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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쥬드 Jul 26. 2023

직장을 그만두고 직업을 찾으려고요

제대로 일하기 위한 무계획 퇴사 결심

이번달까지만 다니고, 퇴사하려 합니다.

네오밸류라는 부동산 개발사에서 운영하는 상업시설 '앨리웨이'의 경험을 설계하는 일을 시작한 지 3년 하고 10개월. 오프라인 공간의 경험 만들기 여정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이직처는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이직처 없는 퇴사가 두려워 지원한 서류들이 보란 듯이 떨어져 주는 바람에 원래 의도대로 '무계획'이 완성됐다.


퇴사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결심의 이유는 단 하나다. '업'에 대한 고민. 내가 계속해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무얼 위해 일하는지, 회사를 걷어내면 나를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걷잡을 수 없이 방방 떠다니던 고민들은 삶의 이정표로 삼고 있는 브랜딩 디렉터 '전우성'님의 신간 '마음을 움직이는 일'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직'장'인과 직'업'인의 차이에 대한 글이었다. 직장인은 회사의 네임밸류, 복지, 연봉 등 회사가 가지는 가치에 집중하는 사람이고 직업인은 업의 성장을 위한 도전 기회, 권한과 책임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는 것. 현재 나는 회사의 복지, 연봉, 회사 내에서의 평가 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상태였지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이 가득 찬 시간들이 점점 많아졌다. 나는 뭐가 되기 위해 일하고 있지? 여기보다 더 나은 직장에 갈 수 있을까? 나는 뭘 하는 사람이지? 그게 곧 직장이 아닌 직업에 대한 고민임을 알게 되었다.


회사 동료들에게 농담 삼아했던 말이 있다. 지금 나는 내 엉덩이 모양에 딱 맞춰진 포근한 의자에 앉아있는 기분이라고. 기분 좋게 엉덩이를 감싸주는 의자는 심지어 뜨끈한 온열 기능까지 있는 상태다. 그렇기에 일어나기가 힘들뿐더러 일어날 필요도 없는 것. 문제는 그 자리가 영원히 지속되느냐에 있다. 결국 뜨끈하게 데워진 내 자리는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어질 것이다. 종점에 도착한 지하철에서 나오는 퇴장 방송을 듣고 헐레벌떡 일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무계획 퇴사를 결심했다. 이 마음 상태로 이직했다간 그곳이라고 뭐가 다를까 싶었다. 물론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선배들은 각자의 경험에 빗대어 극구 말리기도 했다. 월급 끊기는 거 생각보다 힘들다, 미래에 대한 고민? 좋지만 직장 그만둔다고 생각대로 되진 않는다, 재취업이 6개월이고 1년이고 늦어질수록 연봉 협상력을 잃어갈 것이다 등등.. 다 맞는 말이라 딱히 반박할 거리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냥 저질러보고 싶어요'라고 말했고, 돌아오는 대답은 '너 사춘기 왔냐?' 였을 뿐이었다.


어쩌면 사춘기가 맞을지도 모른다. 인생을 돌이켜보면 지독하게도 안전하게 살아왔다. 승부욕이 투철하고 모든 걸 잘하는 형 밑에서 나는 승부를 배려하는 심성을 무기로 길러냈다. 공부는 물론이고 운동, 노래 등 다방면에서 뛰어난 형이 유일하게 못하는 미술을 즐겨했다. 나만의 생존 방식이었으리라. 중학생까지 곧잘 나오던 성적이 고등학교에서 끝도 모른 채 곤두박질칠 때, 엄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보지 않을래?라고 조언해 줄 수 있는 큰 어른이었다. 그 덕에 삶에서 큰 도전이나 그로 인한 패배의 경험은 내 인생에서 찾기는 힘들었다.


최근 모빌스 그룹의 '대오'님이 퇴사를 하면서 본인의 회사를 차렸다. 쌍둥이가 태어나면서 구체적인 삶의 목표가 생겼다는 게 이유였다. 스프링이 튀어 오르듯 사업을 빠르게 준비하면서 그 과정들을 영상으로 남겼다. 영상을 보는데 심장이 뛰다가도 문득문득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여전히 같은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뭘 하는 사람이지? 뭘 잘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저렇게 열정적일 수 있지?

대오님은 향후 5년간 100억을 벌어서 가족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날 거라 했다. 버스를 개조해 세상을 떠돌아다닌 '빼빼 가족'처럼 자신도 자기 아이들에게 '자립을 도와줄 경험이 만들어내는 용기'를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나에게도 그런 경험들이 필요했다.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지금 퇴사를 결심했다. 무계획적 퇴사이지만 향후 직장에 대해서만 무계획인 상황이다. 나열해 보건대 해야 할 일은 너무나도 많았다. 비어 가는 통장 잔고를 보면서 두려움에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곳에 스스로 할 일을 각인시켜놓으려고 한다.


퇴사 후 진행할 프로젝트  

유럽 여행

퇴사 후 여행은 어찌 보면 너무 뻔한 코스이긴 하지만, 나에게는 큰 도전이다. 워낙 집을 좋아하는 슈퍼 집돌이인 탓에 아시아를 떠나본 적이 없다. 퇴사를 결심하게 되면서 장기간, 그것도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순간이 인생에 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한 달간의 여행을 결심했고, 행선지는 유럽으로 잡았다. 타지에서 만나는 여러 경험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싶다.

나의 일에 대한 기록

결국 내가 업으로 삼고 싶은 건 '브랜딩'이다. 하나 이 분야가 요구하는 능력은 무엇인지 정의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필요한 건 스스로를 계속 증명하고 입증하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브랜딩'은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것에 맞춰 내가 해온 일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책 발간

나와 아내는 독특한 결혼식을 기획하고 실행하고 있다.  이른바 이해관계가 맞는 소규모 그룹 간의 초소형 결혼식(예를 들자면 나의 중학교 친구들만 불러 모은 결혼식. 우리 내외를 포함하여 6명이서 결혼식을 올렸었다)을 여러 번 한 것인데, 1년 동안 총 10번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 시작과 과정 속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다.

누쿠 브랜딩과 두 번째 펀딩

아버지는 40년 넘게 가죽옷을 일본에 수출하는 일을 해오고 계신다. 아직까지도. 그 이야기가 아까워 '누쿠(nucu)'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와디즈 펀딩을 진행해 본 적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결국엔 '브랜딩'이기에 내가 해온 일을 나의 기준에 맞춰 정리하는 게 1번이고, 이를 실제로 실행해 보는 것이 2번이라 생각 든다. 하나의 프로젝트로서 누구의 브랜딩을 정의하고, 그에 맞는 두 번째 제품을 펀딩 해보려 한다.


어떻게 해도 후회할 결정이라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은 쪽으로 선택하는 것이 맞다. 결국 선택은 내가 하는 것이고, 나는 그 선택이 최선이 되도록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삶은 수많은 선택이 쌓여서 흘러가는 것이라 했던가.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를 이겨내는 경험을 쌓고 싶다. 뜨끈한 의자가 아니라 등받이 없는 스툴에 있어도 거기 앉아있는 내 자세가 올곧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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