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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Mar 06. 2022

초심의 불씨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초심의 불씨




  귀를 기울여 들음. 경청의 사전적 의미다. 경찰관의 필수 자질 중 하나인 경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덕담도 오랜 시간 들으면 잔소리로 들리기 마련이다. 하물며 주취자들의 주정, 악성민원인들의 억설, 범죄자들의 궤변을 귀 기울여 듣기란 보통의 인내심으로는 불가능하다. 단 한 명의 억울한 사람도 없도록 한다는 우리들의 다짐. 모든 경찰관들이 품어온 초심의 불꽃은 현실의 냉혹한 바람 앞에 조금씩 일렁이고 만다. 하지만 바람은 결코 불꽃을 꺼뜨리지 못한다. 불꽃을 꺼뜨리거나 다시 피어오를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은 오직 나의 의지뿐이다.     








  제법 쌀쌀한 냉기에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늦가을 밤이었다.


  [7080 라이브 카페, 여성 행패 소란 신고입니다. 관할 순찰차는 출동해주세요.]


  현장은 지하 1층에 있는 7080 단란주점이었다. 가게 안에는 여성 업주, 남성 손님, 여성 손님, 이렇게 총 3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건 개요를 묻는 우리의 질문을 완전히 무시한 채 서로에게 삿대질을 하며 ‘쫓아내라. 잡아가라.’만 반복했다. 어쩔 수 없이 사건의 맥락을 확인하기 몸싸움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운데 서서 언쟁을 ‘경청’했다.


  내용을 들어보니 여성업주가 알고 지내던 오빠(남성손님)와 언니(여성손님)를 불러 서로를 소개해주고 술을 마시는 자리였는데, 손님들끼리 서로 반말을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그런데 인적사항을 확인해보니 손님들은 서로 동갑이었다. 이들도 각자 신분증을 까면서(?) 이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럼 서로 사이좋게 악수하고 ‘반갑다 친구야!’ 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번에는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 생일이 음력인지 양력인지를 따지다가 ‘내가 오빠네, 내가 누나네’하며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로 손님들은 모두 5학년 5반이었다.


  “경찰아저씨. 우리 이제 영업 끝났어요. 이 언니 데리고 나가주세요.”


  업주는 오빠와 더 막역한 사이였는지 언니만 데리고 나가달라고 했다. 누가 먼저 반말을 했는지 잘잘못을 따져 시시비비를 가리는 건 우리의 역할이 아니었으므로 업주의 요청에 따라 여성 손님에게 퇴거를 요청했다. 그러자 여성손님은 갑자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늘 이런 현장이 가장 곤란하다. 시비는 있지만 범죄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현장, 피의자와 피해자가 불분명한 현장, 상황을 해결해야 하지만 사건에 해당하지 않아 수사를 할 수 없는 현장. 어쩔 수 없이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며 여성 손님과 의미 없는 입씨름을 반복했다. 그리고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여성 손님의 입에서 기다리던 말이 나왔다.


  “다 됐고, 내 다시는 여기 안 온다. 나 집에 갈 거니까 너네끼리 술이나 계속 처먹어라.”


  여성 손님은 그 말을 끝으로 취기가 올라왔는지 혀가 꼬이며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때를 놓치지 않고 그녀를 부축하여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여성은 더 이상 주점 안에서의 ‘행패소란자’가 아니었다. 늦은 밤 술에 취한 여성, ‘보호대상자’였다. 여성의 신분 변화에 따라 우리의 목표도 여성의 ‘자진퇴거’에서 ‘안전귀가’로 바뀌었다.


  “잘 나오셨어요. 술도 많이 드신 것 같은데 댁이 어디세요? 저희가 모셔다 드릴게요.”


  여성은 풀린 눈으로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바라보았다. 인적사항으로 확인한 여성의 주소지는 다른 지역이었고 실제 사는 곳은 알 수 없었다. 부디 여성의 입에서 집주소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눈빛을 교환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온 여성은 전혀 예상치 못한 첫마디를 뱉었다.


