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노숙자의 종이 박스와 어머니의 품

자폐-접촉 자리와 멍-때리기


생후 최초에 머무는 자리, 자폐-접촉 자리


자폐-접촉 자리는 토마스 옥덴(Thomas Ogden)이 제시한 개념이다.

생후 첫 2개월 동안 아이는 바로 이 자리에 머물게 된다.

옥덴이 정의한 '자폐-접촉 위치'는 아기가 서서히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아기는 여전히 내적 세계에 머물러 있지만, 외부 자극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발달하기 시작한다. 즉, 이 단계는 아기가 외부 세계와 처음으로 접촉을 시작하는 단계로, 외부 자극에 대한 첫 반응이 나타나는 시기이다.


이 과정에서 아기는 다음과 같은 발달을 경험한다:  


초기 감각 발달: 아기는 외부의 소리, 빛, 촉감 등에 대해 처음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부모의 목소리나 얼굴을 인식하고 이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초기 상호작용: 아기는 점차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외부와 내부를 구분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나 주 양육자와의 초기 상호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안전감 형성: 아기는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안정감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감각 발달이 촉진된다. 이러한 안정감 없이 감각 발달의 단계로 넘어가면 감각이 제대로 발달할 수 없게 된다.


IMF 노숙자의 자폐-접촉 자리로의 퇴행


IMF 위기 동안 한국에서는 많은 남성들이 직장에서 쫓겨나 집을 떠나 방황하며 노숙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종이 박스만 보면 장소 불문하고 눕게 되었다.

그가 직장 다닐 때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었건, 아무리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건 상관없이 그렇게 한 번 눕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런 상태가 3개월이 지속되면,  다시 일어나기 힘들다.

이것은 명백히 옥덴의 <자폐-접촉 자리>로의 퇴행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들이 처음에는 목욕을 못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게 되지만, 목욕 못하는 상태를 3개월을 넘기게 되면, 이제 목욕하는 것이 오히려 불편해진다.

박스에 누운 지 3개월이 지나면, 노숙자 특유의 냄새가 나게 된다.

주변 사람들은 코를 찌르는 그 냄새를 싫어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냄새에 익숙해져서 그 냄새를 즐기며 냄새를 통해 존재 확인을 하기에 이른다.

이런 현상은 건강한 사람도 다른 사람의 악취는 싫어하면서도 자신의 몸에서 나는 악취를 즐기는 것과 통한다.

자폐-접촉 자리에 있는 유아는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보다는 자신의 내적 경험과 감각에 집중한다.


어머니의 품과 종이 박스

유아에게 어머니의 품은 매우 중요하다.

유아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의 경험, 특히 어머니와의 신체적 접촉을 통해 안정감과 안전을 느낀다.

어머니의 품은 외부 세계의 모든 위험을 차단해 주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그런 아기는 어머니만 있으면 밖에서 전쟁이 나건, 화산이 터지건, 홍수가 나건 개의치 않고 자기 세계에 안전하게 빠져들 수 있다.


노숙자에게 있어 어머니의 품은 바로 종이 박스로 대체된다.

IMF형 노숙자들은, 직장과 가정에서 쫓겨난 극심한 스트레스 상태를 정상적인 마인드로는 도무지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동안 경험해 온 외부 세계가 주는 스트레스와 불안을 피하고 내적 세계에 몰두함으로써 최소한의 정서적 안정감을 찾기 위해 어머니의 품을 상징하는 종이박스를 찾았다.

이는 그들이 최소한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어머니와의 초기 관계에서 느꼈던 안전감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 시도로 볼 수 있다.

유아에게 어머니의 품만 제공되면, 외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않을 수 있었듯이, 노숙자에게도 박스 한 장만 있으면 지금까지 스트레스가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지금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얼마나 자신을 비우호적으로 적대시하는지 상관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유아나 노숙자는 외부 세계를 차단한 후, 오로지 자신의 내적 세계로 들어가려고 시도했다.

사람이 오랜 세월 외부 세계를 차단하고 나면 현실감각이 떨어져 다시 돌아오기란 쉽지 않다.


유산상속을 포기하고 노숙자 생활을 선택한 멜리처


미국에서 부유한 유산을 포기하고 노숙자로 살아가는 사례로 가장 잘 알려진 인물 중 하나는 맥스 멜리처(Max Melitzer)이다.

맥스 멜리처는 유타주에서 노숙자로 생활하던 중, 그의 형제가 남긴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을 기회를 거부했다.

맥스는 수년 동안 노숙자로 살아왔으며, 가족과의 연락이 거의 끊긴 상태였지만 그의 형제는 사망 전에 그에게 유산을 남겼다.


맥스의 이야기는 노숙자의 삶과 그들이 처한 복잡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는 형제가 사망하기 전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지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의 형제는 그에게 유산을 남겼으나, 맥스는 이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상황은 개인의 선택, 정신 건강 문제, 가족 관계의 복잡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Family Money Values)


멜리처가 유산상속을 포기하고 노숙자의 삶을 계속 살기를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 <자폐-접촉 자리>에 내려가서 오랜 세월 적응을 하고 나면 다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랜 세월 외부 세계의 복잡성을 단절하고 오로지 자신의 내적 세계에만 충실하게 살아가는 데에 익숙해 있다면, 또다시 외부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유아가 갑자기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과 같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 중에는 의도적으로 <자폐-접촉 자리>로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자폐접촉 자리로 내려가기, 멍 때리기 

2024년 5월 12일 반포한강공원잠수교에서 <한강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다.

그 대회는 90분 간 멍 때리기를 하는 행사였다.

그 대회는 약 3000 팀이 참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놀라운 것은 그 행사가 벌써 13회째였다는 점이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멍 때리기 대회에 참여하는가?

멍 때리기를 잘하게 되면 사람은 일시적으로 <자폐-접촉 자리>로 퇴행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멍 때리기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일상의 스트레스를 새롭게 세팅하기 위해서이다.

둘째, <자폐-접촉 자리>로 내려감으로써 근원적 에너지로 충전하기 위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두 가지 언어 : 근친적 언어와 사회적 언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