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Prima schola alba est)"
이 문장을 직역하면 "첫 수업은 희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희다'는 '휴강'이라는 뜻으로, 첫 번째 수업은 휴강을 한다 이 말이죠. 로마시대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업 첫날 하는 말이었다고『라틴어수업』의 저자 한동일 교수는 말합니다.
수업 첫날부터 휴강이라니 학생들 반응은 어땠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갑작스런 '휴강'은 깜짝 선물을 받거나 횡재한 기분이 들게하나 봅니다. 로마시대의 학풍을 현대에 적용해도 여전히 학생들이 기뻐하며 좋아한다고 하네요.
저는 색채심리사답게 무엇보다 '희다'는 단어에 팍 꽂혔지요.
왜 하필 '희다'고 한 건지, 뭐가 '희다'는 건지 말입니다.
색채언어는 그 의미보다 시각적인 느낌이 먼저 강하게 와닿죠.
설명하지 않아도 뭔가 '희다'는 느낌 자체에서 아무것도 없는 '멍때리기' 좋은 상태가 느낌으로 전해집니다.
제게 흰색은 깨끗해서 기분 좋고, 무엇을 할지 상상히게 하고 또 기대하게 만드는 그런 색깔이에요.
가장 좋아하는 하얀색의 느낌은 새하얗게 빨아서 널어놓은 이불이나 속옷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하얗고 바람에 살랑살랑 나부끼는 겁니다. 어릴때 엄마가 이불빨래를 널어 놓으면 그 사이로 다니는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왠지 제가 깨끗하게 씻겨진 그런 기분이 들고 뽀얗고 바스락 거리는 새하얀 이불을 덮고 잘 생각을 하면 저절로 신나고 마음이 편해졌죠.
가끔 영화에서도 푸른하늘을 배경으로 하얗게 빛나는 빨래가 널려있는 장면이 보일 때가 있어요. 그런 장면에서는 부지런하고 깔끔하게 집안을 가꾸는 엄마가 등장하길 기대하게 돼요. 왠지 그런 집이라면 주부가 집안을 정성을 다해 돌보고 아무리 지친 몸이라도 아주 편히 쉬면서 회복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또 그 누구도 그리지 않은 흰색의 도화지 위에 제가 뭔가를 시작하는 기분도 참 즐겁습니다. 무언가 시작할 수 있다는 건 상상과 기대를 북돋우고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요.
물론 너무 희고 깨끗해서 부담이 되거나 긴장이 될 때도 있습니다. 혹시 실수 하면 어쩌나, 때가 타면 어쩌나 하면서요. 실제로 하얀 탁자나 옷에는 아주 작은 티끌만 묻어도 크게 보이고 신경 쓰이죠.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색채에 대한 느낌이나 그 이유를 물어보면 흰색에 대한 사람들의 느낌은 '깨끗함, 단순함, 순수함, 솔직함, 순결함 외에 긴장감, 공허, 강박 등 대부분 비슷합니다.
그런 면에서 한동일 교수가 '희다'로부터 '아지랑이'로 연결지어 마음을 탐색하고 잉여의 시간을 보내도록 안내하는 건 매우 특별하고 남다릅니다. 개강 첫날, '휴강'을 표현하는 '희다'와 그 잉여의 시간을 '봄날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을 감상하면서 보내 보라고 권하는 교수에게 수강생들이 매료될 수 밖에 없을 것같네요. 저역시 예상치 못했던 휴강 소식과 몇 마디의 말로 내면 깊숙한 곳을 성찰하게하는 교수법에 매료되어 감탄을 했을겁니다.
"프리마 스콜라 알바 에스트"로 평소와 달리 잉여 시간이 생겼는데 그 시간은 그냥 주는 시간이 아니라, 봄 기운에 흩날리는 아지랑이를 보는 시간이라고 한교수는 말합니다. '희다'로 부터 이어지는 '아지랑이'는 섬세한 삶의 성찰과 자연과 존재를 통찰하는 열정과 애정이 없이는 상상하거나 권하기 힘든 표현입니다.
