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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랑이 Dec 13. 2022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 어느 지구대 경찰관의 평범한 하루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

.


  전국 어느 지구대나 그 지역 고유의 단골손님들이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112신고를 하거나 지구대에 찾아오는 사람들 말이다. 그분들을 상대하는 베테랑 지역 경찰관은 범인을 많이 검거하거나,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해결한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 지역에 대해 빠삭하고 단골손님을 자주 만나온 경찰관이 바로 베테랑 지역 경찰관이다. 



  우리 지구대에도 여러 단골손님들이 있었는데 그중 김덕수씨를 모르는 경찰관은 아무도 없었다. 오죽하면 선배들은 신임 경찰관들에게 서장님 얼굴은 몰라도 덕수씨 얼굴은 알아야 한다고 농반진반으로 말하곤 했을까. 덕수씨는 그야말로 우리 지구대 VIP 단골손님이었다. 특히 나와 덕수씨의 사이는 다른 이들보다는 조금 더 각별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둘만 아는  비밀 추억이 있었으니까. 덕수씨를 처음 만났던 날, 생생했던 그날의 기억을 꺼내볼까 한다.     








  신임경찰관으로 발령받아 초임 지구대에서 근무한 지 이제 막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처음으로 긴급신고의 최고 단계인 Code 0(코드제로) 신고가 접수되었다.


  [자살 신고입니다. 큰 칼을 들고 자신의 목을 긋는다는 내용. 안전에 유의하여 출동하세요.]


  Code 0 신고는 일반 신고와 달리 처음 들어보는 사이렌 소리가 몇 차례 울리고, 신고 지령 화면은 붉은색으로 번쩍 거려 긴장감을 더했다. Code 0 신고는 순찰차 관할을 불문하고 해당 지구대의 모든 순찰차들이 현장으로 총출동하고, 필요시 인접 지구대에서 지원까지 온다. 처음 접한 Code 0 신고에 심장이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선배들과 함께 출동하는 신고이고, 아직 신임 경찰관인 내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질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나는 마치 나 혼자 모든 상황을 해결해야 할 것 같은 오만한 중압감마저 느꼈다. 긴장한 나와 달리 선배들은 평소와 같았다. 당시에는 그것이 단지 경험의 차이라고 여겼다. 함께 출동하는 선배가 운전대를 잡고 긴급 사이렌 버튼을 눌렀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보다 쉴 새 없이 쿵쾅 거리는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막내는 덕수씨 처음이지?”


  운전을 하던 선배는 긴장한 채 앞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나를 흘끗 보며 물었다.


  “네? 덕수씨요?”


  “우리 지구대에서 덕수씨 모르면 간첩이야. 앞으로 자주 보게 될 테니 정신 바짝 차려.”

  “아… 네! 알겠습니다.”


  솔직히 그때까지 선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현장은 순찰차가 진입할 수 없는 좁은 골목길이었다. 우리는 차량을 주차하고 걸어서 골목길로 들어갔다. 허름한 집들이 빼곡히 들어찬 골목길에는 가로등 하나 없었다. 우리는 한 손에는 손전등을, 다른 한 손에는 삼단봉과 테이저건을 든 채 덕수씨의 집으로 향했다. 꾸불꾸불 굽이진 골목길을 걷다 보니 드디어 덕수씨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 나 혼자였다면 정확한 신고 장소를 찾지 못해 헤맸을 만큼 복잡하고 어두운 골목길이었다. 멀찌감치 손전등 불빛에 사람의 실루엣이 비쳤다. 그리고 잠시 후, 늦은 밤 골목길 주택가의 정적을 깬 것은 다름 아닌 덕수씨의 외침이었다.


  “가까이 오면 나 죽을 거예요!”


  의미심장한 내용과 달리 말투는 조금 어눌했다. 하지만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고 손전등으로 그를 비춘 순간 나도 모르게 ‘흡!’하고 숨이 멎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신고 내용과 같이 그는 생성 대가리를 쳐낼 때 쓰는 ‘큰 칼’을 자신의 목에 대고 있었다.  가로등 하나 없는 좁은 골목길, 작은 손전등 불빛을 비출 때마다 커다란 칼날이 서슬 퍼런 광채를 내뿜었다. 덕수씨는 고작 나보다 두 살 위였지만 더벅머리에 노숙자 같은 행색 때문에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덕수야, 또 왜 그러냐. 진정하고 칼 내려놔.”


  선배는 너무나도 태연하게 손전등으로 덕수씨를 비추며 삼단봉을 든 손으로 덕수씨를 진정시키는 손짓을 보냈다. 그러면서 점차 덕수씨와의 거리를 좁혀가기 시작했다.


  “오지 마! 자꾸 오면 나 죽어요! 진짜 죽을 거야!”


  “덕수야, 이야기 들어줄 테니까 어서 칼 내려놔.”


  “거짓말이잖아요! 나 진짜 죽어버릴 거예요!”


  덕수씨는 더욱 위협적으로 칼날을 자신의 턱 밑까지 들이댔다. 그 순간 선배는 삼단봉을 휘둘러 길가에 있던 빈 페인트 통을 내리쳤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선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골목길 전체에 울려 퍼졌다.


  “김덕수! 칼 내려놔!”


  “히익!”


