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아쉽고도 또 아쉽다
해외이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추진했던 일이 둥이들의 책을 사들이는 일이었다. 한국에서야 도서관에서 빌려서 볼 수도 있고, 너무 많아서 고르는 게 일인 게 유아서적이지만(정말 많아도 너무 많다.) 라오스에서는 가장 아쉬울 물건이 '한글로 된' 어린이 책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주로 책을 빌려보던 터라 아홉 칸짜리 조그마한 책장도 군데군데 비어져 있는 상태였다.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육아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직접 샘플 책을 받아보기도 하면서 희망도서목록을 작성했다. 그렇게 작성된 도서목록을 들고 집 근처 '유아동 전문'중고서점으로 향했다.
평소 아이들의 물건은 엄마들을 통해 중고로 사고팔기를 즐겨했지만, 그것 또한 꽤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라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사야 할 책이 꽤 많았고, 해외이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였으니 말이다.
처음 가본 '유아동 전문' 중고서점은 신세계였다. 그 많은 유아동 서적이 발 디딜 틈도 없이 쌓여있는데 어디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래서 사장님께 적어 온 도서목록을 내밀었는데 그 많은 책들 속에서 원하는 책들을 귀신같이 척척 찾아주셨다. 덤으로 책들마다 장단점도 랩처럼 읊어주신다. 마치 생활의 달인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둥이들의 책 600여 권을 마련했다. 평소 책 읽는 모습을 비추어 볼 때 아주 충분한 양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되겠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라오스에 오고 1년 여가 지나니 벌써 책이 가장 아쉽다. 아직 수준에 맞지 않아 보지 않는 책 일부를 제외하고는 책 표지만 보고도 재잘재잘 줄거리를 이야기하니 또 다른 책들을 보여주고 싶고, 숫자에도 관심을 많이 가지기 시작하니 숫자에 관련된 책들도 좀 더 보여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
(교민들을 위한 책 나눔터가 있긴 하지만 둥이들이 볼만한 책들이 많지 않다)
또 라오스의 물류비가 비싼 편이라 책같이 무거운 물건은 보낼 수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좀 더 저렴 하지만 오래 걸리는 물류를 알게 되었고, 뜻하지 않게 온 가족이 한국에 가게 되었다. 한국 방문의 주목적은 병원 진료였지만 가기 전부터 이번 기회에 책을 사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다행히 바쁜 일정 속에서 무사히 책 구입을 해냈다. (비싼 물류비를 생각해 이번에도 중고책이긴 했지만 말이다.)
한국 집하 후 선적, 태국 도착, 그리고 라오스 육로 배송 후 세관 통과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려 도착했다.
둥이들이 낮잠을 자는 동안 미리 사둔 책장을 조립하고 닦아 새로 온 책들을 꽂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둥이들이 새책을 보더니 아주 신이 났다. 예상했던 것 보다도 더 흥분하며 책을 반기는데 조금은 아깝다고 생각했던 물류비에 대한 생각이 싹 사라졌다.
그러고 며칠 뒤 보통의 장난감 같으면 조금은 시들해졌을 시간이었다. 저녁식사 후 놀이방으로 들어간 둥이들이 너무 조용해 엿보러 가보니 믿지 못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보통은 대형사고가 났을법한 고요함이었다.)
둥이들이 책장 앞에 '레고' 자세로 마치 한글을 아는 듯 진지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새책이 온 뒤로 '엄마, 이거 읽어줘.'라는 고문 아닌 고문을 당하고 있었는데, 이럴 수가!!!
순간 킥킥 웃음이 났지만 최대한 조용히 지켜봤다. 이 순간을 방해할 순 없었으니까.
나와 남편은 e-book 도 이용하고, 종종 신간도 빌려 볼 수 기회가 많은데 아이들 책은 참 여러모로 아쉽다. 아무리 바빴어도 해외 이사 때 더 많이 가져오지 못한 게 후회도 된다.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는 없으니 앞으로는 이렇게라도 가끔씩 책을 마련해줘야겠다는 생각이다.
이 곳 라오스에서 늘 아쉽고도 또 아쉬운 물건 '한글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