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우리 사회는 유독 음주에 관대하다. 술을 마시고 저지르는 반사회적 행동을 그저 실수로 치부하는가하면, 명백한 범죄행위마저 술에 취해있었다는 이유로 처벌의 수위가 감경되곤 한다. 음주로 인해 발생하는 가장 빈번하고도 위험한 범죄가 바로 음주운전이다. ‘음주운전은 살인미수’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음주운전이 명백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 결과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다. 지금까지 음주운전을 하고도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들이 있다면 부디 ‘운이 좋았다’라는 생각은 하지 않기를 바란다. 행운의 신이 결코 악행을 저지르는 자를 가호했을 리가 없다. 그저 당신 곁을 스쳐지나간 죽음의 신이, 단 한번 신으로서의 관용을 베푼 것이라 여기길 바란다.
저녁 무렵 젊은 남성으로부터 교통사고 신고가 접수되었다. 남성은 좁은 골목길에서 직진 중이었는데, 앞 차량에 타고 있던 여성 운전자가 후진을 하여 사고를 낸 후 발뺌을 하고 있다고 했다. 가벼운 접촉사고라 다친 사람은 없고, 경찰관이 와서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고 했다.
현장에 도착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상대방은 운전이 미숙한 중년 여성으로 길을 잘못 들어 후진을 했는데 사고가 난 느낌은 없었다고 했다. 양측 차량들은 외관상 충격 흔적은 없었다. 동료 경찰관이 블랙박스를 확인하는 동안 나는 운전자들의 면허증을 확인했다.
“아줌마! 사고를 내고 왜 발뺌을 해요! 이 차 수리비가 얼마인지나 아세요?”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남성의 차량은 엠블럼만 봐도 누구나 아는 고급 외제 차였다. 여성은 아들뻘 되는 남성의 으름장 앞에서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심적으로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우리에게는 남성의 태도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한 따위는 없었다. 객관적 사실을 확인하고 법적 조취를 취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해 있는 시대는 법 위에 도리가 자리할 수 있는 낭만의 시대가 아님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블랙박스 확인했습니다. 느끼지 못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충격이 있긴 했네요.”
동료 경찰관이 블랙박스 확인을 마쳤다. 일단 신고 내용에 대한 진위여부 확인은 끝난 셈이었다. 여성은 후방카메라가 없어 몰랐다며 남성에게 거듭 사과하며 보험처리를 약속했다.
“아 진짜! 운전을 못하면 차를 끌고 나오지 마시던가. 아줌마, 나 이제 성인이라 사실 면허 딴 지도 몇 달 안됐는데 아줌마처럼은 운전 안 해요.”
남성은 자신이 ‘갑’이라는 확신이 들자 언행에 거침이 없었다. 특히 말끝마다 자신이 어엿한 성인임을 강조했다. 굳이 언급할 필요없는 그 단어가 묘하게 귀에 맴돌았다. 아마도 이런 상황에서 기죽지 않고 보호자 없이도 스스로 문제를 처리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 또는 자신이 정당한 사회 권리의 주체임을 우리와 상대방에게 은연중에 내비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남성의 ‘이유 있는 자신감’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법을 다루는 경찰관도 사람인지라 동방예의지국에서 기본적인 예의와 도덕적 상식이 법 아래 자리하는 이 상황을 묵묵히 지켜보기란 여간 껄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불필요한 언쟁을 마무리하고 신속하게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자, 그럼 사고 사실이 확인되었으니 저희는 이제 음주감지만 하고 가보겠습니다.”
“네…? 아니, 갑자기 음주감지를 왜 해요?”
일순간 현장의 공기가 바뀌었다. 계속해서 큰 소리를 치던 남성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경찰에 직접 신고를 한 교통사고 피해자가 사고처리에 있어 당연한 절차에 이토록 과민하게 반응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함께 있던 동료 경찰관도 순식간에 바뀐 남성의 태도를 보며 눈빛이 달라졌다.
“저희가 교통사고 신고를 접수하면 면허증을 확인하고 음주감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절차입니다.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협조해주십시오.”
“아니 그러니까, 그건 알겠는데, 내가 피해자인데 날 왜 감지 하냐고요. 저 아줌마나 해요.”
“두 분 다 감지하겠습니다. 여기 감지기를 보시면 초록불이 보이시죠? 불어 보신 후 색깔이 노란색이나 빨간색으로 바뀔 경우…….”
“아니, 씨발! 아… 좆나 열 받네 진짜! 내가 피해자인데 날 왜 감지 하냐고!”
예상치 못했던 남성의 급발진에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이제 음주감지는 해야 하는 절차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차가 되었다.
“선생님, 진정하시고요. 혹시 술 마시고 운전하셨나요?”
이럴 땐 정공법이 나을 때가 있다. 그가 무슨 대답을 하던 바뀔 건 없지만.
