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성 출현, 이대남 이대녀의 연애 불가능성
요즘 이대녀(20대 여성)는 어머니 세대와는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우리 사회에서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여성인권이 높아지면서 남자들의 가부장적 권위는 많이 축소되었다.
뿐만 아니라 여성 엘리트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남자와의 경쟁에서 여성들이 많은 분야에서 남성을 능가하게 되면서 직장 내에서의 남녀평등이 균형을 잡아가게 되었다.
2000년 이전의 직장처럼 남성이 본업을 할 때, 여성은 남성의 보조 역할, 타이피스트나 차를 날아다 주는 등의 차별화된 관계에서 많이 벗어나게 되었다.
남녀가 동등한 위치에서 공평한 경쟁을 하게 되면서 여러 분야에서 남자보다 여자가 더 두각을 나타내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은 이들이 이미 성장하는 과정에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그래서 여자가 과거 어머니 세대처럼 더 이상 남자로 살지 않아도 되게 되면서, 자신에게서 히스테리화를 거부하고 모성성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일찍부터 여성성을 찾아오게 되었다.
그러나 남자는 이러한 사회적 환경의 변천에 따른 여성의식의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남자는 여전히 조선시대 남자나, 2000년 이전 남자나 2000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의식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다.
남자는 여전히 가부장적 질서하에서 자신의 자리를 고수하려고 하면서 결혼상대자에게도 여전히 '현모양처'를 강요한다.
그래도 여자가 모성성을 사용할 때는 만나는 남성이 좀 부족해도, 좀 결핍이 있어도, 마음에 상처가 많아도, 좀 학벌이 부족해도, 좀 못생겨도, 좀 능력이 없어도 모성적 마인드로, "내가 채워주면 되고, 내가 치유해 주면 되고, 내가 예쁘게 봐주면 되고, 내가 좀 보태주면 된다"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모성성이 풍부한 여성은 결혼하고도 남편을 아들처럼 양육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자가 여성성을 사용하게 되면서, 여자로서 자기 정체성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남자에게도 그 나이에 맞는 남자로서의 정체성을 요구하게 된다.
여자의 이런 요구에 대부분의 남자는 실패한다.
그래서 여자의 눈에 차는 남자가 없다.
이대녀가 내리는 결론은 이렇다.
'왜 이렇게 남자들은 하나같이 다 어린아이 같으냐?'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대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녀의 기분은 아침에 이랬다 저녁에 저랬다 한다.
아침에 이랬다 해서 여기에 가 보면, 저녁에 저기에 가 있다.
그녀의 감정에 따라 여기저기, 동에서 번쩍 서에서 번쩍해야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이대녀의 변덕이 하루이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교제를 하는 한 끝이 없어 보인다.
남자의 입장에서 보면, 여자의 변덕에 좇아가다 보면 '나의 정체성'이 흔들릴 것 같다.
남자는 그런 변덕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데, 여자한테 맞추도 보면 자기 정체성에 문제가 될 것 같다.
친구들 중에 나는 재미있는 사람이고, 늘 그들 중심에 있고, 그들의 존중을 받고 있는데, 그녀 앞에만 서면 작아지고, 돌쇠나 마당쇠가 되어야 하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그녀가 하도 오락가락하기 때문에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그 정체성을 알 수가 없다.
지금은 그녀의 감정선을 따라 여기저기 따라다닐 수 있지만, 그녀의 변덕에 평생을 맞춰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연 결혼까지 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회생활이나 친구들 앞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당당하고 존중받아 왔지만, 그녀 앞에서는 왜소해지고 존재가 쪼그라든다.
그녀와 가까워지려면 나를 포기하고 그녀에게 철저하게 맞춰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녀와의 연애부터가 이렇게 힘든데, 과연 결혼까지 갈 수 있을까?
이것이 이대녀를 사귀는 이대남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대남이 결혼을 꿈꾸기 위해서는 모성성이 풍부한 여성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이대녀라고 해서 모두 여성성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여자들도 자신이 모성성을 많이 사용하는지, 여성성을 사용하는지 그 개념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남자들은 계속 답보적 상태에 있지만, 여자들은 최근 40년 동안 너무나도 많이 바뀌어 왔다.
2000년 이전만 해도 남자가 여자를 낮춰 보거나 만만하게 보기 일쑤였다.
그렇지만 2020년대의 여자는 새천년 이전의 여자와는 확연히 다르다.
오늘날 젊은 여성의 심리적 변화의 핵심은 더 이상 어머니처럼 모성성을 사용하지 않지 않고, 바로 여성성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모성성과 여성성을 구별하지 못하는 남성들은 이 여성성이 너무나도 생소하다.
부모세대의 아버지들은 나이 50이 될 때에야 만나게 되는 아내의 여성성을 젊은 세대의 남자들은 20~30대에 또래 여자들에게서 맞닥뜨리게 되니 생소할 수밖에 없다.
아버지도 25~30년을 같이 살아온 아내에게서 여성성을 발견할 때 끔찍한 느낌이 들면서 외면하기 일쑤인데, 아들 세대의 남자들은 젊은 나이에 또래 여성의 여성성을 직면하게 되니 낯설 수밖에 없다.
이대녀는 이렇게 어린아이 같은 남자 하고는 결혼은커녕 연애조차 안 되겠다 싶은 반면, 이대남은 여자의 속성이 이런 것이라면 평생 여자의 종으로 사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겠다는 판단으로 끝난다.
이렇게 되면, 남자와 여자는 영원한 남이 되어 서로 교차할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어쩌다 성욕을 억제하지 못해 성관계까지는 가질 수는 있어도 서로 삶이나 감정을 공유하지는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는 중에 각자 엉뚱한 환상에 빠져들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여성은 보다 성숙한 남자를 만나려 하다가 유부남을 만나 남자의 성숙함에 빠져 결혼가능성을 포기하게 되고, 남자는 성적 환상 때문에 여자에게서 성욕만 채우고 친밀감이 나오기 전에 빠르게 도망가는 여자 사냥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
(사진 출처: pexe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