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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감을 되찾기 위한 복수와 이혼 구상

한번쯤 이혼을 실행해 보기

서론: ‘다 내 탓’이라는 자책감과 깊은 분노


상담 세션 초기, 내담자는 ‘짜증’, ‘화’, ‘자괴감’, ‘자책’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모든 갈등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며 깊은 자책감에 시달렸다. “아, 내가 이 상황을 내가 만들었구나”라는 말은 그의 심리를 잘 드러냈다.


하지만 그 자책의 이면에는 단순한 자기 비난이 아니라, 오랫동안 축적된 억압과 부당한 대우 속에서 형성된 분노와 복수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지난 추석 명절을 전후로, 새롭게 집안에 들어온 둘째 동서의 등장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갈등의 격화: 둘째 동서의 등장과 역전된 시댁의 태도


내담자는 결혼 이후 20년 동안 시댁의 엄격한 규율과 준엄한 시어머니의 잔소리, 인격적 모욕 속에 살았다. 명절 때마다 시댁 식구들의 모든 식사와 준비를 도맡았고, 시어머니의 강요로 시댁 친척 어른들의 생일, 그 자녀들의 생일까지 챙겨야 했다. 그때마다 정성껏 선물을 준비해 왔지만 시어머니로부터 칭찬 한마디 듣지 못했다. 시어머니는 늘 “며느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 말했고, 내담자는 ‘내가 부족하니까 더 해야 한다’며 묵묵히 감내했다. 며느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추석 무렵, 둘째 동서가 집안에 새로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뒤집혔다. 오랫동안 시어머니의 입버릇처럼 반복되던 말은 “쟤는 장가가기 틀렸어. 도대체 누가 저런 애랑 결혼하겠니?”였다. 그렇게 포기했던 둘째 아들이 기적처럼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세상 물정 모르고 자기중심적인, 한눈에 봐도 'MZ세대 특유의 ‘무개념 며느리’였다.


시댁은 이 결혼을 두고 거의 축제 분위기 속에서 난리 브루스를 피웠다. 시어머니는 “요즘 세상에 저런 애가 우리 아들이랑 결혼해 준 게 어디야”라며 감격했고, 시아버지 역시 “새 며느리가 들어오면서 둘째가 드디어 사람 됐다”며 기뻐했다. 첫째 며느리인 내담자의 눈에는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엔 새 며느리는 버릇없고, 말투는 거칠며, 기본적인 예절조차 갖추지 못했다. 시댁 어른들 앞에서도 두 손을 공손히 모으거나 인사를 하지 않았고, 어른들이 얘기할 때 끼어들며 ‘그건 아닌데요?’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시댁 행사에는 늘 늦게 도착하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면서도 ‘요즘은 이렇게 안 해요’라며 구시대적이라 조롱하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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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놀랍게도 시댁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그 버릇없음과 무례함을 오히려 “요즘 세대는 솔직해서 좋다”, “역시 요즘 애들은 자기주장이 있어서 똑똑하다”며 두둔했다. 시어머니는 그 며느리를 “우리 집의 신선한 공기 같다”며, 무개념의 며느리가 들어오자 마치 시댁이 업그레이드된 듯한 표현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내담자가 수년간 지켜왔던 질서와 예절, 성실함은 하루아침에 구식이 되었고, 새 며느리의 무례함은 ‘요즘식 감각’으로 미화되었다.


여전한 불평등: ‘구박받는 첫째’와 ‘공주 대접받는 둘째’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둘째 며느리는 시댁에 들어오자마자 완전히 다른 대접을 받았다.

시어머니는 매번 “우리 막내며느리, 힘들지 않니?” 하며 안부를 묻고, 식사 시간에는 그녀의 입맛에 맞춰 반찬을 바꾸었다. 명절 준비도 “요즘 애들 힘들어하니까”라며 모두 첫째 며느리 몫이 되었다.


내담자는 설거지를 하며 마음속에서 쏟아지는 울분을 억눌렀다.


