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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Jun 13. 2023

병신 같은 점쟁이

그가 부디 안도했으면 한다.

출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제발 내 턴에서는 돌아가시질 말길..’      


 전 일부터 기도했다. 주치의는 60대 여성 유방암 환자(여기저기 전이가 된)가 주말 동안 컨디션이 더 악화될 것을 예견하고 연명 치료를 중단하겠다는 동의서를 받아 놓은 상태였다. 전 근무 타임에서는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정상 범위를 유지했지만 일요일 오후, 내 근무가 시작되자마자 그 환자의 산소포화도는 급격히 떨어졌다. 산소 주입량은 점점 증량하다 최대로 증량했다. 그럼에도 그 환자의 혈압과 산소포화도는 여전히 떨어져 갔다. 상주 보호자로 있던 환자의 남편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눌 가족을 모두 부르라고 재촉했다. 암 병동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며 수없이 지켜본 임종이지만 누군가의 삶의 끝을 지키는 것은 항상 부담이다. 다인실에 있던 환자를 비어있는 병실로 빼내어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했다. 임종 직전의 환자를 침대째 빼내면서 나는 얼마 전 나의 점을 봐주었던 점쟁이를 생각했다.   


       

 바람이 유난히 차가웠던 날, 신들린 지 얼마 안 된 용한 선녀가 있다는 말만 믿고 달려갔던 주소엔 유치권 행사 중인 빌라만 있었을 뿐이었다. 지나는 사람 한 명 없는 공사판 같은 곳이었다. 당시 남자친구와 함께 갔었는데 그때 잡은 그 손이 어찌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의 경찰이란 직업에 감사했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가봐야지.’ 하며 들어간 그곳은 밖과 다르게 따뜻하며 아늑했다. 불쾌한 담배 냄새가 났고 덩치 크고 진하게 화장한 여자가 자신이 선녀라며 우리를 반겼다.

          

 그 선녀는 우리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적어가고는 '휘이' 하는 휘파람을 불며 자신이 모시고 있다는 할머니를 불렀다. 그러더니 우리더러 조상이 맺어준 인연이라고 하였다. 너무나 이쁘니 지금처럼만 만나라고 했다. 내 남자친구는 나와 헤어지던 날 "하나도 못 맞추는 병신 같은 점쟁이, 조상이 맺어주긴 내 조상이 미쳤나."라며 소리쳤다.

     

그래, 그 점쟁이는 하나도 맞추지 못했다. 우리는 전혀 이쁘게 만나고 있지 않았다. 그와 헤어지고 이쁘게 다시 한번만 만나보면 안 되냐는 나의 말에 그는 "난 항상 이쁘게 만나고 있었어. 네가 안 그랬던 거지."라고 대답하였고 실제로 그랬다.

     

그에게 조상이 있다면 우리를 맺어주면 안 되는 것이었다.     



 첫 만남에 그의 맘에 들고 싶었던 때가 생각난다. 술을 너무나 좋아했던 나는 술을 잘 못하는 척, 세상 순진한 얼굴을 했었다. 내 경험상 그와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술을 즐기는 여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우리가 헤어질 때 내게 처음부터 다 거짓이었다고 말했다. 만나면서 그가 이제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이 들자 나는 교만해졌다. 그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기 시작했고, 한눈을 팔았고, 다시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지금껏 사람은 반드시 떠나간다고 생각했다. 난 지금껏 그런 사람만 만나왔고 나 또한 그런 사람이었다. 언제든 이별이 준비되어 있는 사람. 더 나은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떠날 준비를 했었다. 그것이 지혜로운 것인 줄 알았다. ‘내 부모보다는 잘 살 거야, 결혼은 무조건 잘할 거야, 뭐든 완벽한 사람을 만날 거야.’ 나의 결핍이 나를 이토록 못나게 만들었다.      



그가 나를 떠났을 때. 그제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내게 얼마나 큰 사람이었는지, 내게 얼마나 큰 사랑을 줬었는지. 나에게 얼마나 과분했던 사람이었는지.     


 그의 말에 의하면 ‘의리’. 난 의리를 저버린 것이었다. 정신이 들고 후회의 눈물을 쏟아내며, 이미 놓쳐버린 것을 잡으려 허우적 댈 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아, 그는 이런 사람이었다. 지혜롭고 냉철했다. 순간의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결정에 확고한 사람이었다. 우유부단하고 충동적인 나와는 다른 그의 모습들. 난 이런 그를 좋아하고 닮고 싶었다. 그걸 잠시 잊고 있었다. 내가 어리석었다.     


