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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Sep 16. 2024

흔들린 신념

©공혜균/갓 태어난 아기의 발

장애를 가지고 사는 것은 불편하긴 하지만 매 순간 불편하지는 않다. 굳이 노력해서 얻을 만한 매력적인 옵션은 아니지만 삶 전체가 우울해질 만큼 좌절의 소재도 아니다. 때때로 넘어서기 힘든 벽을 마주하긴 하지만 그것은 내 장애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장애를 포용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환경의 문제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게 믿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처음 시력을 상실했을 땐 꽤 큰 충격과 공포를 느꼈지만, 그 또한 장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겪어보고 살아보니 그냥저냥 지낼 만하다. 접촉 사고로 차체의 한쪽이 구겨지거나 몇 가지 기능이 고장 나버린 차를 타는 것은 썩 반길만한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차를 폐차할 만큼의 일이 아닌 것과 비슷하다. 매우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면 적당히 찌그러진 차를 타는 것은 큰마음의 결심이 필요하지 않은 일인 것처럼 말이다. 누구라도 장애를 갑자기 마주하게 될 때 큰 상처나 좌절 없이 조금 다른 삶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아내와 전혀 협의가 이뤄진 바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아내가 임신했을 때 우리 아이에 대한 내 생각도 그랬다. 아이가 장애아로 태어날 가능성에 대한 이런저런 검사를 권유에 의해서 하긴 했지만, 장애를 이유로 한 생명을 내 손으로 재단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상황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지 않았지만, 장애를 이유로 출생을 선별하는 것은 내 스스로의 존재성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겉으로 말을 내뱉지 않았지만, 장애아를 걸러내기 위한 의술을 실행으로 옮기는 이들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들기도 했다.

다른 이들은 그런 걱정들 때문에라도 출산 당일이 되면 극도의 긴장과 떨림이 있다고 하는데 아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가던 아침까지도 내게 그런 동요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분만실로 아내가 들어가고 혼자 대기실에 남겨졌을 때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조금만 있으면 아기와 만난다는 생각을 하니 뭔가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설레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큰 감정으로 불안했다.

'어디가 아프지는 않겠지? 특별히 이상 있는 곳은 없겠지?'

이런저런 부정적 가능성이 머리를 채우고 있었는데 그중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한 생각이 '장애가 있으면 어떡하지'에 대한 것이었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걷지 못해도 생각과 표현이 다른 이들과 달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들은 그저 내 상상이 아직 구체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불안하고 두렵고 무섭기도 했다.

"아가가 아주 건강하네요. 손가락도 열 개이고 눈도 코도 입도 팔도 다리도 엉덩이도 특이 사항 없이 아주 건강해요."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설명이 있고 나서야 마음이 진정되었다. 안도의 큰 숨을 내쉬었고 100m를 달린 스프린터처럼 심장이 뛰었다. 난 긴장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던 나의 솔직함이 장애아이가 태어날 것을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난 분명히 장애 가진 이들의 삶이 절망스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내 아들이라는 한정적 조건에서 그 신념이 절대적으로 유지될 수 없었을 뿐이다. 아직은 장애인이 살아가기에 만만치 않은 세상을 직접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늘어놓을 수도 있겠지만 장애에 대한 무덤덤한 수용을 나 스스로에게조차 설득해 내지 못한 것이다.

처음 자녀를 출산하면서 난 장애아이를 출산하게 될 이들의 마음에 대해 비로소 아주 조금 알게 되었다. 난 쉽게 그들의 판단을 판정해서는 안 되었었다. 열흘 조금 넘는 경험이지만 나를 키워주신 부모님의 마음에 대해 매우 큰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곁에 있는 초보 엄마를 보며 여성과 출산에 대한 고정관념들도 많이 깨어졌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난 겪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잘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확신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도 장애와 장애인의 삶에 대해 누군가 묻는다면 나의 신념대로 "조금 불편하지만, 그럭저럭 살만합니다."라고 말하겠지만 내 생각을 부정하는 이들을 틀렸다고 말하거나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진 신념이 내게 있어서 대단한 확신에 근거한다고 할지라도 그에 동의하지 않는 상대를 무조건적인 틀림이나 악의 존재로 단정할 수는 없다.

현재의 내게 장애는 별것 아닌 작은 다름이지만 아주 오래전 처음 장애를 접했을 땐 너무나 큰 좌절이었고 세상에 태어날 아들 앞에서의 장애는 또 다른 느낌이 되었다. 그때도 나였고 지금도 나였고 앞으로도 나이지만 내 생각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하기도 하고 실행으로 옮기지 못할 사정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 내가 가진 신념이 올바르다고 확신한다고 해서 그것만이 옳다고 고집불통이 되어서는 안된다. 장애에 대한 바른 인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이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 사정이 있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 또한 내게 주어진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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