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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Oct 03. 2021

굳게 닫힌 문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굳게 닫힌 문



  

  이번 주제는 첫 운을 띄우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이야기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우리에게는 수많은 업무 중 하나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가슴 아픈 이야기. 자극적인 주제임에도 담담하게 풀어내야만 하는 이야기. 바로 사체(死體)에 관한 이야기, 변사 사건 이야기다.


  '사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적잖이 고민했다. 생물학적 의미의 사체라는 말은 망자(亡者)라고 쓰기도 하고, 죽은 이에게 경외심을 담아 고인(古人)이라 칭하기도 한다. 모두 같은 뜻이라고 해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른 관점이 생긴다. 결코 다루기 쉽지 않은 주제이기에, 글을 쓰는 데 있어 단어와 표현 하나하나에 신경이 곤두서 몇 번이나 퇴고를 거쳤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본다. 부디 내 부족한 글 솜씨가 사건의 의미와 본질을 흐리지 않기를 바라며.     








  뜨거운 여름이었다. 3일간 쏟아 붓던 장맛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뜨거운 햇살이 주말 아침을 밝혔다. 유난히 더운 여름이어서 비가 내려도 더위를 식혀주기는커녕 열대 우림같이 습한 기운만을 더했다. 그래도 그날 아침은 오랜만에 시원한 바람이 불었고, 기분 좋은 주간 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구대 식당에서 아침 식사가 준비됐을 무렵, 신고 출동 지령이 떨어졌다.


  [변사체 의심 신고입니다. 관할 순찰차는 신속히 출동해주십시오.]


  변사 사건에 때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평화로운 주말 아침과 동떨어진 신고 내용에 다들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당황스러운 순간도 잠시, 곧장 신고 내용을 살펴보았다.


  < 복도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 문틈에서 구더기가 나온다. >


  분명 변사 사건이었다. 도심 주택가에서 구더기가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신고자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낯선 냄새. 분명 부패중인 사체의 냄새였을 것이다. 신고자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현장은 주택 밀집 지역이었고, 신고 장소 주변에는 어르신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혹시 여기 신고하신 분 계신가요?”


  “내가 신고 했어요. 이리 좀 와 봐요. 여기서 아주 지독한 냄새가 나.”


  할머니 한 분께서 우리를 부르더니 다급한 걸음으로 어느 빌라 복도로 앞장서 들어가셨다. 밖에서는 별다른 냄새는 맡지 못했는데, 복도에 들어서자 희미하게 후각을 자극하는 강렬한 냄새가 풍겼다. 나는 이전에도 몇 차례 변사 신고를 접한 적이 있었다. 부패 정도에 따라 냄새도 조금씩 다르지만 집 안에 들어가기 전부터 이 정도로 강렬한 냄새는 처음이었다.


  함께 출동한 선배 역시 변사 사건임을 확신했다. 선배의 확신을 입증하듯 건물 3층으로 올라가니 계단에서부터 구더기 몇 마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302호 문 틈 사이로 여러 마리의 구더기들이 꾸물거리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몇 차례 문을 두드렸지만 예상대로 응답이 없었다. 강제 개방을 위해 119에 공조 요청을 하며 주변에 있던 어르신들께 여쭤보았다.


  “어르신들, 혹시 여기 누가 사는지 아세요?”


  “우리도 잘은 몰러. 여기 어느 영감 살지 않던가?”


  “맞아. 이사 온지 얼마 안됐어. 가족들인지는 모르겠는데 가끔 누가 들락날락 하드만."


  뒤이어 다른 어르신들께서도 아는 정보에 대해서 하나씩 터놓으셨다.


  “그 집이 원래 젊은 부부가 살았는데 이사 갔어. 그리고 어느 영감이 혼자 이사 왔는데, 그래도 전에는 종종 보이더니 요 근래에는 통 안보이더라고. 우리도 이야기는 안 해봤어.”