“진짜 소주 딱 한 잔 마셨어요. 왜요? 그것도 안 돼요? 저 성인이에요! 면허증 보셨잖아요!”
“술을 마실 수 있는 성인이라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술 마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30분? 아 근데 이거 제가 신고 안 했으면 모르는 거 아니에요? 그냥 신고 취소할게요.”
남성은 다시금 당당한 모습을 되찾았다. 대한민국 성인으로서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췄다. 하지만 그가 보여주고 싶어 하는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성인의 모습과는 달리, 우리는 그에게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신고 취소 할테니 그냥 없던 일로 해주세요. 그리고 어차피 이거 엄마 차니까 신고 취소 안 되면 엄마한테 얘기해서 처리할게요. 됐죠? 가세요 이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아이의 입에서는 결국 ‘엄마’ 라는 단어가 나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연신 어딘가로 휴대폰 메시지를 보내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을. 그런 그의 모습에 측은지심이 생겼던 걸까. 나는 그를 진정시키고자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일단 음주감지 하겠습니다. 소주 한 잔 드셨다고 했으니 너무 겁먹지 마시고…….”
“아, 이거 놔요! 겁 안 먹었거든요? 그냥 짜증나서 그래요! 불거니까 잠깐 기다려 봐요!"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처리할 수 있는 대한민국 성인인 자신을 어린아이 취급해서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애써 강한 척하는 겉모습 때문인지 남성이 느끼는 내면의 불안감이 여실히 드러났다. 우리는 남성이 진정하도록 시간을 주는 사이 여성에게 먼저 음주감지를 요청했다.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고, 뒤이어 남성을 감지했다.
[삐- 이- 이-]
예상했던 대로 음주감지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려댔다. 그와 동시에 남성은 음식점 앞에 세워져 있는 라바콘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던 풍선은 결국 터져버렸고, 밖으로 새어나온 불안함은 곧 분노로 바뀌어 주변을 에워쌌다.
“아, 씨발 진짜! 내가 교통사고 피해자이고 신고자인데 왜 나를 음주측정을 하냐고!”
남성은 제 분에 못 이겨 꽉 움켜쥔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물까지 글썽였다. 흥분한 남성의 모습과 달리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해야 할 일을 이어나갔다.
“현재 시간 23시 정각입니다. 1차 음주측정 시작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왜 측정을 하냐고! 안 한다고! 감지기 불라고 해서 불었으면 됐잖아요!”
남성의 의지와 달리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쉬지 않고 고함을 지르고 욕설을 하던 남성은 세 번의 음주측정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그를 음주측정 거부 현행범으로 체포했고, 그는 순찰차에서부터 지구대에 도착해서까지 쉬지 않고 고성과 욕설을 퍼부어댔다. 이와 같은 상황과 모습들이 우리에게 낯선 것은 아니었지만, 남성의 경우에는 그 느낌인 사뭇 달랐다. 나뿐만 아니라 동료 경찰관들도 그에게서 생떼를 쓰는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지친 아이는 ‘생떼 부리기’ 작전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갑자기 ‘착한 아이’ 컨셉으로 동정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지금 다시 불어 보면 안 돼요? 이제 제대로 불게요.”
“수차례 음주측정 거부 행위와 결과에 대해서는 말씀드렸습니다. 더 이상 기회는 없습니다.”
“아… 제발 한 번 만요! 네? 딱 한 번만 봐주세요. 지금 바로 불게요. 네? 아… 제발요!”
문득 궁금했다. 남성은 상황판단을 못할 만큼 술에 취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술을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기에 측정 수치 또한 미달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통상 음주 측정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이전에 음주운전으로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가 많다. 조회 결과 남성은 음주운전 초범이었다. 그런데 왜 그토록 강하게 측정을 거부했던 걸까.
“그런데, 이렇게 후회하실 거면서 왜 아까 측정에 응하지 않으셨나요?”
나는 서류를 작성하며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남성에게 물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그게… 인터넷에서 본건데 음주운전 하다가 경찰한테 걸리면 최대한 버티라고 해서요……. 음주 측정 거부 같은 거…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고요.”
“저희가 음주측정 거부에 대해 현장에서 여러 차례 설명과 기회를 드렸는데요?”
“그거 그냥 겁주는 말인 줄 알았어요…….”
그의 대답을 듣고 더는 해줄 말이 없었다. 그는 나의 조언 따위가 없어도 스스로 모든 것을 알아서 잘 처리할 수 있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성인이었으니까.
[형법 제16조]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아니한다.
그는 스스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성인이 되어 술을 마실 수 있는 자유, 운전을 할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내 뜻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 어릴 때와 달리 성인이 된 후에 누리는 모든 자유에는 항상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부디 그가 당시의 사건으로 경각심을 갖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올바르고 당당한 대한민국의 성인이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