라틴어로 '네불라(nebula)'인 아지랑이의 뜻은 '보잘 것 없는 사람, 허풍쟁이, 안개 낀, 희미한'을 뜻하는 명사와 형용사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 그래서 라틴어 네불라에는 아지랑이 라는 뜻 외에도 '보잘 것없는 것', '오리무중'이라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하고 많은 볼거리를 두고 굳이 '아지랑이'를 보라고 권하는 이유가 뭘까요?
'봄날의 아지랑이'는 언땅을 녹이고 피어오르는 살아있는 기운입니다. 그 삶의 기운은 웬만큼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한교수는 그 아지랑이를 우리 마음속에서 보는 것이 바로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마음의 운동장에는 어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지" 물으며, '봄날의 아지랑이'를 보며 어떤 마음의 봄을 맞을지 먼저 보라고 '휴식'을 주는 교수의 배려와 지혜가 전해져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한교수의 질문을 듣는 순간, 새학기에 잔뜩 긴장하고 어색했던 학생들의 마음이 스르르 풀리면서 얼마나 즐거웠을지. "역시 명강의"라는 찬사를 들을만 합니다.
덕분에 전 『라틴어수업』의 처음 몇 장을 읽다말고 '희다'의 '흰색(White Color)에 대해 또 다른 상징과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텅빈 허공이 되어 '무소유'를 상징하고, 때로는 밝고 맑은 순수한 빛의 에너지로 어두운 곳을 밝히고 정화(Clean)시키는 힘이 있는가 하면, 스물 스물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고 나른한 느낌을 주는 '백색'의 변신과 다양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번 색채심리 책은 '희다'로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대체로 색채를 설명할 때 '빨강'을 제일 먼저 이야기 하거나, '삼원색'을 기준으로 설명하기 쉽고 저도 그렇게 강의를 하고 교재도 냈습니다. 색채학이나 컬러이론을 설명하는 책이라면 그 편이 자연스러울 수 있죠. 그에 비해 이 책은 '색채'와 '심리'가 만나서 우리 내면과 삶의 색깔 들을 살펴보는데 중점을 두고 있어서, 태초에 시작인 빛의 에너지 '투명한(Clear), 백색(白色)'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떤 연유로 색채심리에 관심을 갖고 이 글을 읽는지 모르겠지만 끝까지 책을 읽으면 색채가 품고 있는 역사와 철학, 문화까지 인문학과 인생을 깊고 넓게 체험하게 될 겁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색깔만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마음과 빛의 에너지를 충분히 누리고 나누는 인생의 벗을 만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빛의 에너지이며, 이 세상을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이고 조화롭게 살아갈 능력이 있음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색채심리에 관한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여행의 안내자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독자 분들이 내면여행을 떠나고 인생의 길을 떠나는 중간 중간에 만나서 쉬어가는 '쉼터'이자 '안내소'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특기는 컬러로 마음을 살펴보고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컬러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을 가이드하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미처 알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과 알면 알수록 풍성해지는 내면여행 방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처음은 낯설고 어색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때는 저의 가이드로 더 풍성하고 즐거운 여행을 경험하고 새로운 기운을 가득 얻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힐링과 에너지가 필요할 때 펼쳐 보고 삶의 지혜와 기운을 얻어가시기 바랍니다. 매일 산책하듯 보셔도 좋고 틈틈히 생각날 때 보고 실행하셔도 좋습니다.
이 책은 단순히 이 색은 이렇고, 저 색은 어떻다는 식으로 단정 짓거나, 사용 방법을 설명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보다는 내 안에 빛나는 색채와 컬러에너지를 발견하고 제대로 그 힘과 의미를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워크북 형식으로 각 각의 컬러를 이론으로 접하기 보다 직접 경험하고 앞으로도 스스로에게 적합한 컬러를 선택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책을 구성했습니다.
※ 참고 도서
한동일 저.『라틴어수업』. 흐름출판. 2017. pp27-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