  소방관들이 도착한 후 우리는 주변 이목을 분산시키고 지체 없이 강제 개방을 요청했다. 소방관들은 문을 완전히 개방하지 않고 문틈만 벌려놓은 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들도 변사 사건임을 직감한 것이다. 우리는 문 틈 사이에 손을 넣어 있는 힘껏 문을 열었다. 그때 마주한 시취에 대한 기억은 지금도 잊지 못할 만큼 강렬했다. 강렬한 냄새가 코와 입으로 들어와 온 감각을 마비시키는 느낌이었다. 빌라 입구는 통제했지만 여전히 근처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기에 우리는 안으로 들어간 후 현관문을 다시 닫아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일단 숨을 참은 채 집 안 곳곳을 살펴보았다. 집 안은 창문 하나 열려 있지 않은 완전한 밀폐공간이었다. 시취와 함께 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가스가 집 안 곳곳에 가득 차 있었다. 현관문 사이를 통해 나오고 있던 구더기들은 집 안에 들어가자 곳곳에서 발에 밟혀 뽀드득 소리를 내며 터져나갔다. 결국 우리는 몇 분을 참지 못하고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형사들과 과학수사팀이 도착하기 전 두 눈으로 명확히 변사 사건임을 확인하고 가능하면 변사자의 인적사항도 미리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도저히 숨을 참고 수색을 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면 숨을 쉴 수밖에.


  “후우웁!”


  우리는 일단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두 번째 시도라고 결코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처음 겪어보는 느낌이었다. 코와 입을 막았는데도 냄새가 느껴졌다. 냄새를 코로 맡은 것이 아니라, 피부와 머릿속으로 냄새가 파고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부패 가스 때문인지 눈은 따끔거렸고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현장을 보존해야 했기 때문에 밀폐되어있는 창문을 열 수도 없었다. 우리는 구더기들이 가장 많이 기어 나오고 있는 방문을 열었다.


  “우웁!”


  이번에는 시각적 충격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듯 몇 차례 사체를 본 경험은 있지만 이 정도로 부패한 사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연령과 성별조차 파악하기 힘든, 아니 오히려 사람이라고 보기조차 어려운 변사자는 상의를 탈의한 채 침대에 정자세로 누워 사망해 있었다. 배는 만삭의 임산부만큼 부풀어 올라 일부 살점들은 흘러내리고 있었고, 얼굴은 불에 타버린 것처럼 새까맣게 변해 있었으며, 눈, 코, 입에서는 끊임없이 구더기가 꾸물거리며 기어 나오고 있었다. 우리는 명확히 변사 사건임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현장에서 나와 사건을 인계했다.


  형사들과 과학수사팀이 도착했고 현장 감식을 시작했다. 명확한 사인에 대해서는 부검이 필요하였으나, 잠정적으로 고독사(孤獨死)로 초점이 기울었다. 지구대로 돌아오는 내내 몸에 밴 시취가 가시질 않았다. 지구대에 도착하여 수차례 섬유탈취제를 뿌리고 나자 주변 사람들은 오히려 머리가 아플 정도로 향기가 난다고 했다. 하지만 나와 선배는 그날 퇴근 때까지 지독한 시취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우리는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로 겉으로는 별다른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아침을 걸러 배가 고프다며 태연하게 점심 식사까지 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처음으로 겪은 지독한 부패 사체의 트라우마는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며칠 동안이나 당시에 맡았던 시취가 어디선가 불쑥불쑥 올라왔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그때 경험한 냄새는 후각이 아닌 머릿속에서 퍼지는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당시 보았던 사체가 보였다. 나는 남들에 비해 딱히 비위가 약한 편이 아니다. 하지만 당시의 강렬했던 기억은 좀처럼 쉬이 잊히지 않았다. 며칠간 잠을 잘 못 잤더니 눈 밑이 퀭해졌고, 끼니마저 거르다 보니 양쪽 볼이 핼쑥해졌다. 이런 변화를 가장 먼저 눈치 채고 걱정을 하신 건 어머니였다.


