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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썰킴 May 19. 2024

책의 초반 10장에서 독서 수준에 대한 판단을 하라

처음 10장에서 책을 읽을지 덮을지 결정된다

 매년 봄 학교에서는 새 학기가 시작된다. 첫날, 새로운 급우들과 선생님을 대면한다. 모두가 낯설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교실을 둘러본다. 그리고 속으로 앞으로 1년을 함께 지낼 친구들과 선생님에 대해 판단한다. 나이가 지긋하신 선생님은 익숙한 걸음으로 교단 올라 학생들을 둘러본다. 선생님도 학생들 얼굴 면면을 들여다보고 속으로 생각하실 것이다. 착한 학생, 장난기 있는 학생, 공부 잘하는 학생, 운동 잘하는 학생이 누구인가 말이다. 관록 있는 선생님은 재빨리 학생의 유형을 파악한다. 선생님의 판단은 대체로 적확하다. 이 능력은 관상이 아니다. 긴 시간 동안 교직 생활하며 얻는 직관에 가깝다.     


 자동차 세일즈도 마찬가지다. 숙련된 영업원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의 표정과 기세, 옷차림과 말투 등에서부터 진짜 구매를 할 사람인지 단박에 알아차린다. 이처럼 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면 ‘감’과 ‘보는 눈’이 생긴다. 책도 똑같다. 책도 오랫동안 읽다 보면 안목이 생긴다. 책에 대한 판단은 초반 10장에서 승부가 난다. 책이 첫 페이지부터 부실하다면 중간에 이른다고 나아질 리 없다. 그래서 책을 판단할 때는 책의 초반 10장이 중요하다.     


 책의 초반 10장이라고 하면 저자의 이력, 목차, 서문이다. 목차는 이미 언급하였으니, 여기에서는 서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서문은 머리말이라고도 하며, 사전적 의미는 ‘책이나 논문 따위의 첫머리에 내용이나 목적 따위를 간략하게 적은 글’이다. 보통 저자들은 책의 본문을 모두 쓴 후에 서문을 적는다. 서문에는 글을 읽을 때 필요한 핵심적인 정보가 포함되어 있다. 글을 쓴 동기와 목적, 집필하는 과정, 내용에 대한 요약이 나온다. 서문만 보아도 글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가닥을 잡을 수 있다. 

    

 더불어 서문은 독자가 처음 맞닥뜨리는 저자의 글이다. 독자는 글을 통해, 글의 주인인 저자를 그려볼 수 있다. 글의 기세에서 저자가 어떤 성품을 지녔는지 짐작할 수 있고, 저자가 쓰는 단어의 출처와 범위에서 저자의 지식 크기를 판단할 수 도 있다. 서문에 투영된 작가를 읽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기 계발서를 쓰는 사람들의 문체를 보자. 기본적으로 활기차고 긍정적이다. 그들에게 난관과 시련은 잠시 넘어가는 가파른 언덕일 뿐,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진만이 있을 뿐, 굼뜨거나 필요 이상의 고민은 없다. 행동을 촉구하고, 실천을 독려한다. 글 안에 오로지 ‘실천’과 ‘파이팅’이 가득하다.     


 반대로, 차분한 글을 보면 관조적이다. 슬픈 일도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삶이란 힘들고 슬픈 것이란 전제를 하면서도, 그럼에도 삶은 한 번 살아볼 만한 것이라 이야기를 한다. 상반되는 태도의 문체를 읽어보며 자신에게 어떤 문체가 더 맞는지 생각해 보자. 자신의 결에 맞는 글이 필시 있을 것이다.     


 서문을 보며 눈여겨봐야 될 것 하나가 저자가 쓰는 단어이다. 보통 저자들이 쓰는 단어는 저자의 교육 수준과 살아온 경험을 나타낸다. 동양 고전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유명한 경전에 나오는 글귀들이나 개념들을 차용하여 자신의 글에 사용한다. 반대로, 유럽이나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이라면 그 문화권의 철학가, 사상가들의 개념과 글을 가져와 사용한다. 서문에서 읽히는 단어의 범위와 설명하는 개념에 따라 저자의 지식의 경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서문에서 우리는 책에 대한 많은 정보를 집약해서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책을 효율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서문 읽기를 철저히 실시해야 한다. 서문 읽기에서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몇 번을 반복하더라도 다시 읽어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본문으로 진입 전, 건성으로 훑어 읽을 글이 아니다. 본문을 읽다가도 방향을 잃을 때면, 서문으로 돌아가 다시금 저자가 책에서 말하고자 한 내용을 상기시켜야 한다. 그래야 책 읽기도 정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천천히 읽기를 권함>란 책에서 나온다.     

 

 우선 모든 책은 대체로 첫 열 쪽 정도까지는 정독할 필요가 있다. 첫 부분을 독파한다면 저자의 어구나 단어의 사용방법, 이야기의 틀 따위를 알게 되니까 점점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첫 열 쪽을 정독하면 다음 열 쪽은 빨리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다시 그다음 열 쪽은 더 빨리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처음 읽었을 때는 시간이 걸리는 듯 하지만 결국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어떤 것이 붙어서 종이를 벗길 때, 한가운데서부터 잘 벗겨지지 않는다. 끝부분에서부터 벗겨야 전체가 술술 벗겨지는 법이다.

<천천히 읽기를 권함, 야마무라 오사무>


 위의 이야기는 일본의 학자 엔도 루카치의 독서법에서 나온 내용이다. 그 역시 책의 열 쪽을 읽기가 중요하다 이야기한다. 서문에 책의 정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앞을 제대로 읽으면, 뒷부분도 술술 읽어 나갈 수 있다. 서문 읽기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것은 엔도 류카치 뿐만 아니다. 소설가 장정일도 말한다.   

  

 수영장에서 아무 준비 없이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듯이, 서문을 생략하고 곧장 본문을 읽는 독자도 있다. 어쩌면 그러한 여행이 더 극적일 수 있으나, 그러한 독서는 독자를 오독으로 인도할 수 있다. 효율적인 여행에 지도가 필수인 것처럼, 독서에도 지도가 필요하다.

<위대한 서문, 장정일>     


 위에 언급한 두 명 이외에도 수많은 독서 고수들이 서문 읽기를 강조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서문을 제대로 읽고 본문을 읽어라. 해안의 물길을 알고 배를 저어나가는 뱃사공처럼 다른 곳으로 표류할 일이 없다. 서문은 책의 나침반이자 지도이다. 명저들의 서문을 보아라. 본문이 난해할지라도 어떻게 읽어야 할지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서문과 본문이 간극이 존재할 때도 있지만, 이 간극을 느낀다는 것은 독서를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서문은 책을 읽어야 할지, 덮어야 할지를 나타내는 바로미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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