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쥬드 Dec 13. 2023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어영부영 보내면 정말 남는 것은 영이다.

 결혼을 하고 요리에 재미를 붙였다. 칼과 불이라는 크나큰 위험에 나를 내던지고, 그 대가로 가족을 먹일 음식을 얻는다. 정해진 레시피대로 시간을 투자하면 그럴듯한 형태가 생겨난다. 여기에 조금씩 변주를 더하다 보면 나만의 맛이 생겨난다. 이 단순하고 명료한 행위에 일종의 만족감이 생기기도 했다.

 몇 번 해봤던 요리를 다시 시도하려고 마음먹었을 때다. 필요한 재료가 무엇인지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평소 즐겨보던 유튜버의 영상을 다시 틀고 설명을 보고 나서야 생각이 났다. 요리를 할 때에도 영상을 켜고 되돌려보기 일쑤였다. 전투적인 창작이 끝나고 난 뒤 허망함이 찾아왔다. 나는 이 요리를 '할 줄 안다'라고 말하는 게 맞을까? 몇 번의 제작 과정에서 얻은 것은 무엇이지? 매번 나는 영상을 봐야만 요리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최근에 이런 생각이 잦아졌다. 아무 생각 없이 따라만 하는 일이 정녕 내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보고 나면 기억이 나지 않는 연극, 그저 읽기에만 급급했던 책, 하루하루 일정 성취감만 갈구했던 직장에서의 일들. 그 모든 순간에 내가 '깨어있음'을 인지한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퇴사를 결심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멈춤을 선택했다.

 그러고 무작정 떠난 해외여행에서 하루하루 세차게 되새김질했던 말이 '아무 생각 없으면 아무것도 못 얻는다'는 것이었다. 돈과 시간과 불투명한 미래를 대가로 떠나온 여행에서도 어영부영할 수는 없었다. 멍해지는 정신을 부릅뜨고 눈과 귀와 입으로 치열하게 탐구했다. 굳어지는 다리와 늘어지는 몸에 계속해서 자극을 집어넣었다. 매일 극한까지 나를 내몰고 나서야 얼마나 나태하게 일을 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영(0)이 아니라 일(1)이 되는 게 이다지도 힘든 일이었다.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길을 걸을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심지어 무의미한 쇼츠를 볼 때에도 생각은 굴러가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겨우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갈 수 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종종 까먹으며 합리화하기 위한 단서를 찾곤 한다. 시간의 흐름을 가속화할 뿐이다.

 시간을 붙잡기 위해선 나름의 '시선'이 필요하다. 이 영화의 무엇을 위해 보는지, 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등 나만의 기준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재화'가 뒤따른다. 취득한 정보를 세웠던 기준에 맞춰 재단하고 기록해야 한다. 이것이 곧 나만의 매뉴얼이 되어 더욱 단단한 나를 만들어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시간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보자. 남들과 비교하고 동조되기 쉬운 세상이다. 조금만 검색하면 남의 생각을 엿볼 수 있기에 생각의 시간이 멈추곤 한다. 그렇게 되면 요리를 하고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나의 관점에서 시간을 붙들어 두는 것. 모든 상황에 대해 나만의 매뉴얼을 갖추는 것. 타인의 잣대에 흔들리지 않는 심지를 키우는 것. 이것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내가 취해야 할 태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직장을 그만두고 직업을 찾으려고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