  “일이 익숙해진 것 같더니 아직도 많이 힘드니?”


  “아니에요. 그냥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요. 괜찮아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가끔 일에 관해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고자 가볍게 이야기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차마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물론 처음에는 몸으로 느낀 자극에 시달렸던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처음 접해 본 부패한 사체의 충격적인 모습, 시각적 충격보다 강렬했던 후각적 자극… …. 그래도 오감이 느낀 트라우마는 결국 시간이 해결해주었다.


  다만, 더욱 긴 시간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대화 한 번 나눠보지 못한, 아니, 살아생전 어떤 얼굴이었는지 조차 모르는 고인에 대한 연민이었다. 누구도 고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심지어 임종 후 예정대로 진행되었어야 할 당연한 장례 기간을 훌쩍 지나버린 시간 동안 누구도 고인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당연히 이를 애도할 이도 없었을 것이다. 이토록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그의 삶은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는 분명 살아생전 우리 곁에 있었다. 인적 없는 첩첩산중에 살고 있던 사람이 아니었다. 문을 열고 한 발만 내디뎠어도, 누군가 한 번만 문을 두드려 주었어도, 분명 사람들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어떠한 이유로 그의 집 현관문은 그토록 굳게 닫혀버린 것일까. 그는 스스로 그 문을 열지 못했고, 그 문을 밖에서 열어주는 이도 없었다. 굳게 닫힌 문. 문을 열고 나와도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던 당신은 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를 그 안에 가둔 것인가. 아니면, 당신에게 조금의 온기조차 나누어 주지 못한 우리들이 당신을 그 안에 가둔 것인가. 그 문은, 누군가의 작은 두드림에도 열릴 수 있었던 문이었다. 그토록 쉽게 열릴 수 있었던 그 문이, 어째서 당신의 허락도 없이 우리의 결정에 따라 열려야만 했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런 우리의 무례함에 어째서 한 마디 항의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우리와 마주해야 했는가.


  실제로 그의 사인은 지병 혹은 생(生)을 위한 어떤 요소의 결핍 등에 따른 내인사로 기록될 것이다. 하지만 의사가 아닌, 경찰관인 내가 주관적으로 결론 내린 그의 사인은 사람의 온기에 대한 결핍이었다. 우리는 매일같이 수많은 사건을 접한다. 그리고 사건마다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는 당시에도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나는 극도로 감정이 이입된 상태에서 한 동안 꽤나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변사 사건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경찰관은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경찰이라는 직업상 당연히 마주해야 하는 일들임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불편한 상황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위험한 상황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듯, 누구나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황임에도 앞장서서 그 일을 직면하는 것 또한 우리의 사명이다. 부패된 사체를 마주하는 일, 일면식 없는 사람의 토악질을 받아주는 일, 누군가의 피에 제복이 물들어 버리는 일까지. 이 모든 일들이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고, 거창하게 표현하면 응당 마주해야 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부패한 사체를 처리하는 일이 아니다. 한 때 살아있었던 고인의 사인에 대해 밝히는 것, 고인의 죽음이 억울하거나 헛되지 않게 명명백백히 수사하는 것, 그리고 유족들에게 고인의 죽음을 알리고 위로하는 것. 이 모든 일련의 과정들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사명감이란, 사전적 의미로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하려는 마음가짐’이다. 경찰관으로서의 사명감이란,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함은 물론, 각 사건마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숙고하여 올바른 소신과 신념을 갖고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닐까.


  고인을 좀 더 일찍이 발견하여 마지막 가는 길을 편안하게 보내드리지 못한 점. 임종을 지키는 이도 없이 뜨거운 여름 날 차갑게 식어가야만 했던 길고 모진 날들 동안 고인을 찾아뵙지 못한 점. 처음으로 고인을 마주한 순간 경건한 애도를 표하지 못하고 비루한 내 육신의 고통을 참지 못해 경솔하게 행동한 점. 이 외에도 나의 미숙함으로 아직도 깨닫지 못한 모든 송구함과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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