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의 균열과 애도
이 글은 지난주, 글 <상담시간, 신체에 일어난 투사적 동일시>를 쓴 후, 다음 상담을 한 결과이다.
지난 상담 세션 중, 나는 환자의 상태를 받아내는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면서 신체적 타격을 받았고, 일주일이 지나도록 온전한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나의 아내는 이런 현상에 대해, "그 내담자는 좋겠다. 상담자가 전적으로 받아줘서... 내 아픔도 좀 그렇게 받아주지..." 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나는 한 주간 동안 몸의 아픔을 견뎌내면서, 과연 그 내담자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가 궁금했다.
이 글은 이에 관한 이야기이다.
일주일이 지나 다음 상담 중 발견한 것은 그녀의 남편의 강박에 균열이 생기는 것과 그녀 자신이 오랜 세월 보류해 온 애도였다.
그녀의 남편은 심각한 강박증 상태이다. 그의 주변에는 조부모, 부모, 부모의 형제 들 중에 수많은 자살과 사고로 인한 죽음으로 인해 그의 정서적 삶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그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 불안 등에 대한 방어기제로 강박을 가져왔다.
1년에 걸친 상담으로 내담자 여성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남편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상담자로서 그녀가 남편의 조그마한 변화에 대해서도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해 왔다. 몇 달 전에는 남편을 포옹해 보니, 예전보다 훨씬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 같더라.
자폐와 마찬가지로 그의 강박적 견고함이란, "사회적으로 상징화를 못 하고, 자기 몸을 상징화시켜서 마치 철갑을 두른 것처럼 살아가는 형태"를 취한다.
그런데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투사적 동일시를 일으킨 후, 다음 세션에서 남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남편이 내 손을 잡는데, 예전보다 좀 더 꽉 잡아주는 느낌이었어요."
겉으로는 작은 변화처럼 보이지만, 상담자로서 느낌은 강박증자인 남편의 내면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상담자로서 볼 때, 그녀의 남편의 강박이라는 '견고한 건물'에 금이 가기 시작했으며, 그 균열이 생기는 아픔을 상담자가 투사적 동일시 형태로 대신 느꼈던 것 같다.
남편의 내부 균열은 지금까지 유지해 왔던 외부와의 단절이나 부부간 회피적 행동 패턴에도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을 내포한다.
상담자로서 나는 내담자에게 "앞으로 남편의 조그마한 변화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음"을 조언했으며, '남편을 강박증 환자라고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는 남편의 변화가 부부관계 개선의 중요한 기회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가끔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순간이 있다. 이유 없이 피곤하고, 몸이 묵직하고, 기운이 빠진다거나 상담 중 졸린다거나. 하품을 한다는 것으로 내담자의 변화를 이내 알아차린다.
아, 이건 내담자의 감정이 나에게로 흘러온 거구나. 말로 다 하지 못한 고통이, 상담자의 몸을 경유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것이 바로 투사적 동일시이다.
상담자에게 몸적 투사적 동일시를 일으킨 내담자에게도 한 주간 동안 변화가 나타났다. 그 변화는 꿈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첫사랑과 함께 걷고 있었어요. 편하게 대화도 나눴고요. 그런데 마지막에,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이 사람은 이제 만날 수 없는 사람이구나.”
내담자는 이 꿈을 꾸고 슬펐다고 한다. 중요한 사람이 자신으로부터 떠나간다는 것 아닌가? 내담자는 이 꿈을 꾼 후, 깊은 슬픔에 빠졌다.
상담자가 말했다.
"드디어 첫사랑을 떠나보내시는군요. 참 오랫동안 그를 품고 사셨는데, 이제야 떠나보내시는군요."
그동안 첫사랑을 품고 사느라, 어쩌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둔감한 강박증자를 남편으로 맞았는지도 몰랐다.
남편이 아내의 손을 잡을 때 예전보다 꽉 잡는 느낌과 연결되는 내담자 자신의 내면의 변화는 바로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애도였다.
오랜 세월 첫사랑을 품고 살면서, 애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현 남편이 그녀 내면으로 들어올 공간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남편의 변화와 아내의 변화가 서로 맞물려 있었다. 그 변화를 상담자는 몸적 투사적 동일시로 받아내었던 것이다.
그녀의 꿈에 대한 상담자의 해석을 들으며, 마음속에 조용한 울림이 일었을 것이다.
그녀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사랑받지 못한 여성성의 자리를 이제는 비워내는 장면이었다.
그 자리를 정리하자, 남편이 손을 잡았다. 남편은 그 꿈속에서 빠져나간 ‘첫사랑’의 자리로 걸어 들어오고 있고, 아내는 애도로 첫사랑을 떠나보낸 공간에 남편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삶의 진짜 변화는 이렇게 온다.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손을 꽉 잡는 것.
누가 깨우지 않았는데 꿈속에서 옛사랑을 떠나보내는 것.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미묘한 변화가, 몸과 무의식을 통해 삶의 균열을 만든다.
남편과 아내는 각자의 문제로, 즉 남편은 강력한 강박으로, 아내는 애도하지 못해 남편이 들어올 공간을 내어 주지 않음으로 서로를 밀어냈던 것이다.
두 부부의 문제가 해결되는 국면에 상담자는 몸적 투사적 동일시를 겪어냈던 것이다.
각자 스스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도 어려운 문제였기에, 상담자에게 투사하여 전이를 일으키는 형태로 해결점을 찾고자 하였고, 상담자는 몸의 이상으로 찾아오는 순간, 이미 알아챘던 것이다.
애도는 때로 새로운 사랑의 시작이다.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꿈은 단지 과거와의 작별이 아니다.
그를 내 보내야 그 공간에 마땅히 사랑해야 할 사람이 들어온다.
중년기 부부의 사랑은 이렇게 새롭게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