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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정 Dec 14. 2023

위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그 돈 아무때나 줘도 돼. 안 줘도 되고."

"너한테 그냥 준다고 생각했었어."


심장에서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들으면서 알 수 있었다.

내가 많이 듣고 싶었고 기다렸던 말을 이제 듣는구나 싶었다.


무슨 소리냐고 팔짝 뛰는 시늉을 하며 너무 늦게 줘서 미안하다고 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거듭 감사하다고 말했다. 2년이나 기다려 주어 고맙고, 요즘같은 때 이자하나 없이 그냥 빌려준것만해도 정말 큰힘이 됐고, 감사하다고 또 말하고 또 말했다.


그래도 언니는 더 급한 곳이 있으면 그것부터 해결하라며 묻고 또 물었다. 몇 개월만 쓰겠다고 빌린 돈을 2년이 지나 갚는데도 언니는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면서 받지 말아야 할 걸 받는 것처럼 행동했다.


둘째 언니는 문자를 남겼다.

이게 왠 '공돈'이냐면서, 생각도 안했는데 고맙다고 했다.


언니들은 내게 돈을 빌려주었다는 사실을 기억 못하는 것처럼 굴었고, 내가 마치 선물이라도 챙겨주는 것처럼 좋아하고 고마워했다.


한창 집값이 폭등할 때 월세를 주었던 아파트를 매매하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직 전세기한이 많이 남은 집은 매매가 어려웠고, 한창 집값이 오르던 때 좀 싸게 내놓으면 팔릴거라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집이 팔리면 갚을 요량으로 먼저 대출을 무리하게 받아 새집을 마련했는데 졸지에 영끌족이 되어 버렸다.

집담보로 싸게 받았던 이자는 변동금리로 자꾸 오르더니 두배를 넘겼고, 불어나는 이자를 막느라 마이너스통장과 제2금융권의 대출까지  받아야 했다. 어찌 어찌 이리 막고 저리 막으며 헉헉대다보니 월세 기한이 다되고 불행 중 다행으로 세입자가 분양을 받아 이사를 간다기에 무조건 집을 내놨었다. 2년 동안 집값은 오른만큼 떨어졌고 이것저것 내주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었다. 급한대로 비싼 이자를 내는 것부터 순서를 정해 꺼나갔다. 아무리 급해도 언니에게 빌린 돈은 무조건 1순위였다. 빌려준 뒤 한마디도 돈얘기를 한 적없지만 늘 마음이 무겁고 미안해서 견디기 힘들었으니까. 무조건 갚고 싶었고 갚아야 했다. 2년이 내겐 너무 빠르면서도 길었다.


이래저래 갚은 돈을 헤아려보고 갚아야 할 대출금을 정리하고나서, 앞으로 어떻게 돈을 벌어 빚은 갚고 저축하며 살아갈지 기록했다. 다시는 빌리지 말고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다짐하며 적어 내려갔다.

적다보니 내가 대출금을 다 갚고 나도 갚아야 할 것들이 정말 많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것들은 돈으로 계산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나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염려해주는 언니들의 마음도 내게는 두고 두고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었다. 그래서 마음의 빚을 어떻게 갚을지 기록하는 노트를 따로 만들었다. 꼭 그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그가 했듯이 나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는 위로와 힘이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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