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랑이 Apr 12. 2021

만약은 없다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만약은 없다




  내가 일하는 지구대는 지역을 대표할 만큼 바쁜 곳이다. 특히 7,8월은 우리에게도 성수기다. 한여름 밤 야간 근무 중 쉴 새 없이 울리는 신고 접수 알림 소리를 듣다보면 퇴근 후 잠을 자다가도 갑자기 이 소리가 귀에 맴돌아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다. 정말 바쁜 날은 같은 팀 동료와 12시간 근무 중 딱 두 번 마주친다. 출근해서 한 번, 퇴근하며 한 번. 그렇다고 매일 밤이 바쁜 것은 아니다. 가끔 무전 소리조차 잠잠한 고요한 밤이 있다. 수갑 한 번 꺼낼 일 없는 거룩한 밤이 있다. 우리의 밤이 한가했다는 것은, 지역 주민들도 긴급하게 경찰 도움을 받을 일이 없었던 밤이라는 뜻이다. 이런 밤은 그야말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바람조차 없던 밤. 눈썹달마저 구름에 가려 유독 어두웠던 밤. 그 날 밤은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었다. 적어도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      








  새벽 2시경, 선배와 함께 순찰차를 타고 관내 유흥가 밀집지역을 순찰하고 있었다. 평소 요일과 시간을 불문한 인산인해의 거리가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한산했다. 번쩍이는 네온사인 간판들이 즐비해 있는 고요한 밤거리에는 묘한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거리 끝자락에는 영업을 마치고 불이 꺼진 식당이 있었다. 식당 앞 주차장을 지나는데 시동을 켠 채 정차해 있는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껴져 차량 번호를 조회해 보았다. 잠시 후, 조회기에서 요란한 경보음이 울렸다. 차량 소유주에게 수배가 걸려있었다.


  경찰을 만난 수배자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다. 포기와 수긍, 혹은 저항과 도주. 부디 전자의 반응이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차량 뒤쪽으로 순찰차를 정차시켜 도주로를 차단했다. 나는 운전석 쪽으로, 선배는 보조석 쪽으로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OO지구대 OOO경장입니다.”


  닫혀있는 창문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며 인기척을 드러냈지만 차량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짙은 썬팅 때문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실루엣을 보아하니 운전석과 조수석 모두 한 덩치 하는 남성 둘이 타고 있었다. 나는 닫혀있는 창문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상대가 수를 보이지 않자 점차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에 대비하고자 지원 요청을 하려는 순간, 운전석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며 드디어 한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왜요?”


  운전석에 앉아있는 남성은 인상은 조금 험악했지만 20대 초반정도로 추정되는 앳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이를 감추려는 듯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어색한 중저음 톤 목소리로 공격성이 다분한 첫마디를 내뱉었다. 손목부터 상박근까지 팔 전체를 뒤덮은 문신을 보란 듯 창문에 턱 걸치며 진부한 위압감을 조성했다. 나름대로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보려 애쓰는 남성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가가 실룩거렸다. 눈치 없이 자꾸만 위로 승천하려 하는 입 꼬리를 감추려고 짐짓 고개를 조금 떨어뜨린 채 시선을 옆으로 돌린 후 말했다.


  “신분증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아니, 이거 제 차 아니고요. 친구 차 빌려 타고 있는 건데 왜 그러는데요?”


  “제가 누구 차인지 물어봤나요?”


  순간 남성은 살짝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혼잣말로 욕설을 하며 바지춤에서 주섬주섬 지갑을 열어 신분증을 제시했다. 사실 운전석에 앉아있는 남성은 나의 관심 밖이었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남성과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나의 관심은 온전히 보조석에 앉아있는 남성에게 쏠려 있었다. 선배도 마찬가지인 눈치였다. 왜냐하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남성은 수배가 걸려있는 차량 소유주와 확연히 다른 얼굴이었다. 오히려 보조석에 앉아 말없이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남성, 그 남성이 차량 소유주와 얼핏 비슷한 인상이었다. 나는 일부러 과장되게 허리를 숙인 채 운전석에 앉은 남성의 신분증을 건네받았다. 그러면서 보조석에 앉아있는 남성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틀림없다!’


  우리가 조회기로 확인한 수배자는 보조석에 앉아 있는 남성이었다.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워 반대편에 있는 선배에게 살짝 눈짓을 보냈다. 선배도 이미 눈치를 챈 듯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마치 사냥감을 앞에 둔 맹수처럼 한 발 한 발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차량 보조석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창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실례합니다. 선생님도 잠시 신분증 확인을 해야 하니 창문 좀 내려… ….”


  그때였다. 우리가 보조석 창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이, 차량은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후진하여 바로 뒤에 주차되어 있던 순찰차를 사정없이 들이 받았다.


  ‘끼이이익! 쾅!’


  차량은 도주로 막히자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핸들을 꺾은 채 다시 앞으로 직진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보조석 손잡이를 움켜잡았다. 당연히 차량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나는 손잡이를 잡은 채 방향을 회전하는 차량에 끌려가기 시작했다.


