억압된 유아성욕은 단짝 친구를 찾는다거나, 짝사랑할 수 있는 대상 및 연애 대상 찾기, 직업적으로 열정을 내어 집중하는 등의 에너지 근원이 된다.

즉 유아성욕은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다른 형태로 승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에너지가 되지 않고 원초적인 방식으로 접촉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각자가 서로에게 승화되지 않은 유아성욕이 원초적 형태로 투사하여 서로 상통하게 될 경우이다. 

그렇게 유아성욕이 발동되면,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즉 노련하게 계산하면서 살아온 방식을 포기하게 되고, 가족도, 사회적 지위도, 현실에서 누려 왔던 각종 권리와 혜택들을 다 놔 버리며, 오로지 유아성욕을 자극하는 그 대상만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일이 발생한다.

에드워드 6세는 영국의 왕위와 왕실의 일원 되기를 포기하였고, 홍상수는 영화감독과 재산과 가족을 포기하였다.

그런데 최태원은 아내와 자식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몰아내려고 책략을 부렸고, 기본 생활비마저 여러 차례 끊었다.

그의 미성숙한 행위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지만, 더 이상 열거하고 싶지 않다.

그 모든 것이 김희영의 권모술수에 의해 놀아났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최태원의 이상한 유아성욕(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