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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락 Aug 09. 2023

<5> CT와 MRI

투병 일기 - 금식을 요하는 두 가지 촬영




오늘은 예정되어 있던 검사가 두 개 있다. CT와 MRI. 금식을 해야 했다. 길을 나서는 아침, 조금 배가 고팠지만 오랜만에 장을 비우고 간헐적 단식을 하는 마음으로 꼬르륵 소리에 집중하지 않았다.


토요일이라 촬영만 진행되어 병원 안은 조금 어둑하고 한산했다. 두 가지 검사가 오전, 오후에 나뉘어 예약되어 꽤 오래 굶어야겠다고 각오했지만, 오후 검사를 오전으로 당겨주어 연이어 마칠 수 있었다.


총 10만 원대의 수납비용이 나왔다. 영수증 속 공단부담금에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찍혀있었고, 그 금액의 5%만 지불해도 되는 공식 암환자임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두 촬영실은 마주 보고 있었고, 그 옆에 조영제 투여를 위해 손등에 주삿바늘만 놓아주는 주사실이 있었다.


이것저것 현재 건강상태를 체크했다. 과거의 수술이력이나 약물알러지, 폐소공포증 여부를 확인하고 설명을 들었음에 동의하는 사인을 했다. 바늘이 커 꽤 아플 거라고 하셨고, 나는 수술 시 왼손보호를 위해 오른손을 올려놓았다. 조명에 손등을 이리저리 살피시기에 ‘핏줄이 숨었나요?’ 하고 묻자,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씀하신다.


“주사를 놓는 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아픈 분들 오시는데 덜 아프게 해 드리려고 제가 고민하고 있는 거예요.”

참 고마운 배려다. 어디에 찌를지 결정하셨는지 알코올솜을 여러 차례 문지르시고는 딱! 끄음. 눈으로 보지 않았지만 진짜 바늘이 어지간히 컸나 보다. 앞으로 손등에 맞을 주사들이 걱정될 만큼 따가웠다.


대롱대롱 바늘만 붙인 채, 첫 번째 검사인 CT실로 향했다. 문 앞에 도착하면 정수기에서 물을 두 컵 마시고 있으라기에 꼴깍꼴깍 연거푸 두 잔을 마셨다. 내 이름이 불리고, 안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뼈스캔 기계보다는 좀 더 큰 웅장한 기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처음해 본 검사는 아니지만 오랜만이라 긴장이 되었다.


“조영제를 넣으면 몸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일시적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만세 자세를 한 채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집중했다. 도넛 모양 기계가 느리게 내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시작과 동시에 조영제가 주입되는 줄 알고 들어가는 건 아무 느낌이 안 나네, 했더니 몇 분 지나서야 ‘뽀드득’하며 손등부터 무언가 들어가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얼마 후 몸이 후끈해졌는데 아랫배로 흘러갔을 땐 순간 내가 소변을 본 줄 알았다. ‘으이구, 주책아! 큰일 났네!‘ 할 때쯤 뜨거운 느낌이 가셨다.


전체 기계 속도와는 별개로 내부에서 엄청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부품을 멍하게 쳐다보며 누워있은 지 10여 분쯤 지났을까. 윙윙 소리가 멈추고 검사가 끝났다. 내려오는 도중 혹시라도 어지러울까 봐 옆에서 부축해 주실 준비를 했다. 무사히 옷을 갈아입고, 다음 검사실로 이동했다.


MRI는 시간도 길고 그 소리가 어마어마하기에 더 긴장되었다. 누워서 통 안에 들어가면 많이 답답하기에 두려웠지만, 나는 MRI2 검사였기에 덜 힘들었다. 바로 유방 MRI. 엎드린 자세로 양쪽 가슴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받는 검사다. 동그란 구멍이 두 개 있고, 가슴을 한쪽씩 잘 맞춰 엎드렸다. 눈앞에는 천장을 비춰주는 거울이 있어 갇혀있는 느낌도 받지 않았다. 선생님이 정성스레 꽂아주신 귀마개를 내 손으로 다시 맞추고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자 커다란 이어폰을 씌워주었다.


귀를 막아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의 ‘시작합니다.’ 다섯 글자와 함께 이 시간에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가 고민했다. 수능감독을 앞두고 생각할 거리를 찾아둘 때나 하던 고민이다. ‘무슨 생각을 하면 시간이 잘 가려나…?’


기계가 움직이자 눈앞 거울 속 터널도 같이 움직였다. 그로 인해 마치 내가 수퍼맨 자세로 내려가는 착각이 들었다. 조영제 느낌은 특별히 느껴지지 않았지만, 소리가 어찌나 다양하던지. 우르릉쾅쾅, 우당탕쿵탕, 쿵쓰쿵쓰쿵쓰. 한참이 지나 몽롱하니 그 소리에도 어쩌면 잠이 들 수도 있겠다 싶을 때 검사는 끝났다.


상냥한 검사샘의 도움으로 기계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와 옷을 갈아입으러 탈의실에 들어갔다. 오랜 시간 엎드려 있던 탓에 이마와 볼에는 진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볼은 마스크로 가렸지만, 이마에는 큰 주름 하나 새기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준비해 간 두유를 하나 꺼내 먹었다. 이 모든 과정이 수술할 암덩이 부분을 알아보고, 전이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부디, 새로운 덩어리가 나타나지 않기를.



23.07.29. 토요일.

촬영을 마쳤으니 결과를 바로 알려주면 좋겠다. 수행평가 마치고 점수를 불러달라던 학생들 마음을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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