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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Nov 13. 2024

자리는 사람을 만들지 못한다.

©Pexels/흰 벽의 스튜디오에 나무 의자가 놓여 있다.

꽤 오래전 한 친구 녀석이 술자리에서 '연애와 결혼'이란 주제로 일장 연설을 펼친 적이 있다. 연애를 잘하는 것과 결혼에 성공하는 것에 모범답안이라도 있는 듯 확신에 차서 말하는 녀석은 얼마 전에 결혼식을 올린 터였다. 여자 친구를 사귀고 연인에서 남편이라는 지위를 얻게 된 그는 자신의 경험에 대한 굉장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를 제외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의 연애 경험은 오직 단 한 번이었다.


어떤 일에 있어 진리에 다가서는 것이 그가 정진한 시간이나 경험의 횟수에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책 한 권 읽은 이의 지식 전파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는 우리에게 서른 살 넘어 경험한 한 번의 연애와 결혼에 근거한 성공 비결에 귀 기울이는 친구는 없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리를 얻었다는 사실이 하루아침에 어제와 다른 전문가가 됨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생활의 어려움'을 넘어 '결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라는 또 다른 주제로 일장 연설을 하는 그 친구를 보며 난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보증수표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되새겼다.


처음으로 반장이라는 감투를 쓰게 되었던 어릴 적 나도 그 친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제까지도 그랬고 오늘도 다른 친구들과 나의 성숙도나 윤리의식은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감투 하나를 썼다는 것만으로 떠드는 아이를 칠판에 적고 조용히 할 것을 강요하는 나의 태도는 너무나도 권위적이었다. 분명 나를 바라보던 대부분의 아이는 내게 작은 권위조차 느끼지 못했겠지만 자리 하나 얻은 사건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근거 없는 전문성을 부여했다.


운이 좋아 승진했던 언젠가의 직장 상사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노력 없이 나이가 늘어난 어떤 어른도 노력 없이 얻어진 자리 하나로 자기 생각과 말들에 특별한 권위와 가치가 생겨났다고 믿고 있었다. 자리가 주어지고 그 자리에 맞는 역할을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시간이 변함에 따라 자리 없는 이들과 구별되는 사람이 되어갈 수는 있겠지만 다시 말하건대 자리만으로 하루아침에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다.


연애 한 번 했다고 갑자기 사랑꾼이 되는 것도 아니고 감투 하나 썼다고 한순간에 리더십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갑자기 지팡이 보행을 할 수 있게 되거나 장애인식의 당사자성이 진하게 부여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이해가 쉽다. 아직도 완벽하지 않지만 난 지팡이 보행 잘하는 시각장애인이 되기 위해 수천 시간 시행착오를 겪었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괜찮은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내가 다섯 살쯤 되었을 때 동생이 생겼지만 내게 오빠다움이 부여되지는 않았고 교사가 되었지만, 아이들보다 인격적으로 성숙한 어른의 모습이 곧바로 갖춰지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런 것들은 나의 부족한 노력으로 아직도 나의 내면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들일 수도 있다.


최근에 난 남편이라는 지위를 얻었고 어느새 아빠라는 역할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자리는 주어졌지만, 좋은 남편 괜찮은 아빠가 되는 방법을 난 아직 잘 모른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서 입을 회자한다는 것은 자리만으로 사람이 변했다기보다는 역할이 부여된 이들이 그만큼의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하는 시간 동안 서서히 변해간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다.


요즘 과분하게도 내게 새로운 지위들이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수많은 운이 모여서 이루어진 사건들에 근거 없이 우쭐대지 말고 자리에 걸맞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애써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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