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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령 Nov 11. 2019

세상 모든 딸들의 사진  

딸에게서 딸에게로 이어지는 원시 어머니의 위로


사회에서는 적이 많다. 대한민국의 여성으로 태어난 나에게 주적은 남성이었다. 많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적지 않은 성차별의 모욕감과 성역할의 부조리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존여비, 장유유서 따위의 유교사상에 젖은 일부 남성들이 이런 비호의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내는 주범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고 보니 더 강력한 적이 따로 있었다. 바로 나이 든 여성들이다. 그들은 젊은 시절 자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에게 남성 중심의 사회에 순응하며 살아갈 것을 강권했다. 사실상 이 부조리한 시스템을 지탱하는 주은 남성이 아닌 그들인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이 땅 위 대부분의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두 명의 끝판왕을 만나게 된다. 바로 남편의 어머니와 나의 엄마다.


갈등은 항상 명절 아침날 일어난다. 명절 가족이 모여서 하는 일이라고는 음식을 해서 나눠먹는 것 밖에 없는 시댁은 가는 것만으로도 고역이다. 나는 명절 전날부터 엉덩이를 땅에 붙일 새도 없이 시어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음식준비를 하고 매 끼니 상을 차려내고 산더미같은 설거지를 해치워야만 했다. 반남편과 남자 어른들은 호젓이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티브이를 보다 낮잠을 자는 것으로 소일 삼는다. 시어머니와 나는 왜 시집이란 걸 와서 성이 다른 남의 집 종살이를 자처하게 된 걸까? 당장이라도 행주를 집어던지고 뛰쳐나가고 싶지만, 의 평화를 위해 어머니와 나의 현실을 거짓음으받아들이 밖에는 별 도리가 없다는 걸 잘 안다.


잘못된 관행을 요구하는
어머니 세대에 대한 분노와 실망
어머니 저한테 왜 이러시나요



문제는 이 강요되고 편중된 노동이 너무나 억울하고 회의가 들어 친정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면서 일어난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친정엄마는 짧은 위로의 말 끝에 시어머니의 편을 들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딸에 대한 노파심, 사돈에 대한 부담감이 묻어난다. 그리고 웬만하면 참고 살라는 뻔한 결론에 도달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더 이상 참을 여력이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느끼지 못한 또 다른 종류의 분노가 치민다. 자신들은 이미 겪었다고, 힘든 시절 다 보냈다고 어떻게 같은 여성인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는가. 불합리한 사회 안에서 그토록 고생했다면 자식들에겐 그 고통을 넘겨주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왜 남성이 만든 부조리한 틀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못했는가. 그러다가 감정이 어느 정도 잦아들면 대체 이 사회의 어떤 관성이 하나밖에 안 남은 내편마저 이렇게도 남처럼 느껴지게 만든 것인지에 대한 의문만이 남는다. 분노의 칼끝이 남성에게서 여성으로 옮겨지며 결국 투쟁은 성대결에서 세대 대결로 넘어가게 된다. 어머니 세대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은 남성에 대한 그것과는 결이 다르다.






한동안 우울했나 보다. 그러다가 우연히 시댁에서 한 장의 낡은 사진을 발견한다. 30여 년 전 남편의 유치원 소풍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서는 앳된 얼굴의 시어머니가 5살 남짓한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뛰어가고 있었다. 내 시선은 어린 남편의 오른쪽 다리에 뭍은 흙과 어머니의 빨간 운동화를 거쳐 단정한 손길이 느껴지는 남편의 멜빵바지와 한껏 멋을 부린 어머니의 청바지, 그리고 꼭 쥔 두 손을 따라 올라간다. 그러다가 결국 두 사람의 얼굴에서 멈춰 섰다. 쑥스러운 듯 시선을 떨구고 있지만 행복에 넘치는 어머니의 웃음,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한 남편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 나는 그만 울컥하며 눈물을 쏟을 뻔했다. 아마도 사진 속 두 모자의 모습에서 지금의 나와 내 아이를 발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감정이입, 필연적인 기시감. 그것은 내가 이전에 친정엄마와 외할머니의 초상사진에서 느꼈던 바로 그 감정과 같은 것이었다.

