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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둔족추장 Nov 14. 2019

사진과 식사하는 남자

메멘토 모리, 사진이 죽음을 기억하게 하라


그 남자를 만난 것은 6년 전, 북해도의 명산 아사히다케에서였다. 북해도의 가을은 매서웠다. 하필이면 아사히다케 정상을 오르려던 여행 마지막 날 계획이 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모두 어그러졌다. 악천후로 인해 정상으로 올라가는 로프웨이가 중단되었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날이 개기를 기대하며 산 중턱의 산장에 짐을 풀 수밖에 없었다.


연한 기다림 속에 저녁시간이 되자 산장의 식당으로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여행의 끝물인 데다 대망의 일정이 꼬여버려 모든 것이 무력해졌기 때문에 먹는 일조차 힘들 정도로 심신이 지쳐있었다. 뷔페식 식당은 점차 사람들이 들어차면서 소란하게 북적거렸고, 이제 갓 돌을 넘긴 아이는 연 칭얼거리며 신경을 긁었다. 어서 뛰어나가 뜨거운 온천물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게다가 옆 테이블의 남자가 정신 사납게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바람에 나는 먹는 것도 그만두고 멍하니 비가 내리는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옆 테이블의 남자는 낮지만 들뜬 음성으로 시종일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대는 듯했다. 중년의 남자가 이렇게 들떠서 말할 때는 한 가지 경우뿐이다. 분명히 불륜 상대이겠지. 그는 내 기대에 부응하듯 그녀를 위해 계속해서 음식을 가져왔다. 그는 분명 열심히 구애 중이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북해도 아사히다케 © 둔족추장


그가 15번째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도저히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떤 여자이길래! 그런데 너무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 중년 남자의 테이블에는 어떤 여인도 보이지 않았고, 그는 여전히 들뜬 목소리로 이야기 중이었다. 자세히 다시 보니 그의 앞에는 아름다운 여인 대신 웬 사진액자만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액자 속엔 그와 나이가 비슷한 중년의 여인이 있었다. 그가 가지고 온 음식들은 모두 그 사진 앞에 놓여 있었다.


그는 다시 다정하게 그 사진액자에게 말을 건네더니 디저트를 가지러 다녀왔다. 그가 돌아온다. 나는 짐짓 모른 척하고 곁눈질로 그 남자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마치 자신 앞에 사진 속 여인이 살아 있는 듯 여전히 즐겁게 이야기하며 식사를 이어나갔다. 식당 안 사람들에 대한 인상이나 음식에 대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실제로 그 사진 속 여인이 농담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간혹 크게 웃기까지 했다.  


비쩍 마른 몸매, 남루한 행색, 푹 꺼진 눈. 그의 몸은 그의 격앙된 목소리만큼 생기 있지 않았다. 갑자기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자 나의 변화를 눈치챈 남편이 나직하게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죽은 아내인 것 같지?

오늘, 이 장소가 저 남자에겐 아주 중요했는지도 몰라.

아내가 생전에 나처럼 단 음식을 아주 좋아했나 봐.."


과연 돌아보니 남자는 또다시 일어나 5번째 디저트를 가지러 가고 있었다. 사진액자의 앞에는 계속해서 음식이 쌓여갔고, 창밖엔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남자의 사진은 찍지 못했다. 나는 워낙 기억을 사진에 저장하는 사람인데도, 그의 개인적인 추모 의식에 감히 카메라를 가져다 댈 생각을 하지 못했다. © 둔족추장





아내의 사진과 식사한 남자
죽은 아내를 기리는 추모의 의식
초상사진에 영혼을 부여하는 간절한 그리움



뜻밖의 사건이었지만 여운이 길었다. 그 남자는 미친 걸까? 그렇게 보이진 않았다. 그는 식사를 마친 뒤 사진을 챙겨 조용히 식당을 떠났고, 로비에서 몇 번 우리와 마주쳤지만 더 이상 이상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다만 식당에서 들을 수 있었던 그의 생기 넘치던 목소리는 이후로 다시 듣진 못했다. 그 시간, 그 장소, 그 사진은 그에게 어떤 의미였던 걸까.


그가 보여준 행동들은 일종의 추모의식이었다. 죽은 자와 관련된 기억의 장소에서 그가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대접하고 그리움을 표시하는 '제사'였던 셈이다. 보통은 다른 이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이뤄질 일이었지만, 우리의 중년 남자는 타인의 시선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죽은 아내와의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가지고 다니는 아내의 사진이다. 그는 마치 아내가 살아있는 것처럼 사진을 대했다. 우리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단순한 '영정사진'에 지나지 않았을 초상사진이었는데도, 그는 그 사진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이다.


© 김지연 <낡은방>


사진사 초기, 사진을 찍기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카메라가 자신의 영혼을 빨아들인다고 믿은 것이다. 그들은 사진 속 자신을 닮은 인물을 경계했다. 자신의 영혼을 뺏어갔으므로 당연하다. 하지만 초상사진은 실제 그 인물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존재했고, 죽은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에 의해 보관되며 어떤 종류의 심리적 매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간절한 그리움이 초상사진에 대한 거부감을 이긴 것이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매개이자, 죽은 이와 산 자의 심리를 이어주는 초상사진은 오래된 시골집 서까래에 걸린 조상들의 영정사진처럼 생활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사람들과 소통한다. 사진과 식사하는 남자 역시 초상사진이 단순히 한 삶의 기념물이 아닌, 인격을 가진 매개체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래서 간혹 인간사의 어느 부분에서는 초상사진을 모독하거나 벌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종이에 불과한 사진이 환상을 만들다니. 모든  인간의 마음이 만드는 일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사진은 애틋하다.



인간의 마음이 빚는 초상 또는 환상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유한한 인생과 불멸의 사진, 그 간극의 비극

사진이 대중화된 19세기 초에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초상사진을 찍어 망자에 대한 애도와 죽음에 대한 의미를 기억하고자 했던 사진이 유행했다. 바로 '메멘토 모리 포토(Memento Mori photography)'이다. 초상화보다 저렴하고 제작기간이 짧아 대중적 인기를 누렸는데, 말하자면 우리의 영정사진과 같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의미의 메멘토 모리는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죽을 운명'이라는 진리를 전한다. 평소 죽음을 잊고 살지만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일상 안에 있음을,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 포토를 찍은 사람들은 대개 죽은 사람을 사진으로 영원히 품기 위해 사진을 찍었지만, 그도 역시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운명임을 깨닫지는 못했다. 다만 방 어딘가에 걸린 망자의 사진과 함께, '죽음'과 함께 남은 일상을 살 뿐이다.




사진은 기록의 매체다. 초상사진은 한때 살아 있던 어떤 인간의 모습을 영원히 보관시킨다. 인생은 기껏해야 백여 년의 유한함을 가지지만, 사진은 그가 담재되는 종이의 수명만큼 불멸성을 가진다. 비극은 바로 그 둘의 간극에 있다. 사진을 통해 우리는 인생의 유한함을 느끼고, 다시 한번 잊어버 죽음을 상기하게 된다. '죽음을 기억하라. 인생은 헛되고 헛되지만, 그렇기 때문에 소중한  겨야 한다(Memento Mori, Vanitas Vanitatum, Carpe Diem)'.


인생은 언젠가는 끝나기 때문에 슬프고 아름답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사진과 식사하는 남자를 보며 눈물을 흘렸던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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