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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며 배우며

미국학교 IEP (Individualized Education Plan)

by Seunghwan Connor Jeon

6학년 때 일이었다. 담임선생님은 나에게 방과 후에 학급의 한 친구를 도와주라고 말씀하셨다. 그 친구는 학업에 어려움이 있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 어떤 친구들은 이 친구를 따돌리거나 괴롭히기도 했고, 나 역시 그 친구와 가까워지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선생님의 말씀이니 어쩔 수 없이 방과 후에 나는 그 아이의 집으로 가서 숙제를 도와줄 수밖에 없었다. 마음껏 놀고 싶었던 나는 숙제가 있는 날이면 그 아이의 집으로 가서 숙제를 보는 듯 마는 듯 얼른 도와주고는 쏜살같이 그 아이의 집을 나와 친구들에게 달려가기 바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했던 내가 또래를 도와주는 일을 맡았으니 그 일이 얼마나 잘되었을지, 또 그 아이에게는 그 당시의 경험이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지 40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 걱정이 되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학생은 일종의 학습장애가 있었던 것 같다. 배우는 것과 행동하는 속도가 느렸고, 그래서 다른 학생들의 따돌림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 50명이 넘었던 학급을 생각해 보면, 선생님이 모든 학생의 필요에 따라 일일이 도움을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당시 한국의 여러 가지 사정상 지금과 같은 꼼꼼한 교육행정 서비스는 상상할 수 없을 때였다.


미국은 어떨까? 미국의 교육 현장에 와보니 IEP(Individualized Education Plan)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IEP는 장애가 있거나 특수한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 학생을 위해 만들어지는 맞춤형 교육 계획으로, IDEA(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라는 법에 따라 학생의 필요에 맞는 서비스가 제공되며, 학생들이 학교에서 최대한 잘 배울 수 있도록 돕는다. IEP를 받게 되는 대표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다:


Specific Learning Disability (SLD) – 학습장애 / 학습부진
Speech or Language Impairment – 언어장애

Other Health Impairment (OHI) – 건강 관련 장애
Autism Spectrum Disorder (ASD) – 자폐 스펙트럼 장애

Emotional Disturbance (ED) – 정서 및 행동 장애
Intellectual Disability (ID) – 지적장애


관련 서비스는 언어치료, 물리치료, 학업적 지원, 상담 등을 포함하며, 학생의 학교생활을 전인적인 관점에서 검토하고 지원한다. IEP는 학생의 문제를 인식한 학부모나 교사가 관련 절차를 시작하고, 전문가의 평가를 거쳐 해당 학생이 IEP 서비스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시작된다.


미국에서 교직을 시작한 첫 해부터 IEP를 받고 있는 학생들은 해마다 내 반에 있었다. 어떤 학생들은 하나의 증상만 있었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은 둘 이상의 증상을 가지고 있어서 교실에서 정상적인 수업을 진행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기곤 했다. 내가 유치원 시절부터 가르쳐 온 한 학생은 교실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생기면 바닥에 드러누워 큰 소리로 울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수업을 방해하곤 했다. 그 학생을 전담하는 보조교사가 항상 교실에 함께 있었을 정도로 상황은 심각했지만, 규정상 그 학생이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해서 교실 밖으로 내보낼 수는 없었다. 이 학생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우리 반 학생들을 데리고 의도치 않은 자연 관찰 활동(Nature Walk)을 여러 번 해야 하기도 했다.


IEP를 받는 우리 반 학생들을 따로 특수반이나 특수학교에 보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고, 새 학년이 시작될 때 증상이 심한 학생이 들어올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생들은 결국 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며, 다른 학생들 또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학교에서부터 이들을 다른 공간에 분리해 생활하게 한다면, 이들은 사회에 적응할 기회를 잃고, 다른 이들은 이들을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IEP를 받는 친구가 문제를 일으켜도 때로는 교사인 나보다도 더 이해심을 가지고 그 친구를 도와주었다. 이 아이들은 경험을 통해 IEP를 받는 친구를 어떻게 돕고 지낼 수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익혀가고 있었다.


몇 년 동안 내 교실에 있었던 이 학생은 최근 5학년을 졸업하고 중학교로 진학했다. 증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겠지만, 고학년이 되어 제법 의젓하게 교정을 걷는 그 아이의 모습을 보니 대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내가 그 아이를 위해 특별히 해준 것은 없지만, 그 아이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고 함께했던 시간 자체가 나에겐 큰 의미였다. 그동안 이 아이와 함께 울고 웃으며 보낸 시간은 내가 교사로서, 그리고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 만날 또 다른 IEP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어릴 적 내가 도와주었던 그 친구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그 아이가 그때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IEP를 받았다면 어땠을까. 그 아이를 차별했던 다른 학생들은 자신들과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가며 돕는 법을 배웠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지금, 그 아이의 삶도, 그리고 그 아이를 둘러싼 사회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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