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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락 Aug 08. 2023

<4> 뼈스캔 (2)

투병 일기 - bone scan




뼈스캔 촬영실 옆에 전용 주사실이 있었다. 번호표를 뽑고 내 숫자를 기다렸다. 띵동, 14번. 그 안에는 남자 주사선생님이 계셨는데 외모와 달리 굉장히 나긋나긋하셨다. 차트를 보고, 이름과 생년월일을 묻는다.


“음, 처음이시구나. 이 검사는 뼈에 전이가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한 검사고요, 앞으로도 6개월에 한 번 하시게 될 거에요. 촬영하는 건 전혀 아프지 않아요. 긴장하실 필요 하나도 없어요.“


신입 환자를 위한 따스한 말 한마디.

“자, 수술은 어느 쪽이시죠? 왼쪽이구나. 그럼 왼손은 보호해야 하니까 오른손 올리시고. 주먹 접었다 펴보세요.”


오른손을 테이블 위로 올리며 고개는 왼쪽을 향했다. 나는 주사 맞는 걸 무서워하진 않지만, 바늘이 내 몸에 들어가는 걸 보진 않는다. 친절했던 채혈실 선생님도 ‘왼손보호’ 같은 건 알려주지 않으셨는데, 왜인지 너무도 따숩다.


“주먹 꽉 쥐고! 자, 천천히 펴시고. 주먹 펴라고 하면 천천히 펴야해요. 안 그러면 약이 들어가다가 핏줄이 다 터져. 이런 건 아무도 안 알려줘요, 그쵸? 그냥 펴라고만 하지.”

“네.”


아무도 안 알려준다는 것에 대한 긍정의 대답을 하고 ‘바늘은 언제 찌르는 거지?’라고 생각할 때, 그는 나의 팔뚝에 알콜솜을 올리며 테이프를 붙이고 있었다. 주사가 끝난 것이다.


!!! 프로다. 손은 눈보다 빠르다.


“혈관주사는 문지르면 절대 안 돼요. 10분간 꾹 누르고 있다가 이 앞에 폐기물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세요. 자유롭게 이동가능하고 식사도 아무거나 다 드세요. 이따 오후에 이 앞으로 오셔서 촬영하면 됩니다.”


말도 안 돼. 주사를 맞으면서 내 평생 거의 안 아픈 적은 있어도 아예 아프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신입 환자에게 따뜻한 안내를 하며 그의 손은 샤샤샥 할 일을 마쳤다. 기립박수!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다. 이곳은 진정 프로의 세계다.


(내 인생에서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던 순간이 한 번 더 있었는데, 파마하러 간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겨주던 미용사 분이 시원한 두피마사지를 선보여주셨을 때다.)


오후까지 병원에서 기다리기엔 긴 시간이라 한 학기동안 같이 근무한 G선생님에게 급히 문자를 했다. 방학 직전 가슴이 불편해서 병원에 검사하러 간다고 말한 뒤, 결과 나왔냐며 누구보다 곁에서 염려해주던 지인이다. 다음 학기에는 함께 근무하기 어렵게 됐지만, 이제 내가 필요하다고 연락하면 언제든 나오겠다고 약속해 준 동네친구. 나의 문자에 당장 나와주었다.


나의 며칠간의 고군분투를 들으며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올라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평소에도 긍정적인 그녀였기에 동생답지 않은 든든함으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샘, 다 잘 될 거예요. ‘왜 나만’, 이런 생각하면 안 되고요. 먹기 싫어도 잘 챙겨드세요. 아, 샘 없는 학교 상상해본 적 없는데… 연락주세요! 치료 잘 받고요!”


고마웠다. 힘내라고 다독여주는 동네 친구가 생긴 것에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사준 설렁탕 한 그릇과 이디야 식혜로 힘을 낸 나는 뼈스캔을 위해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핵의학과 촬영실 앞 의자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이름이 불렸다. 뼈스캔은 따로 옷을 갈아입지 않아도 되었다. 소지품만 한 켠에 내려놓고 동그란 도넛모양 기계 안으로 연결 된 침대에 바로 누웠다. 차렷자세를 한 채 가만히 누워있으면, 도넛모양 기계가 상체쪽으로 올라왔다 쭈욱 내려간다. 눈앞에 왔을 때는 다소 갑갑했으나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천장이 보였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검사는 금방 끝났다.


주사 맞고 중간 대기시간만 길지 않다면 전혀 겁낼 검사는 아니었다. 6개월에 한 번. 그럼 겨울에 또 올게요. 고생하셨습니다.



23.07.24. 월요일.

영어식표현으로 본스캔이 맞는데, 다들 ‘뼈스캔’이라고 부른다. 발음이 주는 임팩트,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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