“나는 20년 동안 그렇게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 와서 ‘요즘 애들은 그런 거 안 해도 돼’라니… 나는 뭐였던 거야?”


그녀의 눈에는 시어머니의 태도가 단순한 세대 차이가 아니라, 명백한 불평등과 차별의 상징으로 비쳤다.


그 불공평의 중심에는 남편의 무능함도 자리했다. 둘째 며느리의 남편, 즉 시어머니가 평생 ‘쓸모없다’고 한 아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결혼 자체가 이미 ‘기적’이었기에, 시댁은 그저 이 결혼이 깨지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들은 며느리의 예의나 집안일에 대한 태도보다 “혹시 이 아이가 우리 아들을 버리지 않을까?”를 더 걱정했다.


그 결과, 둘째 며느리는 ‘공주처럼’ 대접받았다. 가족 모임 자리에서도 “우리 막내며느리 먹을 거 챙겨라”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고, 첫째 며느리인 내담자에게는 “넌 그래도 우리 집 일 다 아니까 알아서 좀 해”라며 여전히 일을 맡겼다.

이 모순된 대우 속에서 내담자는 자신이 20년 동안 쌓아온 모든 노력이 헛되게 느껴졌다.


감정의 폭발: 무시당한 존재와 복수의 씨앗


그날 이후, 내담자의 마음속에서는 “나는 이제 아무 의미 없는 존재구나”라는 절망감이 자리했다.

그녀는 시댁의 대화 속에서, 심지어 남편의 태도 속에서도 자신이 투명인간처럼 느껴졌다.

남편은 “그냥 넘어가자”, “요즘 세대랑 비교하지 마라”라며 아내의 상처를 축소시켰다.

그러나 내담자에게 그것은 ‘나를 지워버리는 말’이었다.


그녀의 분노는 단순한 억울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년간 자신을 하찮게 대했던 가족 체계에 대한 복수심이었다. 시댁의 불평등한 구조를 무너뜨리고, 자신이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그녀는 행동해야 했다. 그녀에게 복수란 단순히 상대를 해치려는 욕망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었다.


침묵의 시스템: 남편의 차단과 존재의 소멸


내담자의 가장 근본적인 고통은 시댁의 불평등한 대우보다, 자신의 감정을 외면하는 남편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시어머니의 간섭과 모욕이 반복될 때마다, 남편은 늘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그냥 넘겨. 괜히 또 싸움 나면 귀찮잖아.


이 말은 매번 내담자의 마음을 찢어놓았다. 그는 아내의 분노를 다독이는 대신, 감정을 차단하고 문제를 봉합하는 데만 급급했다.


남편에게는 ‘가정의 평화’가 가장 중요했지만, 그 평화는 아내 한 사람의 침묵 위에 세워진 가짜 평화였다.

아내가 울분을 토하면 그는 “네가 너무 예민하다”라고 했고, 눈물을 보이면 “또 그 얘기냐”라고 했다. 결국 내담자는 가족 내에서 ‘문제의 근원’으로 낙인찍히며 스스로 입을 닫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내담자가 말한 “내가 입 다물면 모든 게 평화로워지는 상황”이었다.


이 관계 구조 속에서 남편은 시댁과 아내 사이의 방어벽이자 차단막 역할을 했다.

시댁의 무례와 폭언은 남편을 통해 걸러졌고, 아내의 감정은 남편의 침묵을 통해 소멸되었다.

남편은 겉으로는 중재자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내의 존재감을 시스템 안에서 지워버리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 결과 내담자는 혼자 분노하고, 혼자 지쳐가며, 어느 순간 자신을 “염전의 노예 같다”라고 표현할 만큼 절망적인 무기력 상태에 빠졌다.


그녀의 울분은 단순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오랜 침묵과 억눌림 속에서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를 확인하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이제 그녀는 그 침묵의 질서를 뒤흔들기 위해, 그리고 “나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온 가족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행동을 결심했다.