  “아들!”


  “저기… 선생님? 저 경찰관입니다. 댁이 어디세요. 저희가 모셔다 드릴 테니 차에 타시죠.”


  “아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억울해서 그래… 내가 억울해서… 끄흐흑.”


  나는 평소에 그다지 촉이 뛰어난 편이 아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상황에서 불길한 예감은 백발백중 들어맞는지 모르겠다.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거란 내 예상이 적중했다. 그때부터 여성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넋두리를 시작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또 다시 시간에 기대에 여성의 술주정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는 지치지 않고 귀가를 종용했다.


  “자, 선생님. 일단 댁에 가면서 이야기하시죠. 어디 사세요?”


  “우리집 OO동인데 집에 가봤자 아무도 없어. 아들이 내 얘기 좀 들어줘. 나 너무 억울해!”


  나는 후배에게 차키를 건넸다. 일단 OO동을 목적지로 하여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여성의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이었다. 후배도 내 의중을 파악했는지 곧장 순찰차에 시동을 걸었다. 가까스로 여성을 순찰차에 태우고 그때부터 여성과 나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갖고 대화를 이어갔다.


  “아들… 나 가슴이 너무 아파 정말. 이렇게는 못살겠어. 나 그냥 죽어버릴까?”


  “에이, 그런 나약한 말씀 하지마세요. 근데 선생님 OO동 어디 사세요? 아파트? 빌라?”


  “나 빌라 살아. 엄청 작은데 나 혼자 사니까 괜찮아. 근데 아들, 나 억울해서 어떻게 해?”


  “지금 당장 억울하실지 몰라도 시간 지나면 괜찮아지실 거예요. 근데 빌라 이름이 뭔가요?”


  이것을 대화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여성이 말하는 그 억울함의 실체가 궁금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물어보는 것이 두려웠다. ‘뭐가 그리 억울하세요?’라고 묻는 순간, 야간 근무 내내 이 신고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성이 말하는 억울함의 실체 따위는 없으며, 그저 술주정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치부해버렸다. 내 목적은 그저 여성의 장단에 맞추어 적당히 호응을 해주며 집 주소를 알아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는 말처럼 쉽지 않았다. 내가 몇 번의 호응을 해주고 나면 그제야 여성은 집으로 가는 작은 단서 하나를 건네줄 뿐이었다. 점점 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순찰차로 같은 골목을 몇 차례나 하염없이 뱅뱅 돌고 있는 후배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우… 선생님. 저희 지금 1시간이 넘게 이러고 있어요. 어서 집 주소 좀 말씀해보세요.”


  “아니 아들… 왜 그래… 아들이 엄마 이야기 좀 들어주면 안 될까?”


  “저 선생님 아들 아니고 경찰관입니다. 그리고 저희 다른 신고도 나가봐야 해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같은 팀 동료들은 우리 조에게 현장 종결이 지연되는 이유를 묻지 않고 묵묵히 우리 관할에 접수되는 추가 신고들을 출동하고 있었다. 여성과 의미 없는 대화가 계속되는 와중에 간간히 무전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제 우리도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며 끝끝내 취기를 핑계로 생떼를 부리는 여성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아들, 엄마 원래 이러지 않아… 엄마가 오늘 왜 술을 많이 먹었냐면… ….”


  “선생님! 이제 좀 적당히 하세요! 지금 당장 집 주소 말씀하지 않으시면 저희 돌아갑니다!”


  결국 터지고 말았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운전을 하고 있던 후배도 나의 갑작스런 고성에 놀랐는지 순찰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잠시 후 여성은 나지막이 말했다.


  “OO빌라… 여기 바로 앞이야.”


  마침 순찰차가 정차한 곳이 목적지였다. 나는 차에서 내려 신경질적으로 뒷문을 열고 말했다.


  “자, 다 왔으니 이제 내리세요! 억지 그만부리시고 빨리 들어가세요.”


