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정 Jun 09. 2024

좋은건 알겠고, 나는 왜 안되는 거지?

좋은 말들이 쏟아진다. 들으면 다 옳고 맞는 말이다. 

유튜브, 인스타, 각종 SNS 플랫폼 쏟아지는 정보들은 어쩌다 클릭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좋은 말, 좋은 글, 자기개발, 동기부여가 이어진다. 뭐든 과하면 없느니만 못할때가 많다. 좋은 말도 글도 그건 그렇다.

듣다보면 들은 걸 또 듣는 것같은 착각에 빠지거나, 그 사람이 그사람인 것 같은 혼돈에 빠지기 쉽다. 

특히 자기개발이나 마인드코칭 관련 채널이나 SNS의 말과 글들이 그렇다.


온통 좋은 글과 말이 '뼈 때리고', '안 보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이 자극하며 어서 읽고 정신 차리라고 아우성 친다. 보다보면 어느새 한두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어느새 '홀릭' 당하고 만다. 그쯤되면 정작 정신 차려야 건, 듣기만 하고 행동 못하는 '나'임을 각성하고 현실로 돌아와 그만큼 미뤄진 일을 처리하느라 헉헉 댄다.


분명 좋은 말과 글들을 보면서 마음에 와닿고, 동기부여도 받고, 어찌 해야겠다는 다짐도 있었는데, 그냥 그때뿐이다. 별로 변하는 것이 없고 오히려 나만 처지고 무능한 느낌에 피로감이 밀려올 때가 많다.


그러니까 '좋은 건 알겠는데 나는 왜 안되는 거냐고' 묻고 싶지만, 물을 곳도 속시원히 답을 들을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또 '그럼 난 어쩌라고' 물으며, 적당한 답을 찾아 이곳 저곳 플랫폼을 뒤지다 시간이 가고, 일이 밀리고 부담은 커지고, 할 여력은 부족한 나를 확인하고 쉽게 지쳐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살아간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고, 안 듣는 것보다 듣는게 정신 차리는데 도움이 된다싶어 '좋은 말', '좋은 글'을 찾아 보는 습관이 배어 있다. 내게 좋은 말과 글은 비타민 같다. 비타민은 꼭 필요한 영양요소지만, 무조건 많이 먹는다고 몸에서 다 흡수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비타민도 소화할 양을 넘어서 과잉섭취하면 몸에서 필요한 만큼만 소화하고 나머지는 그냥 소변으로 배출된다고 한다. 


매일 쏟아지는 '좋은 말과 글'도 꼭 필요한 만큼 듣고 보면 좋은데, 지나친 건 별 도움이 못된다.

그냥 들을 땐 뭔가 반짝 정신 차리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금새 흘려 듣고 잊기 쉽다. 내가 원하는만큼 눈에 띄는 변화나 실천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마음의 위로나 치유도 마찬가지다. 건드려 지는 건 있는데 속 깊은 곳까지 치유되고 회복되기는 어렵다. 물론 SNS에 떠도는 글과 영상으로 개과천선을 바라는 건 무리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자꾸 찾아 보는 건 '좋은 말과 글'들이 지치고 반복되는 일상에 '비타민'이 되주기 때문이다. 비타민 사탕, 비타민 껌, 비타민 젤리, 비타민 영양주사 등등 별별 비타민처럼, 별별 좋은 글과 말이 쏟아지는 속에서 난 취향껏, 필요에 따라 언제든 선택해서 보고 듣기 편리한 세상이다.


그리고 비타민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듯, 좋은 글과 말이 내 삶을 변화시켜 주는 건 아니다. 어느정도 필요하고 동력이 될 수는 있지만, 내가 원하는만큼 변화가 일어나고 성장시켜 줄 수는 없다. 너무나 당연하고 그러니 변하고 싶으면 실천해야하는데 잘 안되고, 못하고, 헤매다가 마는 수가 많으니 문제라는 거다. 몰라서가 아니라 좋은 걸 알아서 하고 싶은데 잘 안되는게 문제다.


물론 아무 것도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비타민을 섭취해도 몸에 나쁜 걸 먹고 즐기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좋은 말과 글을 반복해서 들어도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과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반복한다면 들어봤자 내가 변할리 없으니까.


그래서 '내가 왜 안되는 거지?'에 대한 의문을 파고들었다.

이 의문에 답을 얻지 못한다면, 이 전에 들은 '좋은 말과 글들'도, 앞으로 듣고 볼 좋은 것들도 실제로 도움될게 별로 없기에 어쨌든 난 이 의문을 푸는게 중요했다.


