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xels/공갈젖꼭지를 물고있는 아기
아이를 낳고 기르는 과정은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다.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많은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힘드시죠? 그래도 그때가 제일 편할 때예요. 막달로 갈수록 더 힘들어질 거예요." 그리고 만삭이 되었을 땐 "이제 출산이 얼마 안 남았네요. 조금만 더 견디면 되겠어요. 낳고 나면 더 힘드실 거예요.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편한 거예요."라는 말이 이어졌다.
장난인 줄만 알았다. 농담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소리를 낼 때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기가 너무나 사랑스럽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대가로 내놓아야 하는 체력의 소모는 쉽게 "괜찮아요."라고 말할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 먹이고 목욕을 시키고 어르고 달래고 다시 기저귀를 갈고 분유를 타 먹이고 또 어르고 달래고 하다 보면 나의 휴식 시간은커녕 식사 시간의 확보도 쉽지 않았다. 태어나자마자부터 통잠을 자는 효자였던 햇살이는 며칠 전부터는 낮과 밤마저 정확히 반대로 바꾸어 나와 아내의 밤과 새벽마저 환하게 밝혀주고 있다.
학교에 출근하고 일하고 수업하는 시간이 오히려 휴식이라 느껴질 때 비로소 '이것이 선배들이 말하던 육아라는 것이구나.'를 깨닫는다. "일 하는 것이 제일 쉬웠어요.", "돈 버는 것이 제일 쉬웠어요."를 넘어 육아 노동 앞에서는 "장애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까지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요즘 주변의 선배들은 "가만히 누워서 울 때가 제일 편한 거야!"라고 말들을 한다. 도대체 가장 힘든 끝판왕은 언제일까 생각하게 되는 섬찟한 말이다.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힘든 날이 무한히 이어진다는 무서운 상상 끝에 과거로 돌아가는 부질없는 생각들을 해 보게 되는데 이상한 것은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오늘보다 유의미하게 편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분명 오늘의 몸이 힘들긴 하지만 활짝 웃는 햇살이의 모습 없는 과거의 막연한 불안함이 오늘보다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기 없는 과거로 돌아간다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업무라도 가볍게 웃으면 해낼 것 같지만 막상 깊은 시물레이션을 돌려보면 그 또한 현재가 아니기에 쉽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나의 지금이 많이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장 현시점에서 마주하고 있는 나의 오늘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힘듦을 토로하는 지인들의 대화에서 장애가 있는 한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아무리 힘들게 살았어도 장애 있는 내 삶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시끌벅적하게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은 순간 조용해지고 "그래. 그렇지. 많이 힘들었겠구나."하면서 급히 화제를 전환했지만, 장애 있는 사람의 삶이 가장 힘들다는 그의 논리에 난 동의하지 않는다. 나도 장애를 가지고 살지만 "장애는 너무도 힘든 것이니 장애 없는 누군가의 삶으로 너의 삶을 바꿔주겠네."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난 절대로 그 제안해 응하지 않을 것이다.
장애가 분명 불편한 점이 있는 나의 일부이긴 하지만 그것 하나로 내 모든 것이 가장 힘들다는 보증이 될 수는 없다. 시력 좋은 다른 누군가의 삶이 내 것이 된다면 직접 볼 수 있다는 면에서 일정 부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일 수 있다는 것에 동의하지만 겪어보지 못해서 알지 못했던 그의 불편함은 어제까지 내가 겪었던 장애보다 더 한 어려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기가 생기기 전,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하루하루가 더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체력소모의 정도가 절대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기보다는 나의 오늘을 가장 힘들게 느끼는 인간의 본성 때문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산다는 것, 장애인으로 일하고 돈을 벌며 사는 것이 어떤 이들에겐 세상에서 제일 힘든 것이라 여겨질 수 있지만 내겐 제일 쉬운 일이다. 처음 겪을 땐 내게도 어려움이 없지 않았겠지만 괜찮다고 생각하고 할 만하다고 느끼다 보니 그다지 어렵지 않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힘들게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명제가 참일 가능성도 거의 없지만 그 사실이 명확해진다 한들 스스로에게 가져다줄 이득도 없다.
처음 하는 육아는 하루하루가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지만 한편으로 즐거움과 설렘의 연속이기도 하다. 나를 닮은 아이가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고, 그 녀석이 나를 보고 웃었고, 내 품에서 온전히 나를 믿고 잠든다. 햇살이 덕분에 대가 없이 무한히 줄 수 있는 마음을 얻었고, 한숨도 자지 않은 아침에도 웃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간다. 따져볼 필요도 없겠지만 굳이 계산해 본다면 힘듦과 기쁨을 생각해 볼 때 오늘도 흑자다.
장애가 제일 쉬워진 것처럼 머지않아 내게 육아가 제일 쉬워질 것을 알고 있다. 힘들어지는 것이 있다면 분명 얻어지는 것도 있다. 오늘보다 불편해질 내일보다는 나아질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조금 낫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