  언행에 친절함 따위는 없었다. 보호대상자의 안전한 귀가조치라는 명분만 지키고 있을 뿐, 누가 보아도 거칠고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그걸 알면서도 너무 지쳐버려 친절을 베풀 기력이 없었다. 후배 역시 나와 같은 상태였는지 운전석에서 내려 여성을 향해 다그쳤다. 얼마 후 그녀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손을 꼭 붙잡고 말했다.


  “저기… ….”


  “아, 이제 됐어요! 그만 하세요 좀! 더 들을 말도 없고 할 말도 없으니 어서 들어가세요!”


  그리고 곧장 순찰차에 올라타 재빨리 골목을 벗어났다. 다행히 밀린 신고는 없었다. 분명 우리 신고 처리는 그렇게 끝이 났는데 왠지 모를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여성이 집에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순찰차로 골목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보았다. 여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성의 집 앞에 순찰차를 정차하고 있는데 누군가 순찰차 보조석 창문을 노크했다. 그녀였다.


  “아니, 선생님! 저희가 혹시나 해서 걱정 되서 와 본건데 아직도 여기 계시면… ….”


  “이거 .”


  내가 다급히 차에서 내리자 여성은 집 앞 편의점에서 사 온 따뜻하게 데워진 캔 커피 두 개를 우리에게 건넸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아까… 집에 오던 길에 큰 대로 있죠? 몇 년 전에 우리 아들이 거기서 죽었어요. 대학생이었는데 집에 오는 길에 버스에 치여서 그만… 아들이… 하나뿐인 우리 아들이… ….”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몸이 굳어버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배운 적도, 경험한 적도 없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천천히 고개를 든 여성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저기… 경찰관님. 제가 계속 아들이라고 불러서 미안해요. 우리 아들이 살아있었으면 아마 경찰관님 나이 정도 됐을 텐데… …. 저 이제 진짜 집으로 들어갈게요. 아직도 집에 가면 아들이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잔소리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집에는 아무도 없겠죠? 아이고, 내가 또 이러네. 이제 진짜 가볼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데려다 주셔서 고마워요.”


  그녀는 애써 밝은 척 슬픈 웃음을 지어 보이더니 집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하지만 여성의 발걸음은 집에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느려졌다. 나는 여성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뱉어버렸다.


  “저기… 어머님! 괜찮으세요? 집 안까지 모셔다 드릴까요?”


  여성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뒤돌아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밤, 가로등이 밝지 않은 골목길에서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아무런 말없이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잠시 후, 그녀가 사는 빌라 어느 집 창문으로 작은 불빛이 세어 나왔다. 하지만 그 불빛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꺼져버렸다. 또다시 암흑이었다. 그렇게, 여전히, 지독하게 길고 어두운 밤이 계속되었다.  








  점차 일이 손에 익어가며 한창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던 때의 일이었다. 현장 대응 매뉴얼은 모두 숙지했고, 어떤 현장도 두렵지 않았다. 누구보다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하면서 실수가 없는, 그야말로 기계적인 업무 처리에 제법 칭찬을 받으면서 우쭐해있던 때였다.


  그때 나는 그녀의 슬픈 눈빛을 보지 못했다. 그저 술에 취한 여성의 게슴츠레한 눈빛만을 보았을 뿐이었다. 그때 나는 그녀가 어렵게 꺼내려는 내면의 아픔을 듣지 않았다. 그저 주취자의 넋두리쯤으로 여겼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을 뿐 어떠한 공감도 하지 못했다.


  다양한 현장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매 순간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의 초심은 결코 불가능한 현실과 타협한 적이 없다. 그저 생각보다 냉혹한 현실에 작은 불씨가 활활 타오르지 못할 뿐이다. 우리는 스스로 초심의 불씨를 지폈지만, 이를 지키는 방법에 대해서는 배우지 못했다. 답은 늘 현장에 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아내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몫이다.


  작은 불씨에서 시작하여 활활 타오르게 된 불꽃도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작은 불씨가 살아있는 한, 몇 번이고 다시 새로운 불씨를 지펴야 한다. 그리고 지켜야한다. 작은 마음의 불씨가 커다란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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