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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실에서 투사적 동일시란?

‘투사적 동일시’라는 단어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일상 속에서 누구에게나 자주 일어나는 심리 현상이다. 연인에게 괜히 서운해지고, 아이의 감정에 휘둘리거나, 어떤 사람과 대화한 후 이유 없이 피곤해지는 경험들 뒤에는 누군가의 감정이 나에게 던져지고,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서적 뒤섞임이 존재한다.

이 글은 상담실에서 벌어지는 투사적 동일시의 실제 사례를 통해, 인간관계 속에서 우리가 왜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워지는지, 그리고 그 감정을 어떻게 인식하고 건강한 경계를 세울 수 있는지를 설명한다.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심리 역동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관계의 축소판이다.


누군가에게 감정적으로 휘둘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이 글이 그 감정의 정체를 알아차리는 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다.


상담실에서 마주친 낯선 감정들 — 투사적 동일시란 무엇인가


상담실에 앉아 내담자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도무지 이유 없이 불쾌하거나, 몸이 찌뿌둥하고, 말을 꺼내기가 껄끄러워진다. 혹은 누군가에게 무시당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이유 없는 분노나 공포가 올라오기도 한다.

그럴 땐, 나는 잠시 멈춘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나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아차리기 위해.

이것이 바로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가 작동하는 순간이다.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던지는’ 것들


투사적 동일시는 상담 관계 속에서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일어난다. 내담자는 자신도 모르게 내면 깊숙한 감정, 주체하기 어려운 욕망, 과거의 아픔 등을 상담자에게 ‘던진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심리에 그것을 이식하는 것이다.

이 감정은 너무 원초적이고, 너무 유아기적이라 스스로 인식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상담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려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은근히 애정을 요구한다. 안아달라거나, 갑자기 성적인 주제를 끊임없이 말하거나, 사소하지만 낯선 감각에 대해 지나치게 생생하게 이야기한다. ‘나를 좀 봐달라’, ‘나를 살려달라’는 외침이 그렇게 표현되는 것이다.

어떤 내담자는 상담자를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떤 경우는 내담자가 커피를 사 왔는데, 자신의 커피는 Hollis 커피를, 상담자 것으로는 차가운 캔 커피를 사 왔다. 이것은 내담자가 자신의 엄마가 내게 차가운 젖을 줬다는 것을 연상케 하며, 상담자를 서운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유아기 엄마에게 보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 과정이 바로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이루어진다.

어떤 내담자는 값싼 물건을 사서 상담자에게 선물을 툭 건넨다. 그는 상담의 가치는 가볍게 여기고, 마치 상담자를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존재처럼 다룬다. 그 속엔 과거 어머니에게 느꼈던 차가움, 배신감, 통제 욕구 같은 복잡한 감정이 숨어 있다. 유아기에 엄마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렸지만, 상담자를 이런 식으로 휘둘러 봄으로써 유아기 엄마와의 관계를 재연하는 것이다. 투사적 동일시의 형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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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자에게 남는 이상한 느낌


내담자가 투사한 감정은 상담자에게 ‘역전이’라는 방식으로 들어온다. 그것은 단순한 공감이나 피로감과는 다르다. 상담자는 무력해지고, 혼란스러우며, 때로는 상담을 멈추고 싶다는 충동까지 느낀다.


어느 날은, 상담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앓듯 앉아 있곤 한다. 가슴에 무거운 돌이 내려앉은 듯한 느낌, 체한 것 같은 불쾌감, 무엇보다도 ‘내가 지금 누군가에게 휘둘리고 있다’는 섬세한 공포. 그것이 투사적 동일시의 그림자다.


상담의 변곡점이 되는 순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바로 상담의 본질로 들어가는 입구다.

내담자가 가장 유아기적인 자리에서 ‘상담자’라는 타인을 통해 다시 한번 자신을 재구성하고자 할 때, 그 투사의 힘은 치유의 문을 연다.


물론, 이 과정은 쉽지 않다. 상담자가 자신의 감정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그것이 ‘내담자의 것’ 임을 구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견디는 ‘내적 공간’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명확한 경계가 필요하다. 감정은 이해하되, 행동은 허용되지 않는다. 사랑은 공감으로 표현되되, 실제적 욕망은 선을 넘어선 안 된다. 상담자는 이 경계를 지키는 존재이자, 내담자가 자기 욕망을 스스로 구별해 낼 수 있도록 돕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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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회복하는 여정


투사적 동일시는 힘들지만, 상담의 진짜 역동이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상담자가 자신의 역전이를 자각하고 넘어설 때, 내담자는 ‘진짜 나’로 돌아올 수 있다. 유아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욕망과 감정을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조금씩 성장해 간다.


그리고 그 여정 속에서, 상담자 역시 성장한다. 무너질 듯한 감정을 견디며 자신의 부족함과 상처를 다시 들여다보게 되고,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감’을 품은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


투사적 동일시는 상담실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 연인과 부부 사이, 친구 사이에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감정을 던지고, 대신 느껴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관계의 시작이자, 때로는 가장 큰 상처의 원인이 된다.


그러나 이 복잡하고 아픈 역동이야말로, 우리가 진짜로 사랑하고 싶은 대상에게 가장 깊은 자신을 보여주고 싶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감정이 ‘이상하게’ 느껴질 때, 이렇게 자문해 보면 좋다.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 정말 나의 것인가?”

의외로 내 것이 아닌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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