  종종 뉴스에서 도주하는 차량에 끌려가다가 사고를 당한 안타까운 경찰관의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그때마다 궁금했다. ‘왜 끌려가면서 미리 손을 놓지 않았을까?’ 그 일을 내가 직접 겪고 나서야 알았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역시 말보다 몸으로 배우는 경험만큼 확실한 건 없다.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은 ‘놓지 않는 것’이 아니라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이 안전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순간 마치 차량 손잡이가 안전봉인 것처럼 더 세게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노를 젓다가 큰 파도를 만났을 때 재빨리 구명조끼를 입거나 바다로 뛰어들지 않고 노를 더 세게 움켜쥐는 현상과 같은 것이었다.


  다행히 내 악력은 의지만큼 강하지 않았다. 금세 손잡이를 놓치고 아스팔트 바닥에 몇 바퀴를 나뒹굴었다. 차량은 굉음을 내며 좁은 골목길 사이를 비집고 도주하였고, 멀어져 가는 차량의 배기음과 차량 바퀴의 고무 탄내가 거리 위에 진동했다. 재빨리 몸을 일으켜 순찰차에 올라탔다. 극도의 긴장과 흥분 상태에서 뿜어져 나온 아드레날린 때문인지 어디를 다쳤고 어디가 아픈지조차 느낄 수 없었다. 급히 순찰차로 추격했지만 차량은 이미 대로로 빠져나가 행방이 묘연했다. 정신을 추스르고 다급하게 긴급 무전 수배를 요청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도주했던 피의자들과 차량 소유주인 수배자까지 모두 검거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날 아침, 야간근무를 마치고 따뜻한 물로 샤워까지 했지만 쉬이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이 아픈 것보다 정신적 충격이 상당했다. 경험이 부족한 신임 경찰관이었던 나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아무리 수배자라 한들, 순찰차를 들이받고 제복을 입은 경찰관을 차에 매달고 달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녹초가 된 몸은 침대에 눕혀놓았지만, 요동치는 심장과 복잡한 머리는 여전히 현장에 남아 있었다.  

  ‘만약 그때 차량 손잡이를 계속 잡고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만약 그때 차량 앞이나 뒤에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을까?’


  ‘만약 그때 좁은 골목길을 지나가던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구할 수 있었을까?’


  ‘만약… ….’


  ‘만약’이라는 부정적 상황에 대한 상상은 한동안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불현 듯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곤 했다. 얼마 후 병원을 찾았다. 딱히 어딘가를 크게 다치건 아니었지만 당시 상황을 목격한 선배는 팀장님께 이를 보고하였고, 팀장님께서는 공상 처리가 가능하니 꼭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다.


  “어떻게 오셨나요?”


  의사는 나를 보지 않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만 응시한 채 물었다.


  “아… 저… 일하다가 좀 다쳐서… ….”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어디를 다치셨죠?”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서 당시의 일이 영화처럼 생생하게 재생되기 시작했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렸고, 가슴이 조여 오며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의사는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나를 의아한 듯 쳐다보았다.


  “환자분?”


  “아… 죄송합니다.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그대로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아무래도 병원을 잘못 찾아간 것 같았다. 내가 찾아간 병원은 정형외과였다. 어디를 다쳤냐는 의사의 질문에 부질없이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마음을 다쳤습니다… ….’       








  꽤나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 있다.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이자 작가인 남궁인 씨가 쓴 ≪만약은 없다≫라는 책이다. 매일같이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응급실에서 고군분투하는 의사의 이야기다. 저자의 책 제목처럼, 그의 삶에도 만약은 없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환자를 살리기 위해, 그는 늘 ‘만약’이라는 가정 없이 항상 자로 잰 듯 정확하고 신속하게 일한다. 그는 사람의 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는 의사이기에, 기적을 바라기보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당신의 위치와 본분에서 최선을 다했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역시 만약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겪는 일에는 항상 수많은 ‘만약’이란 상황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긍정적 필연에 도달하기 위해, 수많은 부정적 우연들에 맞선다.



  매년 수많은 경찰관들이 현장에서 순직한다. 높은 건물에서 추락하려 하는 자살기도자를 막으려다가, 화재가 난 건물에 갇힌 사람이나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흉기를 들고 타인을 헤치려는 범인을 제압하다가… …. 언론에서는 이와 같은 경찰관의 순직을 ‘숭고한 희생’이라며 애도한다. 하지만 때로는 경찰관의 희생이 ‘안타까운 죽음’이 되는 경우도 있다. 술을 마시고 도주하는 음주운전 차량에 의해, 술김에 저지른 무차별한 폭력과 흉기 난동에 의해, 그리고 사회 곳곳에 만연한 극단적인 이기심과 편협한 사고방식이 잉태한 사회적 부조리에 의해… ….


  동료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할 때마다 생각에 잠기곤 한다. ‘만약 그가 음주운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가 뛰어내리려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의 손에 흉기가 들려있지 않았더라면, 만약… ….’ 그리고 도달하는 결론에는 언제나 그렇듯 만약은 없다. 소중한 삶과 숭고한 희생. 한정된 권한과 무한한 책임. 이상적 치안 수준과 현실적 여건의 한계. 숭고한 희생이 아닌 억울한 죽음마저도, 직업적 숙명으로써 수용해야 하는가. 생과 사를 오가는 수많은 딜레마의 순간에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나는 한 명의 경찰관으로 살아가며 제복을 벗기 전 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굳게 닫힌 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