냉정한 사람이었지만 나에게만은 한없이 자상했던, 마냥 나를 이쁘게 봐줬던, 날 사랑해 줬던 그가 너무 그립다. 사랑스러운 눈빛을 하고 애정 담아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큰 손을 다시 느끼고 싶다. 이제 나에게 자격이 없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본인을 새삥 선녀라고 말하던 그 점쟁이는 나에게 조만간 사체를 볼 것이라고 했다. 여자 환자라고 했고 웬만하면 그것을 피하라고 말했다. 직업상 피할 순 없겠지만 가능하면 피하라고 했다. 내가 애정을 갖고 돌보던 환자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질 것이고, 사체를 보는 것이 아빠를 떠나보낸 지 얼마 안 된 내게 좋지 않다고 했다.     


 정말 여자 환자였고 내가 계속 돌보던 환자였다. 임종 직전의 컨디션까지 내가 돌보아야 했다. 하지만 산소포화도 60%를 유지하고 다음 근무자에게 넘겨주었다. 생과 사의 기로에 계셨지만, 결과적으로, 엄밀히 따지자면, 사체를 보지 못했다. 할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그녀는 그의 말대로 병신 같은 점쟁이, 하나도 못 맞추는 점쟁이가 맞았다.     


 오늘 임종 직전의 의식조차 없는 60대 아내에게 60대 남편은 너무나 사랑했다고 고백했다. 나쁜 암 따위가 와서는 마지막 가는 길 대화도 나누지 못하고 간다고,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자신이 대신 죽을 수는 없느냐고 한탄했다. 두 손을 꼭 쥐고 당신과 아침에 정치 이야기를 떠들며 마시던 커피 한잔이 그렇게 행복했다고 추억했다. 점점 차가워지는 손에 얼굴을 파묻고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 되느냐고 눈물을 흘렸다. 당신도 곧 따라갈 테니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있으라며 고개를 떨구었다.     


 두 아들이 병실에 헐레벌떡 도착하자 눈물을 닦아내고 엄마의 손이 점점 차가워진다며 어서 인사들 하라고 담담하게 말하곤 등을 돌렸다. 엄마를 부르며 오열하는 두 자식을 뒤로, 담당 간호사인 나와 장례식장을 상의하는 등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를 배웅할 준비를 한다.      



 이 슬픈 작별 인사 속, 난 담담히 내 할 일을 한다. 가족에게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조심스럽게 환자의 현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고 마지막 인사를 돕는다. 담당 의사에게도 상황을 전달하며 모든 가족이 도착하고 환자의 심장과 호흡이 멈출 때 다시 연락하기로 약속한다. 사망선고를 위해서이다. 이 모든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장례식장을 어디로 할 것인지, 주소는 전산에 등록된 것과 동일한지, 병실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확인한다. 임종 직전의 환자는 챙겨야 할 것이 많아 담당 간호사가 슬퍼할 겨를이 없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부도덕하게도 안도의 한숨을 쉬고 웃으며 다음 근무자에게 인계해 준다. 환자 임종 시 해야 할 것들을 미리 챙겨 다음 근무자에게 쓱 내밀었다. ‘내 할 일은 끝났다, 나머지는 네가 해라.’이런 느낌으로 말이다. 인계가 끝나고 병동 전체를 울리는 슬픔 울음소리를 뒤로 한 채 서둘러 병동을 빠져나갔다.      


그 병신 같은 점쟁이는 내가 내 환자의 임종으로 슬픔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내 환자는 가족의 품속에서 따뜻하게 돌아가셨을 것이다. 산소와 혈압이 조금씩 떨어지자 모든 가족을 서둘러 부르라고 재촉했고 임종 전 모든 가족이 도착했었다.


 난 아빠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우리 아빠는 홀로 죽음을 맞이하셨다. 그것은 아직 가슴에 흉터가 되어 남아있다. 내 환자와 내 환자의 가족들은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이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서, 평생을 사랑했고 고마웠다는 고백을 들으며 눈 감는 것이 왜 슬퍼할 일인가.

          

 아아, 사랑하는 남자와 그를 닮은 두 아들의 품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 이것은 평생의 의리를 지킨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또 정말 죄송스럽게도 다른 이의 죽음 앞에서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다.      



 그 병신 같은 점쟁이는 정말 하나도 맞추지 못했다. 우리의 조상은 서로 인사를 나눈 적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부디 안도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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