 

나와 아이를 닮은 시어머니와 어린 남편 © 둔족추장



친정엄마의 사진은 더 오래된 것이었다. 50여 년 전 성당에서 영세를 받는 어린 엄마의 옆에 젊은 시절의 외할머니가 나란히 서 있다. 마사로 된 단정한 여름 원피스를 입은 외할머니는 하얀 양말에 꽃신을 신고, 정성들여 지었을 하얀 행사용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흰 양말에 검은 구두를 신었다. 서로 손을 맞잡고 가깝게 섰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엄마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사진의 중앙에서 왼쪽으로 약간 밀려나 있다. 사진가의 눈에는 모녀의 애틋한 감정과 관계보다는 행사의 주제를 사실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진에서 나의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어색하게 풀어진 엄마의 구두끈이 아니었다. 바로 나를 닮은 그들의 얼굴이었다. 외할머니의 얼굴에서 엄마가 느껴졌다. 그리고 엄마의 얼굴에서 내가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외할머니의 얼굴 어딘가에 내가 보이는 것도 같다. 이런 신비로운 경험을 하고 있자니, 외할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어머니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내 딸이 생각났다. 그 아이의 얼굴에서 나는 나의 '원시 어머니'의 얼굴을 발견한다. 우리는 모두 어떤 여성의 딸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 거대한 동질감에 온 몸이 떨렸다. 내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거리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이다.


외할머니와 그녀의 딸인 친정엄마 © 둔족추장


사진은 시간을 박제시킨다. 박제된 시간은 물성 그대로 남은 시간을 버틴다. 그게 사진이다. 내가 본 사진 속 어머니들은 과거의 시간에 갇혀 있다. 나는 사진 속 어머니를 보며 그 사진이 버텨온 시간을 잊어버린다. 그저 나와 비슷한 나이의 한 여인을 보며 지금의 나를 떠올릴 뿐이다. 비록 기시감이란 우리 뇌의 착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해도, 나와 비슷한 얼굴 구조, 표정, 분위기, 상황이 예전에 언젠가 거울 속에서 본 것만 같은 느낌을 마주하게 한다.


이런 우연한 기시감은 성별을 떠나 인류 보편적으로 겪는 정신적 사건인 듯하다. 가령 폴 오스터의 단편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에서는 어릴 적 산에서 실종된 아버지를 찾아 다시 그 산을 오르는 아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들은 결국 산속의 얼음 속에서 몇십 년 전 실종된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한다. 얼음 속에 갇힌 아버지의 시신은 생전의 젊은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아들은 자신과 꼭 닮은 아버지의 시신을 마주하며 잃어버렸던 원시 자아를 찾게 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온다.


시간을 박제시키는 사진
어머니들의 사진에서 원시 어머니의 위로를,
나의 사진에서 미래 딸들의 희망을 발견하다


사진 역시 얼음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시간을 이어주는 매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마지막으로 어릴 적 내 사진을 찾아보았다. 사진 속에선 친정엄마가 돌이 채 안 된 어린 나를 안고 어떤 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내 시선은 내 딸을 꼭 닮은 어린아이의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를 지나 근육이 도드라질 정도로 아이를 꽉 껴안은 친정엄마의 왼 팔뚝으로 옮겨진다. 그리고 친정엄마의 약지 손가락에 낀 결혼반지도.


친정엄마와 그녀의 딸인 나 © 둔족추장

 


성당의 제대 앞에서 수줍게 사진을 찍던 다소곳한 여학생은 사진 속 어디에도 없다. 그저 어린 자식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안고 놓지 않는 강인한 팔뚝을 가진 아줌마만 있을 뿐이다. 친정엄마는 지금의 나처럼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방황하는 시기를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외롭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어쨌든 치열하고 우악스럽게 그 시간을 견뎌왔을 것이다. 그 당시 친정엄마는 딸에게 어떤 기대를 걸었을까. '나처럼 살지 말라'고 했을까? 아니면 '너 같은 딸 낳아봐라'며 그때도 지금처럼 견디는 힘을 믿고 있었을까. 나는 아직도 친정엄마의 팔뚝에 기대어 있는 건 아닐까.






사진 속 어머니들에게서 느끼는 동질감은 어떤 위로를 준다. 어머니 세대가 지금의 나와 다름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만약 내가 어린아이가 있는 대한민국 기혼 여성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들의 사진에서 공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개인적이고 특수한 경험에 의한 감정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아마 나는 미우나 고우나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내 어머니 세대의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세월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밖에는 설명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사진을 통해 그들이 나와 다를 바 없는 여성이라고 느낀다.  


내 딸 역시 나와 같은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아마도 내 딸의 딸들도. 세월이 아무리 흐른 들, 세상이 아무리 변한 들 나 역시 원시 어머니들이 겪었던 일들을 지금도 똑같이 겪고 있으니까. 82년생 김지영은 어느 한 특수한 시대의 부산물이 아니다. 그래서 절망적이지만 그렇다고 절망할 수만은 없다. 그러기엔 내 딸이 조금 더 나은 세상에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우악스러운 어머니의 팔뚝처럼 내 딸을 더욱더 세게 껴안을 수 밖엔 없지 않은가. 더디고 더디더라도 조금씩 나아질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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