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아이들이 식물을 아니지
원래부터 비가 잘 오지 않는 남캘리포니아의 기후는 여름이면 길어진 일조량으로 인해, 물만 충분히 주면 식물들이 미친 듯이 자라난다. 4월쯤이 되면 한동안 성장을 멈췄던 정원의 식물들이나 잔디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시작하고, 이 성장세는 11월쯤이 되어서야 주춤해진다. 정원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계절에 맞추어 가지치기를 하고, 비료를 제때 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여름철의 잔디는 빠른 성장 때문에 2주에 한 번은 깎아 주어야 하며, 계절에 따라 강해지고 길어진 햇볕에 비례하여 자동 물 주기 장치의 시간과 빈도도 조절해 주어야 한다.
미국에서 20년 넘게 잔디를 관리하다 보니,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땅을 파서 스프링클러를 교체하거나, 정원과 잔디 관리를 위해 언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게 되었다. 동네 대부분의 이웃은 정원과 잔디 관리를 도와주는 사람을 따로 고용하고 있지만, 나는 한 번도 이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본 적이 없다. 매달 들어가는 인건비가 아깝기도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관리되지 않을 수 있다는 걱정도 이러한 결정에 한몫했다. 또한, 과연 나보다 이 식물들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돌봐줄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오늘 아침에는 잔디를 깎고 나서, 바빠서 신경을 쓰지 못한 사이 무릎까지 자란 잡초를 솎아 주었고, 이미 피고 지어 마른 장미 가지도 잘라주었다. 정원 구석에 심어둔 깻잎이 말라 보여 스프링클러의 각도를 조절해 충분한 물이 닿도록 하였고, 가지가 많아진 고추는 일부 가지를 잘라주어 알이 굵은 고추가 맺히도록 도왔다. 모히토로 유명해진 페퍼민트는 여름만 되면 지나치게 자라 다른 식물들의 성장을 방해하므로, 주기적으로 한 아름씩 뽑아주어야 한다. 최소한 이 녀석은 뽑을 때마다 상쾌한 향을 내어 기분이라도 좋아지게 하지만, 정원 관리와 관련된 대부분의 다른 일들은 단순한 육체노동이라 이른 아침에 끝내 놓지 않으면 남캘리포니아의 작열하는 여름 태양볕 아래에서의 작업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정원관리는 쉽지 않지만, 일을 끝내고 나면 노력한 만큼의 긍정적인 결과가 반드시 따라온다는 점에서 손을 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가끔 교실에 있는 학생들을 보며 나를 정원사에 비유해 볼 때가 있다. 시들어가는 식물을 그늘로 옮기고 물을 듬뿍 주듯, 등굣길부터 시무룩한 아이는 따로 불러내어 이유를 묻고,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도록 사기를 북돋워 준다. 학기 초부터 말을 잘하지 않던 아이는 그 이름을 더 자주 불러주고 눈을 자주 마주쳐,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려 애쓴다. 아직 학년의 읽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학생은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 개인별 지도나 소그룹 지도를 통해 도와주고, 수학이 약한 아이들은 숫자 세기, 숫자 읽기와 쓰기, 연산 개념 이해 등을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지도해 학업 성장을 도모한다.
시들어가던 식물들이 다시 파릇한 잎을 틔우며 초록을 만들어내듯, 교사의 관심과 지도를 받은 아이들도 대부분 부족했던 부분에서 빠르게 성장한다. 하지만 학업은 학교생활의 절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은, 아무리 유능한 정원사라 해도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부분, 바로 학생들의 행동과 교우관계다.
이제 6살, 7살 정도 된 이 “작은 사람들”은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어른 사회 못지않은 관계와 갈등을 보여준다. 어떤 학생들은 이 어린 나이에도 노회 한 정치인이나 구사할 법한 행동으로 다른 아이들을 조종하고 지배하기도 하고, 또 어떤 학생들은 놀라울 만큼 강한 정의감으로 이런 부당함에 맞서기도 하며, 어떤 학생들은 조용히 자기만의 방식으로 공동체 안에서 자리를 찾아간다. 문제는 햇볕을 더 주거나 그늘로 옮기는 식의 간단한 방법으로는 이들의 행동 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겉보기에는 작고 단순한 갈등처럼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관계와 사건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결이 쉽지 않으며, 재발을 막는 일은 더 어렵다. 단순히 벌을 주거나 야단을 치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할 만하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라고 느껴진다. 어린아이들이 라면 더욱 그렇다.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하며 이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는다면, 갈등 해소와 예방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라 믿는다. 특히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는 사회정서학습(SEL)의 일환으로, The Ojai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Council을 실시하고 있다. 다음은 Council을 운영하는 간단한 방법이다.
Listen from the heart. Share from the heart. Keep it lean. (진심으로 듣기, 진심으로 말하기, 간단하게 말하기)
Talking Piece: 말을 할 수 있는 순서를 나타내는 물건
Coyote Ear: 종소리를 울리고 끝까지 집중해 듣는 활동
Dedication: 나에게 중요한 것에 마음을 두는 시간
Prompt: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내가 슬플 때 가는 장소는?”, “가족 자랑하기” 등
Closing: 모두 함께 손뼉 치기 등 마무리 활동
학생들은 이 Council 시간을 통해 친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한다. 이 과정은 타인에 대한 공감과 존중, 공동체 의식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문제 행동이 한 번에 바뀐다면 정말 환상적이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같은 문제로 같은 주제로 Council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를 정도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 학생은 한두 명이지만, 이들의 행동을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다. 같은 문제 행동을 반복하는 학생을 보며, 때로는 내가 게에게 앞으로 걸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이들이 “작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머리가 이미 커버린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이 “작은 사람들”이 오늘 나의 교실에서 만들어낸 아주 작은 변화 하나가, 이들의 미래에는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여름 방학이 이틀 남았다. 올해 맡았던 학생들은 유난히 눈에 밟히고, 또 아쉬운 점들도 이곳저곳에 눈에 띈다. 내가 보았던, 혹은 아직 보지 못한, 꽃피지 않은 수많은 가능성들이 언젠가 활짝 피어나 찬란한 아우성으로 돌아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