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펜을, 아니 키보드를 잡았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들어와 보았다. 새롭게 바뀐 것 없는 UI가 익숙하기는커녕오히려 낯설게 느껴졌다. 그만큼 오랜 시간 이곳을 떠나 있었다. 물론 남모르게 그 사이 다녀간 적은 있었다. 첫눈에 반한 양반가 소녀를 훔쳐보려담벼락 밖에서 까치발을 들고 기웃거리는소년처럼, 가까이 다가갈 용기는 없으면서 늘 주변을 맴돌곤 했다.
사실 수차례 다시 글을 쓰고자 마음먹곤 했었다. 처음에는 하루에도 몇 번, 그 후에는 일주일에 몇 번, 결국 한 달에 고작 몇 번 하는 생각으로 바뀌더니 어느덧 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한동안 삶에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했던, 좋아했던, 즐거웠던 일. 그것이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쉬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에 설치된 브런치 앱에서는 늘 알람이 울렸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새로운 글이 올라왔고, 오랜 시간 연재가 없음에도 꾸준히 소중한 구독자분들이 늘어갔다. 그때 알았다. 꿈이라고 생각한건그저 나 혼자였고, 모든 건 결코 꿈이 아닌 즐거운 현실로 언제나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라고, 그저 나만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었다.
물론 아예 글쓰기를 놓아버린 것은 아니었다. 몇 년간 쓰고 있던 경찰 에세이를 꾸준히 다듬고 써왔지만 선뜻 브런치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두려움까지는 아니었지만, 분명 표현하기 힘든 망설임이 있었다. 전에는 글을 쓰고 브런치에 공개하는 그 시간이 가장 설레는 순간이었다. 몸이 피곤한 날도, 브런치에 글을 쓰고 스스로 이를 다시 읽어보는 그 순간이 좋았다. 자기 글을 혼자 쓰고 읽어볼 거면 누군가는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과 컴퓨터 워딩 프로그램에 쓰는 게 무슨 차이냐고 충분히 반문할 여지가 있다. 글쎄? 아마 어떤 이유를 붙여도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을지도. 하지만 여기 이 공간에 있는 브런치 작가분들은 내 말에 공감할것이다. 뭐, 굳이 차이라면 내가 쓴 글을 다시 볼 때 깜박이는 커서를 안 봐도 된다는 점? 사실 개인 컴퓨터에 저장해두는 글이 아닌, 브런치에 공개적인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글'로써 소통이 가능한 가장 순수한 공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된 인연과의 소통 덕분이었다. 그 사람은, 아니 그분은 내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어느 순간부터, 그리고 줄곧, 심지어 글을 쓰지 않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말이다. 그분은 언젠가 내게 나의 '팬'이라고 하셨지만, 그 호칭이 내게는 심히 과분하다. 그리고 그분은 더 이상 나의 독자가 아닌, 엄연한 브런치 작가로서 지금은 오히려 내가 그분의 팬이 되어있다. 하지만 그분이 내게 주신 애정이나 관심만큼, 나는 그분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늘 죄송스럽고 감사하다. 사실 그분에 대한 이야기로 한 번쯤 글을 쓸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각설할까 한다. 핵심은, 내가 이렇게 다시 글을 쓰고 있는 건, 모두 그분 덕분이다.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가 아닌, 그분이 곧 다시 글을 쓸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자 이유 그 자체다.
그렇게 다시 글을 쓴다. 물론 꾸준히 다듬고 있는 경찰 에세이도 이어갈 예정이다. 다만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 그만큼 스스로 용기가 필요한, 쉽지 않은 작업이다. 그래도 뭔가 좋은 글, 더 나은 글, 완성된 글을 쓰겠다는 부담감을 떨쳐버리고 그냥 일단 쓰고 싶은 대로 다시 글을 써보려고 한다. 좋아해야 자주 할 수 있고, 자주해야 좋아지며, 좋아하고 자주해야 잘할 수 있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여전히 그곳이 변함이 없다는 것, 그리고 언제든지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