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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락 Aug 22. 2023

15. 이쁘다-

꽃 찾으러 왔단다, 왔단다, 왔단다-


이쁘다
1. (무엇이) 눈에 보기에 좋고 사랑스럽다.
2. (사람의 언행이) 사랑스럽거나 귀엽게 여길 만하다.


항암을 시작한 날, 새벽 늦게 잠이 들 무렵, 수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푸근한 인상. 왜인지 간호사인 우리 이모가 생각났다. 환자에게 밝게 웃어주며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셨을 이모의 미소가 떠올랐다. 그 덕에 어릴 때부터 아픈 곳이 생기면 이모에게 전화해서 확인받던 내 어린 모습도 스쳐 지나갔다.


“어제 처음 하셨죠? 괜찮았어요?”

“네, 아직은 팔이 저린 것 말고는 없어요.“

“그래도 다행이네. 증상이 워낙 다양하고 사람마다 다 달라서~. 내가 여기 온 지 6년 됐는데, 정말 반응이 다양해요. 겉으로는 멀쩡한데 손톱 끝이 아파서 뭘 만지지도 못하고. 화장실 가서 손이 아프다고 볼 일도 못 보시는 거야. 여자 간호사면 괜찮은데 남자 간호사라도 오면 말 꺼내기도 어렵고.“


나는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처음엔 겉으로 괜찮아 보이는데 왜 그러나 했어요, 뭘 모르니까. 전에는 암병동이 아니었거든요.여기 와보니까 알겠더라고. 겉으로는 괜찮아도 속으로는 너무 아픈 거지.“

내 손끝은 통증이 없나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에구, 호락님 젊으셔서 잘 버틸 수 있을 거예요. 금방 다 나으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쁜데, 이렇게 꽃 같은데, 꽃보다 이쁜데… 그럼 쉬어요.“

촤르륵, 커튼 치는 소리에 이어 쿵하고 문 닫는 소리가 들리자,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꽃…’.  

젊고 아리따운, 싱싱하고 화려한.


선생님의 목소리에 묻어있는 안타까움이 무얼 나타내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의 내가 20대 아가씨는 아니지만, 한창 젊은 나이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한데 두건을 뒤집어쓰고 핏기 없는 입술로 언제 올지 모르는 부작용 통증을 기다리고 있는 꼴이란.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지만 엉엉 울진 않았다. 순간, 이 병 때문에 시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눈물이 고였던 것이지만, 나는 평생 딱 한 번만 꽃을 피우고 지는 ‘한해살이풀’이 아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추운 겨울이 와도 매서운 눈발을 맞아가며 새싹을 틔울 다음 봄을 기다리는 나무 같은 사람이 되리라.

시들지 않으리라.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꽃같이 이쁜- 꽃보다 이쁠.



23.08.18. 금요일.

당신은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

저는 양귀비 꽃을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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