전략적 반격: 경고로서의 이혼 소송


내담자는 잔칫날, 모든 가족 친척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잔칫상을 엎어 버리고 싶다는 감정을 토로했다. 가족 친척들이 들어와 있는 단톡방에 자신의 억울함을 알려 모두의 마음을 헤집어 버리고 싶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내담자가 고안한 반격의 최종적인 방식은 바로 시댁 어른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이혼 소송이었다. 그녀는 말로, 눈물로, 설명으로는 아무도 자신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법적 절차’라는 사회적 언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로 했다.


하지만 그녀의 이혼은 단순히 파괴를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끝내려는 게 아니에요. 그저 경종을 울리고 싶어요.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즉, 이혼 소송은 남편과 시댁을 향한 경고이자 선언, 동시에 자신에게 보내는, '내가 살아있다'는 존재의 증명이었다.


그녀는 변호사를 쓰면 판이 커지고 비용이 500만 원 정도 든다는 점을 고려해, '법무사를 통한 소장 제출(건당 33만 원)'이라는 현실적이고 감당 가능한 방식을 선택하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이 절차는 법적으로 구속력은 있으나 언제든 철회할 수 있는 단계이기에, 그녀에게는 되돌릴 수 있는 경고, 즉 통제 가능한 반격이었다.

그녀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더 이상 무기력한 피해자가 아니라, 주체적인 결정권자임을 선언하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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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택은 단순한 분노의 표현이 아니라, 심리적 생존 전략이었다. 남편의 차단으로 인해 모든 감정이 봉쇄된 상황에서, 내담자는 처음으로 스스로 문을 열고 외부 세계와 직접 연결되는 통로를 만들어낸 것이다. 즉, 남편이라는 벽을 우회하여 시댁의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행동일 수 있겠다.


그녀의 이혼 소송은 결국 “나는 이제 당신들의 방식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상징적 선언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의 뒤에 숨어 시댁의 부당함을 견디지 않는다.

이제는 법의 언어로 말하고, 사회적 행위로 자신을 증명한다.


존재를 증명하는 행동: 복수에서 존엄으로


상담자는 이 시점에서 내담자의 분노를 단순한 복수심으로 보지 않았다. 그녀의 복수에는 살아 있음의 감각을 회복하려는 절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동안 억눌려 있던 에너지는 “어떻게 하면 아프게 할까”라는 공격적 상상으로 표현되었지만, 그 밑바닥에는 “나도 느껴지고 싶다”, “누가 내 말을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깊은 갈망이 있었다.


이혼 소송이라는 행동은 내담자의 분노를 파괴적 감정에서 전략적 표현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였다.

그녀는 더 이상 소리치거나 울부짖는 대신, 서류 한 장으로 자신의 뜻을 공식화하고자 했다.

본인은 이 행동이 시댁과 남편의 무감정한 침묵을 깨는 ‘돌멩이’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싶어 했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이 과정을 통해 “상대의 반응과 상관없이 나 자신을 위해 행동했다”는 자기 효능감을 경험하도록 도왔다. 이제 그녀는 복수의 자리에서 조금씩 존엄의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이혼은 여전히 위협의 형태를 띠지만, 그 본질은 “나는 더 이상 당신들의 체계에 종속되지 않겠다”는 해방의 선언이다.


마무리


내담자는 오랫동안 남편의 무감정한 태도와 시댁의 불평등한 구조 속에서 자신의 감정이 무시당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침묵의 질서를 깨뜨리고, 법적 행동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고자 한다.

그녀의 이혼 소송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존재 선언이자 존엄 회복의 행위가 될 것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며느리로, 혹은 희생자로 살지 않고 싶지 않다.

그녀는 자기 목소리를 되찾은, 살아 있는 인간으로 다시 세상 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시댁의 불공평한 질서 속에서 자신을 희생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 거예요. 내가 누구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요.”


그녀의 이 말속에는 복수와 해방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혼 절차는 남편과 시댁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되겠지만, 그녀에게는 가장 큰 치유의 시작이 될 것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며느리”로 존재하고 싶지 않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기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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