  갑자기 큰 소리에 놀란 덕수씨는 칼을 떨어뜨리고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나 역시 갑작스러운 굉음에 놀라 반사적으로 양손이 귓가로 올라갔다. 선배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재빠르게 몸을 던져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칼을 발로 차면서 덕수씨의 양팔을 뒤로 꺾었다.


  “아악! 아파요!”


  “그러게 인마, 왜 또 소란을 피워! 막내 뭐 하고 있어? 빨리 와서 수갑 채워.”


  “예? 수갑… 아… 네!”


  잠시 얼이 빠져있던 나는 허둥지둥 달려가 허리춤에 있던 수갑을 꺼내어 덕수씨의 양 손목에 채웠다. 그리고 선배는 곧장 무전기로 상황을 전파했다.


  “흉기 안전하게 제거했고 대상자 제압했습니다.”


  그것이 나와 덕수씨의 첫 만남이었다. 


  그 후 나는 몇 차례 비슷한 신고 내용으로 덕수씨를 만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근무하지 않는 날에도 덕수씨는 신고를 하였고, 그 빈도는 최소 한 달에 한번 꼴이었다. 그렇다 보니 우리 지구대에서 덕수씨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덕수씨의 패턴은 늘 똑같았다. 칼을 들고 자해를 하겠다고 신고하고, 우리가 도착해서 설득하면 칼을 내려놓는다. 


  늘 같은 상황에서 덕수씨가 절대로 하지 않는 행동이 두 가지 있었다. 그중 첫 번째는 자해였다. 신고 종별은 늘 ‘자살’로 접수되었음에도, 덕수씨가 자해를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덕수씨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항상 액션만 취할 뿐, 실제로는 몸에 상처를 내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덕수씨가 절대로 하지 않는 두 번째 행동은 바로 우리를 향한 위협이었다. 실제 칼을 들고 자해를 시도하는 사람들 중 종국에는 칼끝이 경찰관을 향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덕수씨의 칼은 단 한 번도 우리를 겨냥한 적이 없었다. 


  매번 덕수씨를 만나고 나면 지구대로 동행 후 119구급대원들이 몸을 살피고 정신건강병원이나 센터 등의 협조를 받아 상담 및 입원 치료 등의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수차례 입원을 하고 치료를 받아도 덕수씨의 증상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퇴원 후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자해 소동을 벌였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덕수씨를 만나 똑같은 과정을 반복해야만 했다. 현장에서 덕수씨의 자해 소동을 진정시키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유관기관의 협조를 구해 상담과 입원 등의 절차를 진행시키기까지는 늘 긴 시간이 소요됐다. 


  당시는 정신건강복지법(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에 빈틈이 많아 이와 같은 사후 조치에 꽤나 애를 먹었다.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실무와 동떨어진 법 조항, 까다로운 행정절차, 유기적인 협조가 원활하지 못한 공공기관과 사기업들의 이해타산 때문에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늘 낭패불감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때는 내가 기억하는 덕수씨와의 마지막 만남이다. 어느덧 나 역시 덕수씨와의 만남이 익숙해질 무렵, 문득 궁금한 점이 있어 덕수씨에게 말을 건넸다.


  “덕수형.”


  “네… …? 저요? 제가 왜 형이에요?”


  “제가 동생이니까요. 형이라고 해도 돼요?”


  “아… 내가 형… 헤헤, 좋아요.”



  그는 형이라는 말에 부끄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배시시 웃었다. 그러면서도 습관처럼 내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근데 형은 자해하려고 할 때 무섭지 않아요?”


  “어… 어… 사실 무서워요.”


  “그런데 왜 항상 자해를 하려고 해요?”


  “그래야 불러주니까요.”


  “불러줘요? 뭘요? 경찰을?”


  “아니요. 음… 어… 사실 이거 비밀인데… ….”


  “비밀 지킬게요. 근데 뭘 불러준다는 거예요?”


  “내 이름이요. 김.덕.수, 내 이름. 경찰 아저씨들 아니면 아무도 내 이름 몰라요. 그리고 불러주는 사람도 없어요. 그래서… 어… 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래 가지고… 그러는 거예요.”


  그는 말로써 자신의 생각을 모두 전달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는지 입을 닫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 나 역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것이 나와 덕수씨의 마지막 만남이자, 내가 덕수씨와 나눈 처음이자 마지막 대화가 되었다. 


  그 후 우리는 더 이상 덕수씨를 볼 수 없었다. 몇 차례 집에도 찾아가 보았지만 덕수씨가 살았던 흔적만이 고스란히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덕수씨는 점점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더 이상 덕수씨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덕수씨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도 없었다.








  몇 년 후, 다른 지구대에서 근무하던 중 초임 지구대에 방문할 일이 있었다. 함께 근무하던 동료들은 모두 떠났고, 지구대 역시 터는 그대로였지만 구조가 바뀐 탓에 낯설게 느껴졌다. 함께 근무한 적은 없지만 얼굴을 알고 있던 후배를 만나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담소를 나누었다.


  “김순경 여기 근무한 지 얼마나 됐지?”


  “이제 2년 다 되어갑니다.”


  “혹시, 김덕수씨라고 알아?”


  “김덕수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누구예요?”


  “아… 전에 내가 근무할 때 여기 관내에 살았던 사람이야.”


  “유명한 사람인가요? 저 이제 알 사람은 다 아는데… 김덕수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네요.”            


  그곳에는 더 이상, 덕수씨를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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