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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쥬드 Jul 08. 2023

갈매기는 배우, 바다는 연극

'원스테이지 : 갈매기&죽음의배' 연극 후기

왜 두개의 연극은 하나의 무대를 공유하게 되었나? 원스테이지 공연 기획을 보았을 때 들었던 의문이다. 갈매기는 한태숙 예술 감독의 창작극, 죽음의 배는 고전 소설이자 영화였던 동명의 작품. 접점이 없어보이는 두 작품은 관객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자 하나의 무대에서 펼쳐지게 되었는가.


처음 봤을 때는 사실 아쉬움이 더 컸다. 하나의 무대와 공연 시간을 두 극이 나눠 사용하기에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제약들이 단점으로 와닿았다. 갈매기는 김성녀 배우가 끌어가는 서사가 뚜렷했기에 영향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죽음의 배는 러닝타임 내에 보여줘야 하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그래서인지 무대를 다분할하여 동시에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맞물리는 상황 속에서 눈둘 곳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전개와 공간 전환이 빠르게 흘러 관객이 상상하며 쫓아가기에 어려움도 있었다. 자연스레 러닝 타임이 2시간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허나 막이 내리고 곱씹어보니, 두개의 극이 주는 묘한 연결고리가 왜 ‘원 스테이지’ 여야만 했는지 설명해주었다.

갈매기. 작/연출 한태숙.

두 극은 모두 ‘도둑질‘을 통해 시작된다. 갈매기는 알을 빼앗기고 필립은 선원증을 잃는다. 삶의 이유이자 존재 자체를 잃어버린 둘은 그럼에도 여전히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

갈매기는 배우이고 바다는 연극이다. 갈매기 극에서마지막 성녀의 날개짓을 통해 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어서 상영되는 죽음의 배는 앞선 갈매기의 영향을 이어받는다. 선원증을 잃어 신분 불분명자가 된 필립의 고군분투기는 연극을 위해 온몸 불사지르는 배우의 모습 같았다. 필립은 배우이고 요리케 호는 극단이자 바다는 연극이었다. 결국 갈매기와 선원 모두 떠나지 못한채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죽음의 배. 작 비트레벤. 연출 임지민.

두 극은 모두 한명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갈매기에서 '성녀'는 나이듦에서 오는 무력함을, 죽음의 배에서 '필립'은 젊음에서 오는 우유부단함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표현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데 갈매기는 주인공이 직접 화자가 되어 스토리를 직접 읊어주는 방식이고, 죽음의 배는 주인공의 삶을 몸으로 직접 보여준다.(극이 끝나고 전부 젖어버린 필립의 옷을 보면, 그는 연기를 했다기보다 직접 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극을 이끄는 노련한 원로배우와 패기넘치는 젊은 배우의 방식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결국 원스테이지는 연극을 위한 연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가장 먼저 만들어낸 예술 ‘연극’. 왜 인간은 연극을 보러오고, 배우가 되며, 끔찍이 힘들어도 떠날 수 없는지를 두개의 이야기를 통해 전달한다. 극을 이끄는 두 주연, 70대의 배우와 20대의 배우의 입과 몸을 빌려서.


좋은 극들이 모두 그러하지만, 원스테이지는 특히나 여러번 볼 때 빛을 발한다. 김성녀 배우의 주옥같은 대사들(불에 타면 남는게 없지. 물이 들면 적어도 흔적은 남지만)과 갈매기 역의 배우들이 저마다 챙기는 디테일 요소들은 한번으로 눈에 담기엔 아쉽다.

죽음의 배 위에서 펼쳐지는 드라마는 각 캐릭터를 해석해보는데 재미가 있다. 동시에 펼쳐져 놓치기 쉬웠던 각자의 삶들은 거기 그대로 살아있다.


원스테이지는 연극인을 위한 연극이 맞다. 아니, 연극인이 더욱 몰입해서 볼 수 있는 극이 맞다. 그러나 그런 연극인들을 애정하고 동경하는 관객이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이런 시도와 결합은 도립이기에 가능한 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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