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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Jan 22. 2021

본능이 누르는 번호, 112 (下)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본능이 누르는 번호, 112 (下)

※ 본편은 분량이 많아 두 편으로 나누어 게재합니다.




    늦은 밤 112 순찰차를 타고 근무를 하던 중 신고 지령이 내려왔다. 


    [한 밤중에 아이가 갑자기 복통을 호소한다]


    신고 내용 상 119 구급대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112 신고 접수 당시 이미 공동대응 요청이 되어 있었다. 현장에는 119 구급대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 보니 거실에는 5살 남짓으로 보이는 어린 남자아이가 배를 움켜잡은 채 울고 있었고, 신고자인 아이의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애타게 아이의 이름만 연신 외치고 있었다. 우리는 일단 흥분 상태의 신고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건넸다.


    "어머니, 진정하시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지금 119가 오고 있습니다."


    "아니, 애가 죽으려고 하는데 뭘 기다려요! 빨리 어떻게 좀 해봐요!"


    "만약 119 구급대 도착이 지체되면 저희가 순찰차를 이용하여 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병원을 언제 가요! 가다가 무슨 일 생기면 책임질 거예요? 빨리 여기서 어떻게 해보라고요 좀!"


    "죄송하지만 저희 경찰관이 응급처치를 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112에 신고했을 때 저희가 119에도 함께 출동 요청을 해 두었으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곧 119 구급대가 도착할 겁니다."


    "제발 빨리 어떻게 해보라고요 좀! 당신들 경찰 아냐? 아무것도 못할 거면 왜 왔는데!"


    우리 일을 하다 보면 꽤나 빈번하게 흥분 상태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곤 한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상황들은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고 실체를 들여다 보고 나면 그리 흥분한 일들도 아닌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경우는 예외였다.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를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부모의 심정, 부모로서는 결코 이성적인 판단이나 언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신고자의 반응은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하지만 사실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복통을 호소하며 울고 있는 아이, 그 아이를 바라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어머니, 그리고 그들을 앞에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경찰. 우리는 그저 119가 빨리 도착하지 않아 초조한 어머니의 마음을 공감하며 함께 초조해할 뿐이었다.


    하지만 결코 그런 감정 상태를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신고자가 흥분하고 당황한 상황일수록 우리는 침착해야 한다. 112 신고를 하는 사람들은 흥분한 상태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수록 경찰관은 오히려 침착하게 응대한다. 때론 이에 대해 신고자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다며 지탄을 받기도 하지만, 이는 112 신고 응대 매뉴얼에도 나와있는 사항이다. 경찰관이 신고자의 당황한 기색에 동조하여 함께 상기된 목소리로 응대를 할 경우, 신고자의 불안감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코 신고자의 불안, 초조, 걱정, 당혹과 같은 감정이나 상황에 어설프게 동조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성적이고, 냉철하며, 침착하게 신고자를 안심시키고 신속하고 정확하게 상황을 판단하여 조치를 취하는 것이 우리의 올바른 조치이자 역할이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119가 오기 전에 어떻게든, 무엇이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신고자의 말처럼 우리는 경찰이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못할 거면 우리는 여기 왜 왔을까. 사실 그 순간 '119에 먼저 신고를 하셔야죠! 저희는 선생님 신고를 받고 왔을 뿐입니다!'라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결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말을 뱉고 말고를 떠나서 그런 생각조차 해서도 안 되는 거였지만 말이다.  '경찰관도 사람이니 그럴 수 있지.'라는 궁색한 변명은 집어치우고, 이 글을 쓰며 경솔한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자신의 아이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에게는 그저 112든 119든 이 상황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뿐이었다. 우리는 신고자를 진정시키고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며 119가 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도록 119 상황실을 재촉 신고 전화를 하며 바로 응급조치가 가능하도록 아이의 상태를 전달했다.


