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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Apr 29. 2024

주말을 기다리시나요?

©instiz.net/pt/382010/탐구생활 책 표지와 생계획표

학교에 출근하면 매일 아침 방학이 며칠 남았는지 알려주시던 선생님이 있었다. "이제 방학이 15주 남았어요. 쉬는 날을 빼고 나면 68일만 더 출근하시면 됩니다." 장난인 듯 보이기도 했지만, 또 한 편 그렇지 않아 보이기도 했다. 월요일엔 토요일을 기다리고 월급날이 지나면 또 다음 월급날을 기다리고 다음 달엔 휴일이 며칠이나 있는지 세는 것이 일상인 선생님의 일상은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방학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선생님! 잘 지내시지요? 방학이 이제 3주밖에 남지 않았어요."라고 메시지를 보냈던 걸 생각하면 선생님은 막상 기다리던 좋은 날이 왔을 때도 그날을 온전히 즐기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나 또한 월요일이 되면 토요일을 기다리고 개학식 날엔 다음 방학식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간다. 일하는 것보다 쉬는 것 좋아하고 힘든 것보다 편한 것 좋아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에 어쩔 수 없긴 하겠지만 생각해 보면 하루 이틀 즐겁기 위해 5일을 견디며 살아가는 삶은 너무도 안타깝다.


70년을 산다면 50년은 괴로운 기다림으로 채워야 한다. 매일매일을 즐겁고 신나고 의미 있게 꽉꽉 채우는 일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겠으나 세상 모든 평일을 주말을 기다리는 괴로움으로 채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옳지 않다.


긴 시간 비행기를 타다 보면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난다. 목적지에 다다르는 짧지 않은 시간을 이리저리 몸 뒤척이며 끙끙대고 견디는 사람도 있고 기내식이나 간식 주는 시간만을 기다리며 겨우 참아내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여행하는 모든 시간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영화를 보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여행지의 정보들을 공부하기도 하는 이들은 비행기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혼자만의 시공간을 충분히 의미 있게 채워갔다. 쉬는 것도 잠시 눈을 붙이는 것도 왠지 그들에겐 여행 전체에서 뭔가 의미 있는 장면으로 보였다.


때때로 난 '과거로 돌아간다면'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스무 살 어른이 되기를 기다렸던 십 대를 생각하기도 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원하던 이십 대를 떠올리기도 한다. 결혼과 새 가정을 바라던 삼십 대의 날들에도 더 나은 삶을 갈구하는 지금도 난 내 삶의 많은 날들을 지루한 기다림과 고된 견딤으로 채웠다. 즐겁고 기쁘고 신났던 날들도 분명 셀 수 없이 많았지만 난 일요일 오후에 다음 주말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또 다른 기다림의 시간으로 내 삶을 메워갔다. 


삶이 일주일이었다면 난 잠깐의 주말을 위해 5일의 평일을 견디는 사람이었고 인생이 여행이라면 3박4일의 짧은 여행을 위해 긴 비행시간을 억지로 견뎌내는 고된 여행객이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여전히 힘들 수 있겠지만 더 잘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 시간 그때에만 느낄 수 있는 의미들이 있다는 것을 이제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십 대는 십 대라서 이십 대는 이십 대라서 더 즐겁고 의미 있을 수 있었다. 평일은 평일이어서 힘든 날은 힘든 날이어서 아픈 날은 아픈 날 이어서 또 다른 의미로 채울 수 있었다. 아주 기뻤던 날도 아주 괴로웠던 날도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다.


난 나름 잘살고 있고 분명 행복하다. 그렇지만 더 잘 살고 더 행복할 수 있다. 평일은 주말을 기다리기 위한 견딤이 아닌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 방학은 방학대로 개학은 개학대로 설렘이 있어야 한다. 눈이 보였던 시간은 시간대로 보이지 않는 지금은 지금대로 내 모든 시간은 가치 있다. 


지금은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기다림의 시간이 아닌 지금을 위한 의미로 채워야 한다. 더 나이를 먹고 오십이 되고 육십이 되었을 때 과거를 생각한다면 '다시 돌아가도 그만큼 잘하지는 못할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살고 싶다. 여행의 오가는 길마저도 온전히 의미를 채워가는 여행객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든 하루하루를 꼭꼭 누르고 다진 의미로 채워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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