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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킴 May 19. 2024

비문학의 등뼈는 목차에 있다

목차는 글의 구조

 나는 등산을 좋아한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봄과 가을에는 꼭 한 번은 산을 찾는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나는 늘 등산로 입구에서 걸음을 멈춘다. 산의 등산로를 표시한 지도를 보기 위함이다. 지도에는 산봉우리를 향해 올라가는 여러 갈래의 길들 과 명소들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를 보면서 오늘 내가 등산할 코스와 꼭 보아야 할 곳을 미리 생각해 둔다. 하루의 산행을 미리 점쳐보는 것이다. 오늘의 산행이 힘들지, 즐거울지, 시간은 얼마나 소요될지, 어디서 휴식을 취해야 될지 말이다.   

  

 목차 읽기도 똑같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리 생각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어떤 점을 내 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지, 내가 모르는 부분은 어디며, 내가 집중해야 할 곳은 어디인지 생각한다. 목차를 잘 읽으면 책 읽기가 한결 가벼워진다. 복잡한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지도를 보면 자신의 위치를 알고 길을 찾아가는 것처럼, 목차를 통해 책의 구조를 알면 책 안에서 헤매지 않는다. 읽기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그러나 목차 읽기가 모두 책 읽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책의 종류에 따라서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책 종류에 따른 목차 읽기를 살펴보면,           

 

 첫째로, 소설과 시와 같은 문학은 목차 읽기가 크게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소설의 경우는 연속성 있는 이야기를 전개하므로 맥락을 모르면 이야기를 쫓아가기 어렵다. 본문을 읽어야만 목차의 의미가 이해된다. 그리고 두꺼운 소설책이라도 목차가 몇 개 없다. 그런 목차들조차 보통 의미를 이중 삼중으로 감춰놓는다. 목차만 봐서는 본연의 뜻을 단박에 이해하기는 어렵다. 책을 전부 읽어야지만 소설가가 왜 목차를 그렇게 지었는가 알 수 있다. 시집 같은 경우는 시 제목들로써 목차를 엮기 때문에 목차를 통해 시의 제목만 알 수 있을 뿐, 내용까지 알기 어렵다.     


 둘째로, 목차 간에 연결성 없이 내용을 나열하는 목차를 가진 서적이다. 순서대로 읽어야 알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어디를 읽어도 상관없는 책들이다. 예를 들면, 다수의 위인들의 생애를 한 책에 엮은 책이라든지, 관련이 없는 불연속적인 이야기들을 엮은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첫 페이지부터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흥미 끌리는 부분부터 읽어도 된다.     


 셋째는, 목차 간에 논리적으로 연결성이 있는 지식서, 실용 서적이다. 이 책들이야 말로 목차를 제대로 읽을 책들이다. 목차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목차의 구조는 작가의 지식 체계, 사고 구조,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내포하고 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는가가 목차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작가는 책을 쓸 때 목차라는 골조를 세우고, 경험과 생각이라는 벽돌을 쌓아 논리라는 시멘트를 발라 책을 쓴다. 골조의 구조, 즉 설계도를 아는 것이 집의 형태를 적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처럼 목차를 제대로 읽는 것이 책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제1원칙 : 책을 종류와 주제에 따라 분류하라

제2원칙 : 전체 내용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최대한 간략하게 이야기하라

제3원칙 : 주요 부분을 찾아 어떤 순서에 의해 전체적으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파악하라

제4원칙 : 저자가 풀어나가려는 문제를 분명하게 찾아내라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 모티머 J 애들러     


 모티머 J 애들러는 ‘분석하며 읽기’의 제4 원칙을 위와 같이 말한다. 그가 말하는 ‘분석하며 읽기’의 모든 원칙이 목차 읽기에 포함된다. 지식서나 실용 서적의 목차를 읽으면 그 책의 전체 내용과 논리 전개를 파악할 수 있다. 목차를 보면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 수 있다. 또한, 목차를 읽음으로써 책이 짜임새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아니면 쉽게 무너질 모래성 같이 허술한지 알 수 있다. 목차만으로 작가의 수준을 판단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독가 다치바나 다카시 역시 목차를 책 고르기의 기준으로 삼을 정도이니, 목차 읽기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 없다.           


 나의 경우는 ‘목차 읽기’를 ‘소개팅 기다리는 사람’같이 한다. 보통 소개팅을 하면 주선자에게 상대방의 사진을 받고 성격, 나이, 취향, 이상형과 같은 정보를 받는다. 주선자가 제공하는 상대방의 명시적 정보이다. 나는 그 명시적 정보를 받아 상상한다. 머릿속으로 소개팅을 시뮬레이션 한다. 실제 만났을 때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어디 장소를 좋아할까’ ‘나와 코드가 잘 맞을까’하는 상상을 한다.   

  

 나의 ‘목차 읽기’또한 꼭 소개팅 같다. 우선 노트를 피고 책의 목차를 노트에 베껴 적는다. 목차를 노트 위에 쓰면서 ‘이 책에서 작가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작가가 독자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다양한 생각을 떠올린다. 목차를 전부 필사한 후 바로 본문 읽기로 돌입하지는 않는다. 일부러 몇 일간 본문을 읽지 않는다, 묵히는 것이다. 묵히는 동안에는 책에 대해 떠올린다.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 목차를 매개로 책을 그려본다. 그러다 보면 실제 책을 읽을 때보다도 더 다양하고 재밌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본문 읽을 날을 기다리며 마음 속 기대와 설렘을 즐긴다. 소개팅 상대를 만나기 전 설레는 사람처럼.     


 나에게 ‘목차 읽기는 설레임’이다. 삶에 있어 이성과의 만남에 설레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책 읽기에 설레는 것도 이에 못지않다. 목차 읽기를 통해 본문과 만나기 전에 제대로 준비하라. 준비된 사람은 더 즐거운 독서 시간을 향유할 수 있다. 준비된 만큼 더 많은 것을 책에서 캐낼 수 있게 된다. 책을 사면 목차를 읽고 손으로 써보자. 그리고 목차만으로 책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자. 작가를 가늠하고, 본문과 만나는 날을 기다려보자. 책이 설렘으로 다가올 것이다. 혹자는 책을 앞에 두고 게으름을 부린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모를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눈앞에 두고도 참고,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 책 읽기를 더 깊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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