    물론 기본적인 응급조치 상식은 경찰관 역시 숙지해야 한다. 그리고 실제 이에 대한 교육도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필요한 장비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경찰관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응급조치는 의식을 잃고 심장박동이 멈춘 환자를 상대로 할 수 있는 CPR(심폐소생술)뿐이다. 물론 지금 이 경우는 CPR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다행히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119가 도착했다. 구급대원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체온이나 혈압을 체크한 후 아이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우리는 아이의 상태가 걱정되어 병원까지 동행했다. 아이는 급성 맹장염 증세를 보인 것이었고, 다행히 수술까지 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아이 역시 의사 선생님을 알아본 것일까. 의사 선생님이 별 다른 조치 없이 배를 몇 차례 쓰다듬어 주며 아이를 진정시키자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다. 그제야 신고자인 어머니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성을 되찾았다.


    "큰일이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우리는 신고자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고맙습니다. 저, 그리고… 아까는 제가 너무 경황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경찰분들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신고자가 고마웠다. 실제 우리는 현장에서 신고자에게 어떤 도움을 주더라도 사과나 고마움의 표시를 받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그런 인사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신고자는 도움을 주기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우리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사실 그 인사는 우릴 향한 것이 아닌, 자신의 아이가 무탈하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의 인사였을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낯설도록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신고자를 믿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내내 궁금해하던 머릿속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내고야 말았다.


    "그런데, 실례지만 그 상황에서 왜 112에 신고하셨나요? 119가 먼저 떠오르지는 않으셨나요? 아, 오해는 하지 마시고 정말 궁금해서 여쭤보는 겁니다."


    "아… 그땐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머릿속이 하얘져가지고… 어떻게든 누군가에게 도움은 받아야겠고… 그 순간 생각난 게 112였을 뿐이에요. 사실 경찰관님 말씀대로 119에 신고를 하는 게 맞는 건데……."

 

    당시 신고자의 그 한 마디는 경찰관으로서의 내 삶에 좋은 지표가 되었다. 지금도 내가 경찰관으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을 이끌어내는 한 마디였다. 또한 어떤 상황에도 선입견을 갖지 않고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위해,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되는 한 마디였다. 신고자는 119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112를 눌렀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생각난 번호가 112였던 것이다.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하는 순간에, 가장 먼저 생각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국가기관이 경찰이었던 것이다.


    그동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가장 확실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기관에 신고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이에 대한 홍보와 국민들의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느끼던 나로서는, 긍정적이며 신선한 충격이었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신고자를 위해서도, 효율적인 긴급 출동을 위해서도 상황에 맞는 기관에 최우선 적으로 신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다만, 누군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번호가 112이고 그 기관이 경찰이라면, 우리는 국민의 부름에 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능력과 범위 내에서 도움이 필요한 국민을 위하여 무엇이든지, 혹은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장 놀라는 순간에, 혹은 당황스러운 상황에 맞닥뜨리면 본능적으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찾곤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그 존재가 바로 '엄마'이고, 미국에서는 그 존재가 '신'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위급할 때, '엄마야!'를 외치고 서양인들은 'Oh, my GOD!'이나 'Jesus!'를 외치곤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고 우스갯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위급한 순간에 '아빠야!'라고 외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으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닌 것 같긴 한데……. 그런데 과연 우리가 위급한 순간에 '엄마야!'를 외치는 이유는 '엄마'라는 존재가 그 순간을 해결해줄 전지전능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위급한 순간에 항상 엄마를 찾는 이유, 그리고 이제는 그 부름이 감탄사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이유는 바로 본능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어린 시절부터 위기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가장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다. 항상 슈퍼맨, 히어로 등으로 비유되는 아빠보다 더 의지되는 그런 존재(이 글을 읽고 계신 아버지들은 다소 서운하실지 모르지만 사실이니 인정하시길)가 바로 엄마다. 실제 엄마가 그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우리는 엄마를 찾을 뿐이다. 


    어쩌면 경찰도, 그리고 112라는 전화번호 위급한 순간에 국민이 본능적으로 찾는 기관이자 본능적으로 누르는 번호가 아닐까? 실제 그 상황을 경찰이 해결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대한 판단은 차치하고 말이다. 이러한 내 생각에 대한 검증은 필요치 않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순간에 본능적으로 1,1,2 세 개의 버튼을 누를 것이고, 대한민국 경찰 또한 본능적으로 국민의 부름에 응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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