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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준 Nov 18. 2024

밥이 맛있는 날

밥과 반찬이 유난히 맛있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쌀에 기름이 흐르는 듯하고 설탕을 뿌려놓은 듯 달콤하기도 하다. 오물거리는 식감도 적당한 양념도 입에 착착 감긴 듯 느껴지는 날엔 행복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정신없이 먹다 보면 어느새 평소 먹던 양의 몇 배를 먹고도 배부른 줄 모른다. 음식이 바닥나도록 먹었다는 것은 분명 충분히 먹은 것일 텐데 맛있는 식사의 끝은 오히려 아쉬움이 남는다.


식성이 지나치게 좋던 어릴 적 어떤 날엔 줄어가는 밥을 보며 슬프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으면서도 앞으로 먹을 양이 줄어가는 것이 적어진다는 것을 슬퍼한 것인데 그러다 보니 밥이 맛있으면 맛있을수록 마음이 아프고 또 맛이 없는 음식을 먹을 때엔 또 맛이 없기 때문에 만족하지 못했다. 기분 좋은 날엔 기분 좋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느라 즐기지 못하고 속상한 날엔 또 현재의 속상함에 매몰된 꼴이었다. 이런 날은 이래서 또 저런 날은 저래서 대부분의 식사 자리가 불만족으로 채워졌다.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이라도 배부를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었다. 맛난 음식을 먹을 때엔 더더욱이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주는 만족감으로 즐거울 수 있었다. 단 음식은 달콤한 매력이 있고 쓴 음식은 또 그것대로 쌉쌀한 매력이 있다. 매콤한 것은 매콤한 대로 짭짤한 것은 짭짤한 대로 어떻게 생각한냐에 따라 즐거울 수도 불평이 가득할 수도 있다. 조금 적게 먹는 날은 적은 대로 또 배부르게 먹는 날은 배부르게 먹는 대로 나름의 의미를 둘 수 있어야 내 식사 자리는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다.


평소 불평하기 좋아하는 친구가 오늘도 걱정이 있다며 친구들을 모았다. 가정도 평안하고 직장도 안정적이고 요즘은 하는 일도 잘 되어간다던 그의 고민은 이런 날들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함이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어려움을 겪던 친구라서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현재의 행복들에도 불안감이 다가오는 것을 어느 정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으나 행복이 다가왔을 때조차도 행복하지 못하다면 그에게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은 존재할 수가 없다.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던 친구는 꽤 입지 좋은 곳에 아파트 분양을 받아서 재산의 규모가 작지 않을 만큼 불어났지만 언제 다시 내려갈지 모르는 주택 가격을 걱정하고 있었다. 별것 아닌 이유로 잦은 다툼을 겪던 아내와도 최근 몇 달간 다툼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지만 언제 다시 충돌할지 몰라서 불안하다고 했다.


우리가 곁에서 보는 지금 그의 생활은 몇 년 전부터 그 친구가 그토록 원하고 바라고 노력하던 모습이었지만 막상 그런 날이 다가왔을 때 그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조금만 생각을 돌리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쉽게들 말했지만, 그에겐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여름은 여름이라서 좋고 겨울은 겨울이라서 좋은 사람과 여름엔 겨울을 동경하고 겨울엔 여름을 동경하는 사람의 차이는 작지 않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계절을 지내고 있지만 아주 작은 생각의 간격은 누군가를 사계절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고 하루하루가 괴로운 삶으로 만들 수도 있다.


중도에 장애를 겪은 사람들은 우울하거나 불행할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내 주변에 있는 장애 있는 사람 중 일부는 그렇다. 그렇지만 난 그것이 그들의 장애 때문만은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위험한 발언일 수 있겠으나 그들은 특별한 계기로 장애 없는 삶을 되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마음껏 행복하기 힘들 것이다. 며칠이나 몇 달 정도 불편함이 사라진 것으로 즐거울 수 있겠으나 행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은 다시 찾아올 장애를 걱정하느라 현재 자신의 주위를 채우고 있는 행복함을 누리지 못한다.


장애가 있으면 장애가 있는 대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장애가 없을 때도 행복할 수 있다. 사람은 환경의 영향을 받지만 진정 행복할 수 있는 이들은 주어진 환경과 관계없이 만족하고 행복하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은 아주 간단하다. 배부른 날엔 배부른 대로 배고픈 날엔 배고픈 대로 의미를 둘 수 있는 사람은 시력이 없어지더라도 걸음을 걷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 안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행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이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단한 재산과 권력을 얻더라도 또 다른 불만족들로 우울하거나 화나거나 불안할 것이다.


오늘 내게 주어진 한 끼의 밥상에서부터 행복할 수 있는 연습을 해 보면 어떨까? 오늘 식탁에 내가 좋아하는 고기는 없었지만, 김치가 유난히 맛있었다. 생각보다 밥의 양이 많지 않았지만, 다이어트를 할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오늘은 배가 부르게 충분히 먹을 수 있어서 좋았고 오늘은 먹지 못했지만, 내일은 먹을 수 있어서 좋다. 밥상머리 한 곳에서만도 내가 찾을 수 있는 행복은 너무도 크다.


진정 행복하고 싶다면 식탁에서부터 내가 버릴 수 있는 불평이 무엇인지 되돌아보자! 배부른 날엔 배부른 대로 맛있는 날엔 맛있는 날대로 맛없는 날엔 맛없는 날대로 불만족스럽다고 느끼는 스스로를 발견한다면 당신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행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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