물건을 고르기 전 리뷰를 찾아 보듯, 좋은 글과 영상에 딸린 댓글을 보면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제만 말하지말고 어떻게 해야할지 실천방법도 알려달라'는 호소가 많았다. 나만 고심하는게 아니다싶어 위로도 됐지만, 해결책을 찾아야겠다는 마음도 커졌다.


문제는 답을 찾게 만든다.

덕분에 난 좋은 걸 알아도 못고치고 달라지지 못하는 나의 문제가 어디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원하는데로 내가 나아지고 잘 살 수 있는지 답을 찾았다. 물론  다 찾지 못하고 아직 진행 중이다. 아마 평생 해야 할 걸로 생각된다. 살아있는 동안 늘 새로운 문제가 던져지고 그 답을 찾으면서 살아가니까.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그래도 꾸준히 문제를 풀어가며 '나는 왜 안되는 거지?'라는 의문에서, '내가 어떻게 해야하는가?', '나라면 무엇을 해야되는지'로 인생의 질문을 정돈하며 해답을 찾아가고 있다.


내가 안되는 이유는 바로 내 안에 있었다. 

마음 속 깊이 상처 입은 아이, 꿈을 짓밟히고 잠재력을 잊어버린채 잠든 거인,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며 가두어둔 모습들을 깨우고 치유하지 않았기때문이었다. 겉으로만 좋은 것들을 취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속은 썩어 문들어지는데, 겉만 치장하고 좋아보인다고 되는게 아니었다. 그래서 좋아보이고 좋은 것들을 숱하게 보고 들어도 정작 내 것이 못되고 흩어져 버린 거였다. 내 속에서 찾아야 할 해답을 외부에서 찾아 헤맸으니 좋은 걸 많이 듣고 알아봤자 그리 오래 못가고 부담만 갖기 쉬웠다. 그걸 알아차리고 부터는 쓸데없이 나를 자책하거나 조급하게 서둘고 불안해하는 게 점점 줄어들었다. 


그 좋은 것들이 진짜 내 것이 되려면, 내 안의 문제들을 살피고 상한 감정부터 치유하는게 필요했다.

병들고 아픈만큼, 오래되고 꼬인만큼, 치유하는데 시간이 더디고 회복이 오래 걸렸다. 아직도 진행 중이고 이제 겨우 알아차리고 치유 중인 것들도 많다. 


심리상담을 할 때, 마음의 상처를 입은 나이만큼 심리상담도 오래 걸린다는 말을 한다.

7살에 입은 심리적 상처를 치료하려면 7년이 걸리고, 15세가 되어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려면 그 정도의 세월이 걸린다는 말이다. 그러니 40세가 되어 심리적 상처를 치료하고 싶다면 찾아오면 80세는 되어야 제대로 상처가 사라질 수 있다고 보면, 상담자가 내담자(환자)보다 먼저 죽을 확률도 높다. 꼭 나이만큼은 아니여도 그만큼 심리상담을 통해 온전히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마음의 상처는 흔적조차 없던 것처럼 지우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마음의 상처는 지우는게 아니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편히 살 때 잊을 수 있으면 된다. 


거의 매일 듣고 보며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취할 수 있는 좋은 글과 말들을 내게도 좋은 것들로 만들고 싶다면, 무엇보다 내 마음을 헤아리고,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고, 나만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키울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아차리고 행동하는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와 자책이 여전히 들지만, 그보다는 '이제라도 알아서 참 감사하다.'는 마음이 점점 커지고 있다. 


모든 '알아차림'과 '변화'는 스스로에게 좋은 걸 주고 싶어하는 마음 덕분이다.

내가 소중한 존재이며, 나부터 나를 사랑해야 그 모든게 가능하다는 걸 알아차린 덕분이다.


'좋은 건 알겠고, 그래서 어쩌라고?'라며 따져 묻던 조급했던 마음이 누그러지고,  '좋은데 내가 잘 안되는 이유'가 뭔지 헤아리고 스스로 다독이며, 느리지만 내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힘이 생겼다.


