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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쥬드 Jan 31. 2024

편지와 같은 책

김종완 작가의 '분말이 다 녹지 않은 물잔의 밑바닥'을 읽고

우연히 찾아와 선물처럼 느껴지는 그런 책들이 있다. 이 책이 그랬다.

책장에서 발견된 이 책은 도통 구매했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내도 모른다고 한다. 누군가 몰래 두고 간 편지처럼, 책장에서 조용히 읽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얇은 두께에 투박한 마감 방식은 작가가 직접 만든 느낌이 났다. 출판사도, 작가의 이름도 쓰이지 않은 표지에는 살짝 얹어진 듯한 제목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분말이 다 녹지 않은 물잔의 밑바닥. 제목에서부터 작가의 서정적인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짧은 여러개의 글로 엮어진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한 페이지를 넘어가지 않는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자그마한 크기의 누군가의 일기와 같은 메모장을 훔쳐보는 기분이 든다. 마치 시집을 읽듯 말 맛을 다시며 읽었다. 그럼에도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아마도).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런 글귀가 써져 있었다.

"이 편지에는 답장을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맙소사, 정말로 누군가 두고 간 편지였나 보다.

책을 내려 놓고 작가의 인스타를 기웃,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 쓴 책들을 기웃.

어떤 삶을 살면 사람의 습성을 이해하고 글로 옮길 수 있게 될까 궁금해졌다. 이토록 짧은 글을 보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만나곤, 글의 길이가 깊이를 대변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도 짧게 신은 양말을 어디다 두어야 하는지 모르는 삶을 살고 있지만, 작가님 말처럼 분명 조금씩 변하고 있는 중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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