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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환자의 목소리를 대신하게 되었나?

투사적 동일시




의료인의 경계, 그리고 마음의 문이 너무 쉽게 열릴 때


응급실에서 환자를 마주하는 일은 예기치 않은 파도를 맞는 일과 유사하다. 몸이 아픈 사람뿐 아니라 마음이 다친 사람까지 찾아오기에, 그들의 격한 감정이 한순간에 밀려올 때가 있다. 의료인의 역할은 그 감정의 바람 속에서도 중심을 잡고 판단하는 것이지만, 어느 순간 그 경계가 쉽게 흔들리기도 한다.


얼마 전, 나는 그 경계를 상실하는 경험을 했다. 이 경험은 내가 왜 환자의 감정을 대신 말하는 사람으로 변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스스로의 판단력을 내려놓게 되었는지를 성찰하게 했다.


응급실에서 마주한 불안의 감염


그날 응급실에는 마흔 즈음의 여성 환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도착 직후부터 극도로 불안한 모습이었다. 말과 호흡은 조급했고, 온몸은 긴장으로 굳어 있었다. 보호자 역시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상황을 재촉했다.


나는 차트를 작성하는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압박감을 느꼈다. 나 역시 호흡이 잠시 가빠지고, 심장은 평소보다 빠르게 뛰었다. 환자의 불안이 그대로 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듯한 감각이었다. 분명 그녀의 감정이었으나, 나는 이미 그 불안과 뒤섞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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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력을 놓친 지점


환자는 자신의 상태와 맞지 않는 검사를 강하게 요구했다. 감염성 장 질환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내시경 검사는 명백한 금기였다. 그러나 환자와 보호자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그들의 지속적인 요청과 불안은 내 마음을 압도했고, 결국 나는 그 요구를 그대로 들고 지도 교수에게 검사를 문의했다.


“환자와 보호자가 내시경 검사를 원한다”는 말은, 의료인으로서 가져야 할 판단을 스스로 외면한 선택이었다. 교수는 단호하게 반대하며 화를 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발언을 후회했다. 그 순간의 부끄러움은 단순한 실수의 차원이 아니라, 왜 스스로 해야 할 판단을 타인에게 넘겼는지에 대한 자책이었다.


경계가 쉽게 흔들리는 사람의 특징 : 투사적 동일시


이 경험을 상담 과정에서 다루며, 나는 이 현상에 ‘투사적 동일시’라는 이름이 붙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투사적 동일시는 상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을 나에게 밀어 넣고, 내가 그 감정을 실제로 느끼며, 결국 그 감정에 의해 행동이 변화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의 경계가 얇은 사람은 상대의 감정에 더 쉽게 휩쓸린다. 나는 타인의 불안을 나의 불안으로 착각하고, 그 감정에 따라 움직였다.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의사로서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환자의 감정과 요구를 그대로 반영하는 대변인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일상에서 반복되는 정서적 패턴


이와 같은 감정의 혼동은 업무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일상 속에서도 누군가의 요구에 쉽게 끌려가거나, 타인의 감정을 대신 떠안는 일이 반복되었다. 경계를 세우는 일은 늘 어렵고, 누군가의 불편함은 곧 나의 과제가 되곤 했다.


그 원인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강렬한 꿈 하나가 이 문제의 근원을 드러냈다.


꿈속에서 마주한 ‘엄마의 얼굴을 한 나’


꿈속에서 나는 엄마의 얼굴을 한 나를 보았다. 꿈속의 엄마는 엄마이면서 동시에 나였고, 이 얼굴의 일치는 나와 엄마 사이의 정서적 경계가 오래전부터 얼마나 희미했는지를 상징했다.


꿈속의 엄마는 늦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유부남이었다. 결국 엄마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 딥-키스를 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며 나는 선명한 불쾌감과 실망을 느꼈다.


이 꿈은 엄마의 감정적 경계가 흔들리는 패턴이 내 안에도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누군가에게 과도하게 기대고, 감정의 경계를 유지하지 못하며, 타인의 욕구에 휘둘리는 방식이 이러한 관계의 흔적이었다.


그러나 꿈속에서 내가 느낀 불쾌감은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 불쾌감은 나와 엄마의 감정 구조가 같지 않음을 깨닫게 했고,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내 자리에서 그 패턴을 바라보는 관찰자가 되었다. 그것은 분리의 시작이었다.

상담자가 강조한 지점은 내가 제삼자의 위치에서 이 모든 상황을 객관적 관점으로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증상과 성격이 일치되는 자아동조적 자아가 이제 그 둘이 분리되는 자아이조적 자아가 되었다는 점이라고 한다. 상담자는 이것은 엄청난 변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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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에는 애도가 포함된다


사람은 익숙한 관계 방식에서 벗어날 때 반드시 상실을 경험한다. 감정의 경계가 흐릿한 상태는 때로 편안함과 유대감을 제공한다. 그러나 성장을 위해서는 그 익숙함을 떠나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애도이다.


어릴 적 느꼈던 융합의 안정감, 누군가에게 쉽게 휘둘려도 관계가 유지되던 시절의 편안함, 타인의 감정을 대신 짊어지며 얻었던 가짜 친밀감. 이러한 요소들을 떠나보내는 일은 슬픔을 동반한다. 때로는 분노가 올라오기도 한다.


이 감정들은 모두 경계를 세우는 과정의 일부이다. 슬픔은 과거를 내려놓게 하고, 분노는 ‘나’라는 경계를 새롭게 구축한다. 그 과정 속에서 비로소 고유한 자아가 형성된다.


다시 환자를 마주하는 자리에서


이제 나는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환자를 대할 수 없다. 환자의 감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대신 불안해하는 의료인이 아니라, 환자의 불안을 인지하되 그 감정에 동일시되지 않는 의료인의 위치를 지향하고 있다.

의료인의 역할은 환자의 감정에 함께 휩쓸리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잠시라도 안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흔들리는 환자에게 흔들림으로 응답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흔들림 속에서도 단단한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과정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다. 때때로 흔들리는 순간이 찾아오지만, 이제는 그 이유를 알고 있기에 다시 중심으로 돌아오는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응급실의 문은 오늘도 열릴 것이다. 그 문 앞에 선 나는 더 이상 환자의 요구를 그대로 옮겨 적는 대변인이 아니라, 환자의 불안을 걸러낼 수 있는 필터의 역할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것이 나를 지키고 환자를 지키는 길이라고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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