내 속에 상처 입고 떼쓰는 '내면 아이'를 보기 싫어하고 숨기거나 떼어내려고 기를 쓰는 한, 심리적 갈등과 문제는 해결 할 수 없다. 아이가 곁에서 울어대는데 흔들림없이 책을 보거나 즐거운 분위기를 누릴 수 없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다. 내면 아이가 평안하고 즐거워야 나의 생활도 만족스럽고 행복할 수 있는 거다. 아무리 남들에게 인정 받고 인기를 누려도, 내면아이가 상처입고 불행하다면 그 삶은 결코 제대로 굴러갈 수 없다. 나 역시 그랬다. 상처 투성이의 내면아이를 방치한채 살았던 세월만큼 내가 치뤄야 할 댓가는 심각했다. 그러니 좋다는 말과 글을 아무리 들어도 내 것이 안되고 헛도는 거였다.


'좋은 글과 말'은 문제가 없었다. 아니 꼭 필요했다. 문제는 그 좋은 것들이 뿌려질 '마음밭'이 시원찮은 거였다. '가시밭, 자갈밭,  거친 길가'처럼 준비되지 않은 '마음밭'에는 아무리 좋은 종자를 뿌려도 소용이 없었다. '좋은 것들'을 듣고 보고 아는만큼, 그 좋은 것들을 마음껏 뿌리고 자라게 할 마음밭을 가꾸는 게 필요했다.

마음은 던져두고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건 잠깐의 자극과 위안을 줄 뿐이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나는 안되는 거였구나!'하는 걸 깨닫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이제라도 알아서 참 다행이다 싶다. 알면 알수록 그동안 아껴주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믿고 사랑하지 못했던, 내 안의 '나'에게 미안하다. 


놀다가 다쳤는데 아픔보다 혼날까봐 겁내던 꼬맹이에게, 어른들의 분풀이가 되어야했던 힘없던 소녀에게, 사랑인줄 착각하고 아파하며 상처입은 과거의 나에게 진작 알아보지 못하고 방치해서 미안했다.


'내가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기고 안쓰럽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서, 에너지가 내면에 집중할 용기도 힘도 생겼다. 그러면서 거칠고 험악했던 마음밭을 가꿀 수 있게 되었다. 


마음밭도 농사를 짓는 것처럼, 밭을 갈고 씨 뿌리고, 수확하고 다시 밭을 정돈하고, 좋은 씨앗을 준비하며 농사지을 때를 기다리는 사계절의 순환이 계속된다. 한 번 가꾸면 평생 가는게 아니다. 부지런히 돌보고 정성을 들여야 열매 맺고 거둘 게 있다. 


진정한 농부는 '나락 한 알에서 우주를 발견'하는 것처럼, 마음농사를 짓는 나또한 지극히 작고 소소한 삶 속에서 '참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 나는 내게 말한다.

'좋은 건 알겠는데 잘 안될  때가 있지. 그럴때는 마음 속을 들여다 봐!'

그리고 아직 잠들어 있거나, 울고 있는 '내 안의 나'를 찾아 말을 걸고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면 '내 안의 나'도 어떻게 해야할지 '마음의 메세지'를 보낸다.


여전히 내 안에는 미숙하고 한참 커야할 것들이 눈에 띈다.

내가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도와야할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다.

다만, 서툴지만 정성을 다해 보살피고 사랑하는만큼 '내면아이'가 성장하고 성숙해져 간다는 배우고 있다.


"새는 날아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몰라도 나는 법을 배운다."는 말처럼,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즐기고 있다.

그래서 감사하고 '좋은게 좋은 것'이라는 걸 인정하고 또 내게 적용하면서, 기다릴 건 기다리고 할 건 하면서 살아간다.


누군가 내게 '좋은 건 알겠고, 나는 왜 안되는 거지?'하고 묻는다면?

'좋은 건 좋은 거고, 안될 때도 있지만 될 때가 있어. 먼저 내 마음을 들여다 봐. 좋은 게 뿌리내릴 수 있는 

마음밭'을 정돈하고 가꿀수록 좋은 것들이 내 것이 되고  나눌만큼 넉넉해질 수 있어!. 너도 할 수 있어!'

라고 답해주고 싶다. 






자기개발, 동기부여 강연, 심리상담, 마음공부를 해도 의문이 생기고 답답했던 나를 떠올리며, 근본적인 문제를 살펴보고 '나답게 나로 살아가는 방법'을 널리 알리고 함께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우고 싶습니다.

계속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위로하며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인생여정을 나누려고 합니다.


글로 만나며 함께 하는 님들을 인생의 도반으로 모시며 감사드립니다.

다음글에서 또 뵙겠습니다.^^좋은건 알겠고, 나는 왜 안되는 거지?

좋은건 알겠고, 나는 왜 안되는 거지?





작가의 이전글 익은 과일이 '도(道)'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